동산관 언덕을 내려와 문화관 급식실까지 이어진 짧지 않은 길, 아이들은 바깥바람을 쐬느라 줄이 흐트러지고, 친구들과 재잘재잘 쉴 틈이 없다. 가다가 멈춰서 아이들 다독이고, 가다가 멈춰서 아이들 다독이다 보면 5분쯤 시간이 소요되는 짧지 않은 길.
1학년 담임이 되어 좋은 점 하나, 하루에 한 번 아이들과 함께 이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앙상했는데, 지금 동산관 언덕에는 개나리, 진달래, 수선화, 벚꽃이 폈다. 그리고 비술나무에도 새싹들이 움텄다. 흐드러진 개나리꽃들이지만, 그 꽃 무더기 크기는 겨우 내 양팔로 감싸안은 만큼, 반가운 진달래꽃이지만 꽃봉오리 개수는 겨우 예닐곱 개... 이렇듯 작은 봄동산이지만, 그 옆에 비껴 심어진 비술나무는 그렇지 않다. 70년도 더 되었을 그 나무는 이제 머잖아 파른파릇 잎이 자라나, 동산관 언덕길 전체에 그늘을 만들어 줄 것이다.
그 길을 지나, 급식실에 도착한 아이들은 마음속에 이미 봄바람이 불어있다. 코로나 이후, 지켜야 할 규칙이 더 많아진 급식실. 급식을 받기 위해 한 줄로 다시 세운 후, 엄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유독 봄바람이 많이 불어온 것 같은, 뒷 줄에 선 몇몇 남자아이들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자, 이제 급식실이야. 마음을 차분히! 급식실 예절, 알지?"
"선생님, 마음을 차분히 하고 싶은데 안돼요. 내 마음이 이렇게나 솟아 있어요. 꿀렁꿀렁."
원진이가 말했다.
원진이는 시인의 마음을 지닌 아이이다. 며칠 전에는 급식을 먹고 있는 내게 다가와
"선생님, 여기는 온통 사막이에요."
"사막? 왜?"
"물이 없어요. 물을 마시고 싶은데 물이 없어요."
얘기했다. 늘 개인 물통을 가지고 다니게 하는데, 이 날 원진이는 급식실에 오는 길에 물통을 떨어뜨려 물이 새게 되어 물통을 못 가지고 왔다. 유치원과는 달리 초등학교 급식실에는 음수대가 없어 못마땅해하는 원진이에게 예전 같으면,
'참고 교실에 가서 마시자.' 혹은 '코로나 때문에 급식실에 함께 마실 물이 없어.' 얘기했을 텐데... 내 마음에도 봄바람이 불었는지
"그럼 원진이가 낙타가 되어 잘 견뎌 봐."
라고 답해주었다.
이런 원진이가 '꿀렁꿀렁'이라는 말을 뱉으며, 양 손을 포개어 가슴에서 배꼽까지 내리며 꿀렁이는 손동작을 했다. 그 순간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올해 만난 너희들은 '꿀렁이'들이다. 꿀렁이. 앞으로 너희들을 그렇게 부르마.'
통합교과 '봄' 단원에 들어갔다. 칠판 가운데 '봄'이라고 크게 쓰고 '봄' 하면 생각나는 것들을 아이들에게 말해보게 했다. 나온 낱말들을 칠판에 두서없이 적었다.
개나리, 진달래, 제비꽃, 다람쥐, 개나리, 두꺼비, 까치, 나비, 벌, 말벌, 연못, 새싹, 땅 속, 벚꽃, 목련, 여우, 곰, 뱀, 시냇가, 한강...
4월이 되어 새롭게 바뀐 자리, 새롭게 바뀐 모둠을 맞이한 아이들에게 모둠 이름을 정해 보라고 했다. 3월에 아이들은 1학년 답게 '황금' 모둠, '학교' 모둠, '아쿠아' 모둠, '태극기' 모둠, '에메랄드' 모둠 이름을 만들어냈다. 이번에도 조건을 달았다.
'봄'과 연관이 있는 이름일 것.
그리고 '모든' 아이들이 마음에 들어하는 이름일 것.
지난 3월에는 모둠 이름을 다 정하기까지 3일이 걸렸는데, 이번에는 며칠이 걸릴까? 한 모둠만 빼고 네 모둠이 5분 만에 이름을 지었다. '벚꽃' 모둠, '개나리' 모둠, '새싹' 모둠, '진달래' 모둠.
"얘들아, 이번에는 우리 시처럼 이름을 지어볼까? 앞 또는 뒤에 꾸미는 말을 넣어봐."
라고 얘기하며 몇 개의 예를 말해주었다. 5분도 안되어 또 뚝딱 지어냈다. 물론 한 모둠은 빼고. 많이 자주적인(?) 아이들로 구성된 2모둠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 그렇게 정해진 이름이
'벚꽃 벚꽃' 모둠, '봄이 왔다 개나리' 모둠, ' 귀여운 새싹' 모둠, '자주자주 진달래' 모둠.
"우리 떨어진 벚꽃잎 주우러 가자."
아이들에게 종이컵을 나누어주고 함께 밖으로 나갔다. 한 가득 주운 아이, 꽃잎 대신 작은 열매를 넣은 아이, 아무것도 줍지 않은 아이... 다시 교실에 들어온 아이들에게 그림책 '수호의 하얀 말 (오츠카 유우조, 한림출판사)'을 읽어주었다. 몇년 전 우리 쌍둥이가 숨죽이며 들었던 것처럼, 꿀렁이들도 숨죽이며 들었다.
벚꽃을 이용해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그려보자는 나의 수업 활동 제안에 아이들은 이렇게 멋진 작품을 만들어냈다.
벚꽃잎은 하얀 말, 산, 화살촉, 꽃비, 사람, 무덤이 되었다. 이렇게 꿀렁이들 종합장에도 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