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동시 '반딧불'을 듣고 나서 준성이가 그랬다. 계획했던 대로 이끌어가던수업을 잠깐 멈췄다.
"우와, '촉촉하다'라는 표현을 어떻게 생각해낼 수 있지? 이 시는 선생님이 윤동주 시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야. 이 시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찾아냈어! 진짜 촉촉한 것 같아."
1학년 선생님답게 연극배우처럼 한껏 부푼 대사와 동작으로 준성이를 칭찬해주었다.
나의 칭찬에 준성이가 기분이 좋아졌는지, 한 마디 더 했다.
"선생님, 저 이 노래 많이 들어봤어요. 우리 누나 때문에."
준성이는 3년 전 내가 가르쳤던 서윤이 동생이다. 그때 서윤이도 1학년. 그 해 윤동주 시수업을 처음 시작했다. 서윤이는 누구보다도 나의 시 수업에 열심히 참여해 주었다. '시가 있는 목요일'이라 이름을 붙이고 목요일 국어 시간 20분씩 시 수업을 했다. 나와서 윤동주 동시 한 편을 외우는 아이들에게 츄파춥스 사탕 한 개씩 주었다. 다른 시인들의 시들도 덧붙일 수 있었지만, 윤동주 동시만을 고집한 이유는 순전히 음악 때문이었다.
1학년 아이들에게는 20분도 긴 시간이다. 그 시간을 시를 외우는 아이들로 다 채우면, 시를 외워오지 않은 아이들이 곤혹스럽다. 그 아이들에게도 20분은 시가 가치 있고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어야 했다. 그래서 중간중간에 음악을 들려주었다. 윤동주 동요. '시가 있는 목요일' 수업을 한지 한달 쯤 되었을까?앞에 나온 아이들이 시를 외우는 사이사이, 음악을 들려주면 하나 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윤동주, 반딧불 (유영민 작곡/ 김기람 그림, 예솔 출판사)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즈음 많은 음악 하는 분들이 윤동주 동시로 노래를 만들어 발매했다. 내가 구입한 것은 유영민 님의 '윤동주, 반딧불(유영민 작곡, 예솔 출판사)' 동요동시집과 김진영 님의 '윤동주 동시를 만나다' 동요집(디지털 앨범). 둘 다 훌륭한 음악들이다. 특히 김진영 님의 동요집은 어른을 위한 동요집 같다. 수업할 때만이 아니라, 그냥 음악이 듣고 싶을 때, 여행 갈 때 자주 들었다.
'서윤이가 지금까지 이 노래들을 듣고 있었구나.'
3년 전, 시 수업 때 내가 보낸 이 시가 서윤이에게 깊게 다가갔나 보다. 서윤이를 통과한 그 시는 동생 준성이에게 흘러 들어갔고, 준성이는 '촉촉해요'라고 입말로 만든 한 문장의 시를 지금 내게 들려주었다. 시의 힘을 느낀다. 시는 힘이 쎄다. 그리고 질기기까지 하다.
'시가 있는 목요일' 시 수업을 올해 더 확장시켰다. 윤동주 동시로 1학년 한글 교육을 함께 하기로 마음먹었다. '시엄니'처럼, '시가 있는 목요일'처럼 이름이 필요했다. 남편 튼튼이와 머리를 맞댔다. 그래서 나온 이름이 '동동동 수업'. 길게 풀자면, 윤동주 동시와 함께하는 '동동동' (깨치고 동(曈)! 함께 동(仝)! 자라요 동(動)! ) 프로젝트 수업.
동동동 수업 여섯 번째 시간.
오늘은 '반딧불' 동시로 한글 모음 ㅏ, ㅓ, ㅗ, ㅜ, ㅡ, ㅣ를 가르쳤다. 윤동주 시에 김진영이라는 분이 음을 입힌 노래 '반딧불' 음원을 계속 들려주었다. 세 번 정도 듣고 아이들은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입에 익기 시작할 때쯤 동동동 국어 활동지를 나누어주고, 빈칸에 알맞은 모음을 채워 넣게 했다. 함께 답을 맞춘 후, '반딧불' 시를 스스로 소리 내어 읽어보라 했다. 세 번 그렇게 읽고 좋아하는 친구에게 가서 또 한 번 시를 읽어주라 했다. 마지막은 내게 와서 읽어주기. 확인은 활동지에 그려진 하트에 색칠하기. 아이들의 시를 듣고 내가 마지막 하트에 색을 칠해주면, 아이들은 맛있는 Damla 사탕을 고른다. 딸기맛, 사과맛, 복숭아맛, 오렌지맛 중에 사과맛이 제일 인기가 많다.
동동동 수업 활동지
"얘들아. 이번 하트 색깔은 노란색 어때? 반딧불이 부서진 달 조각 이래. 반딧불 색깔처럼 노란색으로 하자."
"저는 연두색 할 건데요. 반딧불 연두색이던데요. 티브이에서 봤어요."
"아, 그래? 연두색도 좋아. 여하튼 이번에는 다른 색으로 색칠해보자."
하트를 다 채우면, 아이들은 10칸 공책에 낱말 쓰기를 한다. 시에 나오는 낱말을 내가 10칸 공책에 쓰는 것을 실물화상기를 통해 보여주면 아이들이 따라 쓴다. 7번 '주우러'까지 썼는데, 더 쓸게 없다. 시가 짧으니. 그래서 시에 나오지 않는 낱말까지 썼다.
우리 반 시인, 원진이의 동동동 공책
"아까 준성이가 촉촉하다고 했지? 촉. 촉. 해. 요."
"똑똑해요도 써요."
"그래, 똑. 똑. 해. 요."
"반딧불이 예.뻐.요.반. 짝. 반. 짝."
"선생님, 팔 아파요. 언제까지 써요?"
"이렇게 써야, 근육이 튼튼해지지. 근. 육. 이. 좋.아.요."
억지를 부렸다.
"아! 그만 쓰고 싶어요. 팔 아파요."
"그래. 15번 마지막은 그. 만."
교실 맨 끝에 앉은 원진이는 낱말쓰기를 할 때면 잘 안보인다며 늘 내 옆 자리에 와서 쓴다. 그리고 자기가 쓴 것을 보여주며 다섯 번은 넘게 물어본다.
"나 잘했지요, 선생님?"
이번에는 그 말을 공책에까지 썼다.
잘햇지요 선생님
웃음이 나왔다. 그걸보고 나도 물었다.
'잘했지요? 선생님. 당신의 시로, 제가 이렇게수업을하는거요.'
시엄니의 다짐 후 학교로 돌아와 시작했던 민둥산 같았던 나의 시 교육. 그 시 교육이 4년 만에 색다운 색을 입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