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렁이들에게 시로 한글을 가르치다 1

시가 내게도 왔다

by 예농

학교에 다시 나가면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시엄니'를 할 때였다. '시. 읽는 엄. 마들을 니. 들이 알아?'란 뜻으로 붙인, 파란하늘 공동육아 어린이집 엄마들의 시 공부 모임, 시엄니. 이듬해 복직을 눈 앞에 둔 가을 무렵,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게 너무도 아까웠던 그 시절, 함께 시를 공부하자고 엄마들에게 입소문을 냈고, 나의 제안을 옹달샘, 초록별, 아로미, 작은달, 꼭지, (가끔 오던) 두루미가 받아주었다. 본격적인 모임 시작 전, 카톡방에서 우리가 으쌰 으쌰 할 때, 자연스럽게 우린 모임 이름을 궁리하게 되었다. 여러 이름이 오가다가 내가 '시엄니'를 내밀었는데 모두들 깔깔대며 동의해주었다. 그리고 첫 시집으로 '이성복 시인의 남해 금산'을 또 내밀었는데, 이번에도 모두들 그럭저럭 동의해주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이성복 시'를 그때 내가 왜 꺼내 들었을까? 시공부 모임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다 이성복 시인의 시로 공부하는 모임의 후기 몇 편을 읽었던 것 같다. 단지 그 이유였다.


그해 가을, 겨울... 해가 바뀌어 복직하기 전 2월까지 약 5개월 동안 1주일에 한 번씩 우리 집에서 시엄니 모임을 했다. 이성복, 윤동주, 김수영, 백석 시를 만났다. 매주 시 한 편을 외워오고 모두 보는 앞에서 시를 암송했으며, 시와 우리의 삶을 나누었다. 가끔 원고지에 필사도 했다. 시를 외워오지 못해도 벌칙 같은 것은 없었는데, 시를 완전하게 외우려고 참 무던히도 노력했다. 시 적은 종이를 싱크대에 붙여놓고 설거지를 하는 중에 보며 외우기도 하고, 동네를 걷다가 보며 외우곤 했다. 김수영 전집 한 권을 다 공부하고 나서는 김수영 문학관도 함께 갔었다. 우리가 함께 시와 삶을 나눌 때, 나는 열심히 노트북으로 그 이야기들을 기록했고, 사진을 찍었고, 그 실시간 후기를 파란하늘 공동육아 홈페이지에 매주 올렸다. 우리 후기 게시글에 특히 아빠들이 응원을 많이 해주었다.


9099번째 게시글, 자유게시판, 파란하늘공동육아 홈페이지

그런데 그 아빠들은 알까? 우리가 함께 시와 삶을 나눌 때, 당신들이 주인공으로 자주 오르내렸다는 것을.

김수영의 '죄와 벌' 시를 나눌 때였던 것 같다.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다는 김수영의 그 민낯 구절에서 비록 시에 나온 것처럼 육체적 폭력까진 아니지만, 언어적, 감정적 폭력을 자행하던 각자의 남편네들이 떠올랐고, 우린 서로에게 우리의 속살을 내보였으며, 위로하고 함께 공감해주었다.

'죄와 벌', 김수영 전집 1, 민음사


그때 살던 우리 집은 남서향이었다. 늦가을 이후 해질 무렵이면 해가 집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길게 머물다 갔는데, 그때 해 지는 것을 바라보며, 초록별이 얘기했다.

"쥑이네. 쥑여. 이 시에 나오는 풍경이 딱 씩씩이네 집이여."

그 시가 이성복의 '붉은 열매들이 소리없이'였다. 시는 어려웠는데, 마지막 연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들을 위한 시 같았다.

가르쳐주소서, 우리가 저무는 풍경 한가운데서
오후의 햇빛처럼 머무는 법을


시모임을 마무리하고 하원 하는 쌍둥이들을 찾으러 갈 때면, 내 마음은 여느 날과 달랐다. 필요 없는 것들을 덜어냈으며, 대신 시로 가득 채웠다. 파블로 네루다의 표현처럼, 그렇게 시가 내게도 왔다.


아, 우리의 따뜻했던 시간.

그리고 거룩했던 시간.

그때가 정말 그립다.


'학교에 돌아가면 시를 가르쳐야지. 그래. 시를 가르치자.'

시엄니 모임이 끝난 후, 생각하곤 했다.


ㅡㅡㅡ표지 사진 : 책방시점, 강화도 독립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