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관련 그림책을 교실에서 함께 읽고 학교 숲으로 소풍을 가서 관찰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는 '한글이랑 소풍가기' 수업. 이번에 읽어 줄 그림책은 '내 안에 나무'. 저번 '오소리네 집 꽃밭' 수업처럼 이번에도 모둠 친구들이랑 함께 소풍을 가야 한다. 우리 모둠의 나무를 찾아서.
화려한 색감의 그림들, 짧고 단순한 문장들로 이루어졌지만 내면을 다루는 내용이라 1학년 아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시 그림책. 그림책을 읽어주는데,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말똥말똥 쳐다보는 눈들. 조금이라도 이해시키고 싶어, 더 많은 문장들을 사용해 부연 설명을 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다음 문장들 때문이었다.
내 안의 나무에는 기대어 쉴 그늘이 있고, 내 안의 나무에는 바람이 불기도 하고, 비가 오기도 하고, 진흙탕이 생기기도 해요. 내 안의 나무는 아주 강해요.
휘어져도 부러지지 않고 땅속 깊숙이 뿌리를 내려 다른 뿌리들과 이어져요. 모든 뿌리는 저마다 힘껏 줄기와 가지와 꼭대기까지 뻗어 올라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걸요.
코리나 루켄, 내 안에 나무 (n.p.: 나는별, n.d.)
가자, 학교 숲으로
이제 모둠 친구들과 함께 학교 숲으로 소풍을 가는 시간. 우선 모둠 친구들 각자 마음에 드는 나무를 그린 후, 모둠 나무를 정하라고 했다. 한글이랑 소풍가기 종합장, 색연필, 사인펜, 1인용 돗자리가 든 에코백을 들고 삼삼오오 떠났다. 한 모둠은 은행나무 다섯 그루가 심겨 있는 놀이터로, 한 모둠은 과일나무들이 모여있는 학교 텃밭 옆으로, 나머지 세 모둠은 나무들이 가장 많이 있는 생태 연못가로 가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은 서로의 나무를 묻느라, 어떤 나무를 모둠 나무로 정할지 이야기하느라, 그리고 그림을 그리느라 바쁘다.
원진, 정민, 준이... 남자아이들로만 꾸려진 1모둠은 또 티격태격이다. 10월에도 그랬는데, 이번 11월에도 1모둠은 신기하게도 남자아이들로만 뽑혔다.
"이번 한 달 동안, 너희들 숙제라고 얘기했지? 친구의 생각이 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 그리고 양보하는 것을 배우는 것. 이 숙제를 해야 2학년에 올라갈 수 있어."
아이들을 다독이는 건지, 협박하는 건지...
서인이가 나를 잡아 끈다.
"선생님, 이리 와보세요. 이 나무 이름이 뭐예요? 선생님 핸드폰으로 찾아주세요."
"핸드폰 그 앱은 꽃 이름 검색만 돼. 나무 이름은 안되는데. 그럼 서인이가 직접 이름을 지어주는 건 어떨까?"
"음, 미니 나무? 청* 나무 어때요? 우리 학교 이름. 아님 중구 나무?"
(중구는 우리 학교가 있는 행정구역이다.)
내가 대꾸를 안 하고 듣고만 있으니, 계속 이름을 지어 말한다.
"아, 주향 나무! 주향 나무 어때요?"
"주향 나무? 왜 주향 나무야?"
"이게 주목나무 같고, 향나무 같고..."
"주목나무에 '주', 향나무에 '향'인 거야? 이름 너무 좋다!"
서인이가 활짝 웃는다.
서인아, 넌 나의 '뻘'이야
내 교실 책상 옆에 붙여 놓은 함민복 시 '뻘'. 마음이 딱딱해질 때마다 읽고 마음을 다잡으려고 붙여 놓은 시.
서인이는 올해 나의 바로미터이다. 서인이 행동이 많이 불편하게 느껴지고, 잔소리하고 혼내고 싶을 때, 그땐 내 마음에 빨간 불이 깜빡깜빡 켜진 때이다. 그땐 내 마음에 조치를 취해야 하는 때. 그러지 않고 내버려두면, 깨 부술 수도 없는 딱딱한 콘크리트가 되어버릴지 모른다.
서인이는 공룡을 좋아한다. 공룡을 많.이. 좋아한다.
그림일기, 독서 공책, 생그래 활동책, 미술 작품, 모둠 작품... 모든 것에 공룡이 나온다. 도서실에 가도 공룡 책만 주로 빌려오고, 학교에 가끔 가지고 오는 장난감도 모두 공룡이다. 서인이는 공룡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다.
우리 반 서인이와 공룡들
며칠 전에는 학교에 오자마자 가방도 벗지 않고, 교실 책 쉼터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기억하고 싶어 사진을 찍었다. 그런 서인이를 경이롭게 바라보다가도, 순간순간 내 마음에 빨간 불이 켜질 때가 있다. 서인이 책상 서랍은 만물가게이다. 더 이상 들어갈 틈이 없는 서랍은 계통 없이 온갖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수업 시간 과제를 내주면, 다른 친구들 바라보느라 정작 자기 과제를 못하고, 남아서 하고 갈 때가 많다. 급식 시간 야채 반찬과 안 친하다. 늘 나랑 실랑이를 하다 가까스로 콩나물 한쪽, 김치 한 가닥을 겨우 먹는다. '죽어도 먹기 싫지만, 선생님한테 혼날까 봐... 아니 선생님 속상할까 봐 이렇게 먹어줍니다.'라는 눈빛을 보내며...
서인이 나무는 땅속 깊숙이 뿌리를 내려 다른 뿌리들과 이어져요. 모든 뿌리는 저마다 힘껏 줄기와 가지와 꼭대기까지 뻗어 올라요.
다음 날, 4모둠은 서인이가 개인 체험학습으로 학교에 오지 않았는데도, 서인이가 이름 지어준 '주향 나무'를 모둠 나무로 정하고, 모둠 그림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