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렁이들과 한글이랑 소풍가기 4

아, 김종철 선생님.

by 예농
나무 한 그루가 상처를 입으면 자기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고 고통을 같이하는 감수성이 중요합니다. 얼마 전 서울의 방학동에서 오래 묵은 은행나무를 지키기 위하여 단식 투쟁을 한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의 마음을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저는 위대한 시인들의 마음이 대개 그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위대한'이라는 말이 거슬린다면, 일반적으로 좋은 시에서 우리가 느끼는 마음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은 시적 사고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모든 생명을 하나로 보는 사고방식이거든요.

김종철,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n.p.: 삼인, n.d.), 61


좋은 시는 생명을 말한다

"왜 그렇게 시를 가르치세요?"

많이 묻는다. 그럴 때마다 멋있게 대답하고 싶다. 그러나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 문장이 되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 또 묻는다.

"혹시 시 쓰세요?"

시는 아무나 쓰나. 동료 선생님들에게도 똑바로 대답하지 못한 '내가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는 이유'. 김종철 선생님의 책,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시의 마음과 생명 공동체 부분을 읽고 한 문장으로 정리되었다. 좋은 시는 '생명'을 말하기 때문이라고.


나의 수업이 옷을 입는다

올해 내가 좀 안다고 생각해 시작한 '수업 연구 대회'. 연구 보고서를 쓰며, 인생 책들을 만났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게 정말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에는 훌륭한 분들이 정말 많았고, 그분들은 자신의 사상, 이론, 방법... 혹은 작품을 '글'로 '책'으로 남겨놓았다. 나의 수업이 옷을 입는다. 수호믈린스키, 김우인, 김종철의 옷. 시인 윤동주, 함민복, 김금래를 포함한 많은 시인들의 옷, 이름을 다 말할 수 없는 많은 그림책 작가들의 옷.


김종철. 내 나이 마흔넷. 난 그 이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안도현의 시 '애기똥풀' 마지막 연이 떠오른다.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김종철 선생님도 몰랐던 나. '녹색평론'은 알았지만, '김종철'은 몰랐던 나. 그런 내가 생태교육을 한다랍시고...그가 살아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가 살아있더라면 정말 얼마나 좋을까.


김종철 선생님의 책을 읽고, 내 수업 연구 주제를 넓혔다. '한글 능력'에 '생태 감수성'을 더했다.

동, 동, 동 프로젝트로 한글 능력과 생태 감수성 기르기. 드디어 완전해진 듯 하다.


시의 마음은 생명을 아파하는 마음이에요

책 '시적 인간 생태적 인간' 60쪽에 미국 노동사 에피소드가 나온다.

19세기 말, 공장 노동자들의 파업 이야기. 열악한 노동 환경, 노동 임금으로 노동 쟁의가 잦았던 그 시절, 특이한 파업이 단행되었다. 공장 마당의 오래된 느릅나무 한 그루를 기업주가 공장 증축으로 베어 버리려고 하는 것을 노동자들이 반대하여 파업을 결행하면서까지 그 나무를 기키려고 했다고 한다. 그들이 그 느릅나무를 지키려고 했던 이유를, 우리는 저 나무를 볼 때마다 우리들이 죽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말로써 밝혔다.

김종철,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n.p.: 삼인, n.d.), 60


우리 학교 비술나무가 아파한다

나는 그 부분을 읽고, 우리 학교 동산관 '비술나무'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우리 반이 도서실 가는 날, 우연처럼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모아비'를 발견하게 되었다. 며칠 후, '한글이랑 소풍 가기' 2학기 첫 수업을 했다.


다음은 우리 반 알림장에 썼던 수업 일기이다.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모아비' 환경 그림책을 함께 읽고 동산관 뜰에 나가 비술나무를 그렸습니다. 비술나무도 우리 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이지요. 얼마 전 1학기 때, 학교 옆 집에서 나무 잎사귀가 옥상에 떨어져 수로를 막는다는 민원으로 바깥쪽 비술나무 가지들을 흉하게 잘라냈습니다. 제가 그 비술나무를 좋아하는지라 마음이 안 좋았는데, 지난주에는 다른 한 비술나무 가지들을 자른다는 얘기를 듣게 되어 상심되던 차에 '모아비' 그림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나무를 그립니다. 같은 나무를 보면서도, 다 다른 그림들을 만들어 냅니다.

교실로 와 간단한 교육연극을 했습니다. 한 아이가 비술나무가 되고, 비술나무에게 위로가 되는 행동, 아프게 하는 행동을 몸으로 표현하게 하고,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낙서를 하는 아이, 비비탄 총으로 맞추는 아이, 베는 아이, 기어 올라가는 아이, 발로 차는 아이... 한 아이가 나와서 동작을 하고 다음 아이가 나와 동작을 쌓아갔습니다.

비술나무를 위로해주는 연극에서는 사랑의 큐피드를 쏘는 아이, 그림을 그려주는 아이, 물을 그려주는 아이가 나와 동작을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글로 써서 비술나무의 마음을 표현해보게 했습니다. 결국 이 수업은 국어 수업이니까요.

아이들이 다 가고 난 후, 아이들 종합장을 보며 아이들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맞춤법은 좀 틀리더라도 자기 마음속 이야기를 글로 표현해 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시의 마음을 가지며 자라나기를. 시의 마음은 곧, 생명을 아파하는 마음. 그게 내가 시를 가르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