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렁이들과 한글이랑 소풍 가기 2

좋은 수업 한 차시를 위해서 많은 이들의 노고가 필요하다

by 예농

바닥나고 있던 수업들

학기 초 정신없이 부장직 일을 해치우느라, 이제 갓 유치원 딱지를 뗀 꿀렁이들을 학교 생활에 적응시키느라 작년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지냈다. 다행히 3년 전, 1학년을 맡았을 때 저장해놓은 수업 자료가 있어 그것으로 꿀렁이들과의 수업을 겨우 겨우 이어갈 수 있었다. 비장하게 시작했던 동동동 프로젝트 수업연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때 아이들과 했던 '시가 있는 목요일' 수업 자료에 올해 직접 만든 한글 배움 활동지... 그것만으로 연구를 한답시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꺼내 만 쓰느라 내 수업의 저금통 잔고가 점점 바닥이 나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푼돈이라도 채워 넣자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책꽂이에 꽂혀 있던 교육 관련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 바실리 수호믈린스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났을 때, 바실리 수호믈린스키의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빛나야 한다' 책을 다시 꺼내 읽게 되었다. 그런데 예전에 읽었을 때는 아무 감흥이 없었던 한 페이지가 그날은 다르게 읽혔다. 127쪽을 읽을 때, 바실리 수호믈린스키가 실제 내게로 와, 내 등을 두드리며

"내가 했던 수업이야. 어때, 너도 한번 해볼래? 정말 좋았거든."


하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에게 어휘가 단지 물체 또는 현상에 대한 호칭이 아니라 그 안에 정서적 색깔인 낱말의 고유한 향기와 미세한 색조가 담겨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 애썼다. 어휘의 아름다움과 어휘가 반영하는 작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인간의 말소리를 전달하는 그림들, 즉 글자에 대한 흥미를 일깨워야 한다. 이것은 중요하다. 아이가 어휘의 향기를 느낄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어휘의 미세한 색조를 알아볼 수 있을 때까지 교사는 읽기와 쓰기 수업을 시작해서는 안 된다. 만약 아이가 어휘에 흥미를 갖기 전에 읽기와 쓰기 수업을 시작한다면, 이는 아이를 중노동으로 내모는 것이다. 아이들은 결국 어려움을 극복할 테지만, 그 대가를 생각해보라!


'아, 수. 호. 믈. 린. 스. 키!'


그리고 수호믈린스키가 스스로 '생각의 감정 원천'이라고 부르는 곳, 자연. 그곳으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야외학습을 '어휘의 원천으로 가는 소풍'이라고 불렀다는 구절을 읽을 때, 내 머릿속에 내 수업 연구의 두 번째 장이 열리고 있었다.


바실리 수호믈린스키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빛나야 한다 (앨런 코커릴 지음, 함영기 옮기고 고쳐 씀/ 한울림 출판사)


얘들아, 한글이랑 소풍 가자!

'우리 학교에도 자연이 있지. 지은 지 80년이 다 되어, 그 긴 시간만큼 가꾸어진 자연. 꿀렁이들과의 한글 수업을 그곳에서 하는 거야.'

'이 수업을 나도 '소풍'이란 말을 써서 '한글이랑 소풍 가기'라 부르겠어.'

수호믈린스키는 어휘를 가르쳐주기 전에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만들 자신이 없던 나는 그림책을 대신 읽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시작한 한글이랑 소풍 가기 수업.


한 차시 좋은 수업을 위해

수업을 하면서 한 차시의 좋은 수업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고가 들어가는지 점점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준 바실리 수호믈린스키뿐 아니라 자연 속에서 수업을 할 수 있게 학교 생태 환경을 가꾸어준 분들... 이런 분들이 없었다면 이 수업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철 따라 꽃씨를 심어주신 교장 선생님, 잡초 뽑고, 자란 풀 베고, 물 주느라 뙤약볕에서 땀 흘리시는 시설 주무관님, 반장님, 또 수업을 여는 활동에 사용할 수 있게 멋진 책을 만들어준 우리나라 수많은 그림책 작가들.

그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 한 번은 우리 반 알림장에 글을 쓰기도 했다.

지난 5월 20일 클래스팅 알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