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러 협동조합에 가입했다

나는 공동육아 조합원입니다 1

by 예농

공동육아? 협동조합?

우리 자녀들은 파란하늘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다녔고, 초등학생 5학년인 지금은 학교가 끝난 후, 파란하늘 공동육아 방과후를 다니고 있다. 어린이집을 다닐 때는 우리 부부는 공동육아 어린이집 사회적 협동조합 조합원이었고, 지금은 공동육아 방과후 사회적 협동조합 조합원이다. 현재 우리 조합은 30가구가 넘는다. 방과후 선생님까지 합치면 조합원 수가 70명이 좀 안된다.


우리 조합원들은 서로 누구누구 엄마, 아빠로 부르거나 본명을 부르지 않고 별명을 부른다. ‘조합 밖에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누구누구 엄마, 아빠인지’ 바라보지 말고, 서로를 독립된 인격체로 바라보자는 마음으로 정한 규칙이다. 내 별명은 ‘씩씩이’, 남편은 ‘튼튼이’. 튼튼이와 씩씩이는 우리 쌍둥이 아이들 태명이었다.


아이들은 선생님과 아마(아빠, 엄마)에게 말할 때 평어를 쓴다. 아이들도 선생님께 ‘개나리, 이것 좀 도와줘.’ 친구 엄마에게 ‘씩씩이, 오늘 집에 놀러 가도 돼?’ 아이, 교사, 아마간에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며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정한 규칙인데, 처음에는 많이 어색했는데, 금방 적응이 되었다. 아이들이 입학할 때, 학교 담임선생님께도 평어를 쓰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아이들은 금방 스스로 구분할 줄 알았다. 공동육아 안, 밖에서 언어생활을.


조합원들의 직업은 다양하다. 세상 직업이 다양하듯이. 아이 키우는 전업주부, 대학원에서 미술심리치료를 공부하는 학생, 중학교 선생님, 연극 극본 작가, IT 회사원, 공동육아 어린이집 선생님, 부동산 공인중개사, 로펌 회사원, 카센터 사장님, 공무원 등. 이들의 공통분모는 모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빠라는 것. 그리고 공동육아를 하고 싶어 모인 사람들이라는 것.

선생님으로 살다 보면, 해가 갈수록 주변에 온통 선생님들만 남는다는데, 나에겐 이들이 있어 좋을 때도, 고마울 때도 참 많다.



내 교육의 나침반, 공동육아

공동체교육


10년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6년간 내 아이들을 키우느라 학교 현장을 떠나 있었다. 그 절반의 시간을 공동육아 식구들과 함께 보냈다. 학교에서 반 아이들에게 늘 강조하던 것이 학급 공동체, 모둠 협동의 가치였는데, 공동육아를 하며 그 속에서 가장 많이 들은 단어 중에 하나도 ‘공동체 교육’이었다. 내가 공동체 가치를 좋아해서 공동육아 조합원이 된 걸까? 공동육아 조합원이 되어서 공동체 가치를 더 좋아하게 된 걸까?

공동육아 조합원이 되어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성장을 했다. 그때 배운 많은 것들이 학교 현장에 돌아온 나에게 든든한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아이들을 환대해주기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아침마다 ‘아침 열기’를 한다. 교사들과 아이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함께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도 나누고 하루 활동을 안내하는 시간이다. 어떨 때는 내 아이들을 데려다주러 왔다가 집에 돌아가지 않고 아마인 나도 함께 앉아 아침 열기를 같이 하곤 했다. 그럴 때 늦게 온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러면 아침 열기는 잠시 멈춰지고, 그 아이의 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까지 나와 쭈뼛쭈뼛 서 있는 그 아이를 따뜻하게 맞아준다.

“OO야,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어.”

그리고 그 아이가 따뜻한 공간과 시간인 아침 열기에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고 도와준다.

그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다.

‘네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야. 이 모든 것은 다 널 위해 준비한 거야.’

라고, 마치 그 장면이 아이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도 학교에 돌아가면 저렇게 아이들을 맞이해야지.’


1학년 아이들을 맡았을 때, 3월 첫날부터 아침 열기처럼 복도로 나와 아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주면, 아이들은 참 좋아했다. 어린이집에서도 그런 인사를 받고 와서인지, 나의 아침인사가 참 자연스러운 장면이 되었다. 그런데 6학년 아이들은 좀 달랐다. 내 눈빛을 피하며 당황해하는 단계-내 인사는 눈으로 받지만 어색해하는 단계-‘네’,‘안녕하세요’라고 대답까지 해주는 고마운 단계를 거치면 어느새 푸르런 5월이었다.


힘써 모이는 사람들


공동육아 조합원들은 많은 모임에 참여한다. 총회, 조모임, 방모임, 아빠방모임, 여왕방모임, 소모임 등. 소모임은 취미가 같거나,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모임이다. 모임이 넘쳐나는데도 보고 싶은 사람들끼리 시간을 내어 또 모인다.

어린이집 시절에는 나도 세 개의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우연히도 세 모임 모두 만들어지는데 나도 역할을 담당했다. 엄마들끼리 체스를 두는 ‘맘체스’, 엄마들과 영화 보러 다니는 ‘산책’, 이성복, 윤동주, 김수영, 백석 시를 함께 필사하고 암송하는 ‘시엄니’. 시 모임 이름을 정할 때, ‘시 읽는 엄마들을 니들이 알아?’란 뜻에 ‘시엄니’로 정하고 함께 깔깔대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직장에 다니느라 여유가 없어 모임을 열지도, 참여하지도 못하고 조합의 공식 모임에만 근근이 참여하고 있지만, 그때 조합원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시간, 공간을 떠올리면 어느새 마음이 따뜻해지곤 한다.


학교에 돌아온 후, 교원학습공동체 팀장(‘나무가춤을추면’팀, ‘까칠해도괜찮아’팀)을 자원하여 맡은 것도 그때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모임 이름을 짓는 일은 참 재미있다.


부모님, 그 존재의 무게감


각자 추구하는 가치대로 자녀들을 양육하고자 모인 공동육아 조합원들은 주어진 의무들도 기꺼이 해낸다. 한 달마다 이루어지는 조모임, 방모임을 할 때면, 모두 퇴근 후 모여 터전(아이들을 키우는 공간의 이름)의 운영과 아이들 교육에 관한 논의를 하느라 자정을 넘기기도 한다. 아이들이 졸업하기 전까지 이사회 이사를 한 번은 맡아야 하는데, 어떤 이사들은 직장보다 조합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이사회 회의를 새벽까지 하고 바로 출근하기도 하였다.

일 년에 세 번의 교육아마를 수행 해야 한다. 교육아마란 월차, 연차 휴가를 낸 선생님을 대신해 아마들이 하루 동안 선생님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하는데, 어떤 조합원은 교육아마 날짜를 맞추느라 직장 휴가 날짜를 조정하기도 한다.

터전 청소 및 정리, 남은 아이들 돌봄을 하는 하원아마도 한 달마다 돌아온다. 내 집 대청소는 일 년이 다 가도록 한 번을 못하는데, 터전 대청소는 일 년에 두 번을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 외 전국 어디에서 열릴지 모르는 공동육아한마당대회에도 참여해야 하고, 정기적인 조합원 교육도 일 년에 몇 시간 이상 이수해야 한다.

이 모든 일을 즐겁게, 때론 고통스럽게 해내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내 아이를 공동체 가치 안에서 키우기 위해 스스로 선택해 조합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권리도 갖는다. 아마들로 이루어진 이사들과 함께 어린이집 대표교사도 함께 이사회에 참여하는데, 아마들의 직접적이고 다양한 요구들이 대표교사를 통해 교사들에게 바로 전달되고 수용된다. 아마들과 교사가 함께 아이들의 교육에 관해 논의하는 방모임에서는 내 아이, 우리 아이들에 대한 생생한 얘기를 교사와 아마들을 통해 들을 수 있고 교사에게 바라는 점을 교사에게 부탁 또는 요구할 수 있다.


조합원이 된 첫 해, 방모임에서 겪은 일이다. 몇몇 아이들이 자꾸 싸우는 문제를 놓고 아마들과 교사 사이에 심각한 대화가 오고 갔다. 그러다 한 아마가 교사를 향해 직설적인 비판과 거침없는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지 못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모습은 다반사였다는.

그렇게 적극적이던 아마들이 공동육아 어린이집 조합원에서 공동육아방과후 조합원으로 옮겨가면, 많이 변한다.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과 아마들이 모두 주인공들이었다면, 방과후에서는 아마들은 역할이 작은 조연으로 물러난다. 일 년이 다가도록 얼굴을 못 본 조합원들도 생긴다.

학교 교육에도 시큰둥하게 된다. 학교 일에 대한 참여도도, 담임교사나 학교에 갖는 기대치도 다른 일반 학부모들처럼 점점 낮아진다. 그러나 아이를 대안학교로 선택해 보낸 아마들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파란하늘어린이집을 졸업한 아이들 중에 몇몇은 푸른숲발도르프학교, 꽃피는학교 등 여러 대안학교로 진학했다.


학교교육에서 학부모의 역할은 수동적이다. 학교가 국가기관이므로, 교육부, 교육청, 학교 정책이 하향식으로 전해져 내려와서일까? 학부모들이 설 자리가 별로 없다. 그렇게 열심히 조합 생활을 하며 아이를 키운 공동육아 아마들도 굳이 그 자리를 찾지 않는다. 혁신학교, 마을형결합학교가 생기면서 학교 교육에서 소외되었던 학부모들이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는 변화의 바람이 곳곳에서 불고 있었으나, 코로나 19로 인한 원격 교육 이후 그 바람도 모두 주춤해졌다.


조합 생활을 하다 보면, 학교 교사이면서 공동육아 아마인 내 위치가 가끔 불편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불편함이 나를 긴장시킨다.

그 긴장감을 갖고 학교로 돌아온 후, 부모님들을 대하는 나의 시선이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내 눈에 아이들만 보였다면, 이제는 아이들의 부모님들도 보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학교 일은 누가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