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농 Nov 03. 2022

시 마주: 준치가시라 부르자

백석 '준치가시'

"선생님, 연못 물고기가 죽은 게 있어요. 묻어줘도 되나요?"

점심시간 고구마 밭에 물을 주고 있는데, 서주가 와서 묻는다.

"그래. 묻어줘. 저 나무 밑이 괜찮을 것 같다."

연못으로 가더니, 죽은 물고기 세 마리를 모종삽으로 건져 왔다. 큰 물고기 두 마리, 아기 물고기 한 마리.

"물 빠진 연못에서 살아남지 못했나 봐요."

지난주 교장 선생님과 주무관님이 학교 연못 물고기들을 1학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곧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그때, 건져 올려지지 못한 물고기들인가 보다. 물 빠진 연못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겠지.   


텃밭 물을 주며, 흘깃흘깃 지켜봤다.

'장난스러운 장례 분위기가 되면, 가서 혼 좀 내야지.'  

제용이와 서윤이가 모종삽으로 끝도 없이 땅을 팠다. 제법 진지하다. 구덩이 깊이가 깊어질수록, 모여드는 아이들도 많아졌다. 나도 그 행렬에 끼기로 했다.  

"죽은 물고기들에게 가장 편한 곳을 만들어주자."

서윤이의 말이 끝나자, 강인이가 물조리개에 물을 듬뿍 담아와 구덩이에 부었다. 물이 차지 않으니,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서주가 죽은 물고기 세 마리를 그곳에 '안치'했다. 그러자 강인이가 연못 진흙뻘을 담아와 죽은 물고기들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낙엽들로 다시 덮어주었다.

진심인 아이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던 물고기 장례.

이번 주 월요일 생그래 시 외우기 발표회에서 65행의 긴 시, 백석의 '준치가시'를 외워 아이들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던 효인이가 그 자리에서 '준치가시' 시를 읊었다.

시낭송이 끝이 나니, 아이들 가운데 누군가 말했다.

"우리 이 물고기들을 '준치가시'라 부르자."


아이들은 이렇게 공감할 줄 안다. 사람도 아닌, 미물인 죽은 물고기에게조차.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5일이 되었다. 그동안 이 정권의 누구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은 유체이탈 화법을, 총리는 외신 기자와의 자리에서 농담을. 서울시장, 행안부 장관, 경찰청장, 용산구청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면, 오르기 힘든 피라미드 경쟁 체제. 그곳에서 살아남아 성공한 사람들.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 올라오며, 생각했다.

리더의 제1 덕목은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라는 것을.

내가 가르치는 이 아이들이 그런 리더로 자랄 수 있기를 간절히 꿈꾼다.   


준치가시
                         백석

준치는 옛날엔
가시 없던 고기.
준치는 가시가 부러웠네.
언제나 언제나
가시가 부러웠네.

준치는 어느 날
생각다 못해
고기들이 모인 데로
찾아갔네.
큰 고기, 작은 고기
푸른 고기, 붉은 고기,
고기들이 모인 데로
찾아갔네.

고기들을 찾아가
준치는 말했네
가시를 하나씩만 꽂아달라고.

고기들은 준치를
반겨 맞으며
준치가 달라는
가시 주었네.

큰 고기는 큰 가시
작은 고기는 잔 가시
등 가시도 배 가시도
꽂아주었네.

가시 없던 준치는
가시가 많아져
기쁜 마음 못 이겨
떠나려 했네.

그러나 고기들의
아름다운 마음!
가시 없던 준치에게
가시를 더 주려
간다는 준치를
못 간다 했네.

그러나 준치는
염치 있는 고기,
더 준다는 가시를
마다고 하고,
붙잡는 고기들을
뿌리치며
온 길을 되돌아 달아났네.

그러나 고기들의
아름다운 마음!
가시 없던 준치에게
가시를 더 주려
달아나는 준치의
꼬리를 따르며
그 꼬리에 자꾸만
가시를 꽂았네.
그 꼬리에 자꾸만
가시를 꽂았네.

이때부터 준치는
가시 많은 고기,
꼬리에 더욱이
가시 많은 고기.

준치를 먹을 때엔
나물지 말자.
크고 작은 고기들의
아름다운 마음인
준치 가시를
나물지 말자.

* 나물지: '나무라지'의 평안도 사투리

* 아이들 이름은 가명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함께 생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