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농 Dec 06. 2022

생태시 수업, 생그래 1

1. 시의 힘

지난 10월《나의 위대한 생태 텃밭》교육농 독서회 때였다. 올해 첫 학교 텃밭 농사를 시작한 터라, 학교 텃밭에 대해 나눌 게 별로 없었던 나는 대신, 시를 통해 생태를 이야기하고 함께 느끼고 배울 수 있었던 '생그래' 교육활동 사례를 잠깐 언급했다. 어떤 내용과 방법으로 진행했는지 독서회 선생님들이 궁금해하셔서 다음 11월 독서회 때 짧게 발표하기로 했다. 한 달 동안 나름 준비하다 보니, 긴 강의가 되었다. 풀씨께서 월간 교육농에 싣고 싶다고 내 강의를 원고로 정리해주셨다. 정말 감사할 일이다. 아래 이야기는 그렇게 해서 마련된 글이다.  



네 가지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 시의 힘 

- 왜 생태시였나

- 생태시 교육 방법

- 좋은 점



생태시 계기, 시의 힘

     

제가 육아휴직을 하며, 저희 아이들을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냈습니다. 그때 아마(아빠와 엄마)들 소모임, 시엄니(시 읽는 엄마들을 니들이 알아?)를 만들었어요. 1년 가까이했는데 이때 시 교육을 생각하게 됐어요. 시의 힘을 경험했거든요. 모임 할 때마다 시 한 편씩 외워오기로 했는데, 벌금 같은 건 없었지만 자존심은 걸려 있었죠. 외우다 보니 진심으로 도전하게 되더라고요. 어느 날인가 되게 힘든 하루였어요. 하지만 다음 날 시엄니 모임을 가야 돼서 시를 외워야 했죠. 근데 시를 외우면서, 그날 정말 많이 힘들었던 것들이 낫는 듯했어요. 시에는 정말 치유하는 힘이 있구나 느꼈어요. 


김수영의 〈달나라의 장난>, 이때 외웠던 시예요.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 집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 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 안에서 쫓겨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 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 던지니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 달나라의 장난 전문, 김수영


김수영이 굉장히 잘 사는 부잣집에 갔는데 거기서 한 아이가 팽이 돌리는 거를 본 거예요.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자기 신세가 너무 처량하게 느껴진 거죠. 팽이가 도는 것처럼 내 인생도 돌아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쓴 시인 것 같아요.


이런 경험도 있어요. 어떤 아마가 이 김수영의 〈죄와 벌〉이라는 시를 이야기해 주었어요.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놈이 울었고
비 오는 거리에는
사십 명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 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 죄와 벌 전문, 김수영


자기 아내를 길거리에서 우산대로 때렸다는 이 시 내용에 대해 다들 격해졌어요. 자기 남편들 욕을 했죠. 시 한 편으로 삶을 나누면서 뭔가 연결이 되는 듯한, 소통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시가 개인적인 경험을 얘기하는 어떤 매개가 된다는 게 좀 신기했었죠. 그 아마들과는 지금까지도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요.  


다음은 서경식《시의 힘》의 일부예요. 첫 페이지 첫 줄


 얄따란 시집 한 권을 손에 들고 그 무게에 절절맨다

가 강하게 와닿았어요.

먼저 말씀드렸던 두 가지, 소통과 치유가 내 개인적 경험이었다면 이분은 어떤 시의 힘을 얘기하는 걸까. 110쪽과 154쪽에 이런 내용이 있었어요.

 생각하면 이것이 시의 힘이다. 승산 유무를 넘어선 곳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러한 시는 차곡차곡 겹쳐 쌓인 패배의 역사 속에서 태어나서 끊임없이 패자에게 힘을 준다. 이렇게 패자가 계속 움직이게끔 살아가게끔 하는 게 시가 아니냐


그러면서 시는 고통받는 사람들, 소외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노래를 해야 된다고 하죠. 저항의 의미에서 시가 갖고 있는 걸 얘기하신 것 같아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 이것이 세 번째로 꼽을 시의 힘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2주 전에 이우학교 교장 선생님 강의를 듣게 됐는데 우리 사회의 슬픔, 우리 세계의 슬픔 다섯 가지를 얘기하시더라고요.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의 심화 ▲교육 격차 ▲기후, 환경, 생태계 위기 ▲공동체의 해체와 불안 ▲기술 혁명과 정보 사회. 이래서 우리 아이들은 슬픔 속에 놓여 있다고요. 그래서 교사가 이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 그런 강의 내용이었는데 저는 시의 힘을 읽고 있는 중이어서인지 이 다섯 가지 세계에서 우리가 살고 있구나, 이런 불합리한 세계 속에 사는 어려운 사람들을 시인들이 노래해야 하는 거구나 나름 정리를 할 수가 있었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시 마주: 준치가시라 부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