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의 힘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 집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 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 안에서 쫓겨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 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 던지니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 달나라의 장난 전문, 김수영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놈이 울었고
비 오는 거리에는
사십 명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 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 죄와 벌 전문, 김수영
얄따란 시집 한 권을 손에 들고 그 무게에 절절맨다
생각하면 이것이 시의 힘이다. 승산 유무를 넘어선 곳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러한 시는 차곡차곡 겹쳐 쌓인 패배의 역사 속에서 태어나서 끊임없이 패자에게 힘을 준다. 이렇게 패자가 계속 움직이게끔 살아가게끔 하는 게 시가 아니냐
그러면서 시는 고통받는 사람들, 소외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노래를 해야 된다고 하죠. 저항의 의미에서 시가 갖고 있는 걸 얘기하신 것 같아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 이것이 세 번째로 꼽을 시의 힘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2주 전에 이우학교 교장 선생님 강의를 듣게 됐는데 우리 사회의 슬픔, 우리 세계의 슬픔 다섯 가지를 얘기하시더라고요.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의 심화 ▲교육 격차 ▲기후, 환경, 생태계 위기 ▲공동체의 해체와 불안 ▲기술 혁명과 정보 사회. 이래서 우리 아이들은 슬픔 속에 놓여 있다고요. 그래서 교사가 이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 그런 강의 내용이었는데 저는 시의 힘을 읽고 있는 중이어서인지 이 다섯 가지 세계에서 우리가 살고 있구나, 이런 불합리한 세계 속에 사는 어려운 사람들을 시인들이 노래해야 하는 거구나 나름 정리를 할 수가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