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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농 Nov 08. 2022

내면과 가능성, 땅콩 너였다

땅콩은 미친 듯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두둑 한가운데 떡 하니 심어놓을걸. 반경 50cm 땅 위에는 아무것도 심지 않을걸.

지난 4월 말, 땅콩 모종 여섯 개를 사 와 아이들과 함께 우리 반 텃밭에 심었다. 공간의 효율성을 생각하며, 두둑 가장자리에 땅콩 모종을 심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땅콩의 확장성은 놀라웠다. 두둑 위 땅이 마땅치 않았던지, 그것은 두둑 아래 통로로 방향을 바꾸어 뻗어나갔다. 길어지는 줄기 아래 새로운 뿌리들이 계속 계속 생겨났다. 그러나 대부분이 뿌리를 감싸 안아 줄 새 흙을 만나지 못했다. 통로는 두둑보다 한참 낮았고, 아이들의 잦은 발자국으로 더욱 낮아졌다. 만났더라면, 새 흙 둥지 아래 더 많은 땅콩 열매들을 맺었을 텐데.

땅콩의 가능성. 지난 4월, 주먹만 한 땅콩 모종을 심을 때, 나는 알고 있어야 했다. 미친년 꽃다발 같아질 11월의 땅콩 모습을. 그리고 땅콩의 가능성을.


11월 4일 드디어 땅콩을 수확했다. 확 뽑아버리면, 뿌리에 매달린 땅콩들이 '땅' 속으로 '콩' 하니 떨어져 버릴까 봐, 아이들은 조심조심 흙을 털어가며, 조심조심 뿌리를 흔들어가며 작업을 했다. 여섯 그루나 됐는데, 얻은 수확물은 겨우 손 한 줌이다.


교실에 와서 냄비에 물을 넣고 소금을 치고 삶았다. 푹푹 김이 올라왔다. 기다리는 막간에 생그래 시 외우기 발표회를 했다. 땅콩 냄새가 지독하다며, 멀찍이 떨어져 교실 문에 서서 시를 외우고 들어가는 아이들. 자연의 냄새를 맡으면, 시가 더 잘 외워질 것 같다며 가까이 다가와 김에 얼굴을 파묻고 시를 외우는 아이들.

"선생님, 어째서 콩나물 삶는 냄새가 나는 걸까요?"

"아니야, 고구마 찌는 냄샌데?"

"옥수수 냄새지. 옥수수 삶을 때랑 똑같아."


얼마 전, 이우학교 교장 선생님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학생들과 시 창작 수업도 하시는 교장 선생님은 강의를 따뜻하고 힘이 있는 분위기로 이어나갔다.

세상의 슬픔에 놓여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교사의 언어는 달라야 합니다. 두 가지 면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요.
첫째, 아이들의 내면을 바라보는 말이어야 합니다.  
둘째, 아이들의 현재를 너머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바라보는 말을 해야 합니다. 제가 우리 학교 선생님들을 만나면 늘 당부하는 이야기이예요.
                                                                                    김철원, 이우학교 교장 선생님


"우리 땅콩도 한번 그려봐야지. 그런데, 이번에는 세밀화 말고, 다르게 그려보자. 땅콩으로 디자인을 만들어볼까?"

"이파리도, 뿌리도, 글자도 사용해봐."

아이들이 만들어 낸 '땅콩 변신, 그 내면과 가능성'


딱딱한 껍질을 까니, 물광피부 같은 속살이 나왔다. 아이들의 글이 나왔다.     


짧쪼름한 땅콩. 친구들이 냄새가 별로라고 시를 외우면서 땅콩과 저 멀리 멀찌감치 서서 시를 달달이 외울 때, 나는 땅콩 앞에서 우러러봤다. 짧쪼름하면서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것이 너무 맛있다. 눈에 불을 켜고 땅콩을 먹어댔다. 우리가 함께 키운 텃밭 땅콩을 우리가 먹는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또 놀랍다. 이 텃밭이 계속됐으면 좋겠다. (이*윤)

잎은 엄청 크고 무성한데 땅콩 열매는 조금 적어서 놀랐다. 땅콩을 삶았을 때 냄새가 할머니 댁에서 밥할 때 나는 냄새 같았다. (김*희)

껍질은 생각보다 단단해 까기 힘들었지만, 입에 넣는 순간 오독오독 씹히면서 고소한 맛이 났다. 지금까지 먹었던 당근, 가지보다 훨씬 맛있었다. 고소한 풍미도 좋았다. (안*민)

처음에는 살짝 썼는데, 갈수록 고소했다. 중독성이 있어 계속 6개 정도를 흡입하였다. 4월에서 11월까지 키운 보람이 참 크네. 땅콩아. 짧지만 센 고소한 맛을 줘서 고맙다. (김*휼)       
                                                                                                                    
삶고 나니 딱딱하진 않고 눅눅했지만, 맛있었다. 땅콩이 미더덕처럼 물을 발사했다. (서*주)

수확할 때, 끊어질 것 같아서 세게 하지 못해 힘들었다. 손도 시리고 흙이 묻어 느낌이 이상했다. 손 씻다가 동사 걸릴 뻔했다. 땅콩이 고소했다. 그런데 많이 못 먹어 아쉬웠다. (이*민)

내가 먹어봤던 땅콩은 딱딱한 땅콩뿐이었는데, 이건 말랑말랑 호물호물. 게다가 옥수수향 추가! (강*음)

맛이 라면 맛도 나고, 고소하고 달고 아삭하니 맛있다. 그런데 땅콩을 먹은 *서가 걱정스럽다. (김*롬)

오늘 땅콩을 먹는다. 그치만 나는 견과류 알러지가 있다. 그치만 먹겠다. 선생님이 '먹어도 괜찮니?'라고 하셨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정*서)
일단 첫맛은 꼬소꼬소한 맛, 두 번째는 옥수수맛, 그다음은 역겨운 맛이다. 다시는 먹고 싶지 않은 맛이다. (김*재)


* 표지 그림은 우리 반 화가, 강*음 학생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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