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작물은 모종으로 심는 게 아니다. 처음부터 씨를 뿌려 키워야 한다. 모종을 옮겨 심을 때, 뿌리 작물이 새로운 흙에 적응하기 위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모양이 이상하게 자란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를 포함한 우리 동학년 샘들 그 누구도 처음부터 이런 농사 지식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지난봄, 함께 모종 시장에 갔을 때, 갖가지 상추, 고추, 방울토마토, 땅콩 모종과 함께 당근 모종도 여러 개 사 왔다.
6학년 각반 텃밭에 옮겨 심기여 쑥쑥 자라던 당근은 두 달이 안되어 뻐드렁니 자라듯 기형적인 모습을 땅 밖으로 드러냈다. 그걸 보신 교장 선생님은 우리를 볼 때마다
"당근이 어쩜 이렇게 못생기게 자라나요? 수확은 할 수 있겠어요?"
라며 걱정을 하셨다.
그러나 독수리 5형제보다 더 강력한 우리 동학년 샘들. 꿈실 전문가 4반 샘이 못난이 당근 콘테스트를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서울대 박사님인 1반 샘은 '못생긴 작물이 맛과 영양이 더 좋다'는 수업 ppt 자료를 손수 제작해 나눔 했다. 그리고 학년부장님은 연신 '대박, 대박!'을 외치며 분위기를 한껏 돋우셨다.
'당근씨,당신덕분에 아이들에게 가르칠 게 이렇게 또 하나 생기는군요.'
우리 6학년 샘들은 이렇게 교육+ 농을 실천하고 있었다.
7월이 되니, 당근은 더 거침없어졌다. 열심히 북주기하며 흙 이불을 덮어주어도, 그때뿐. 잠자는 아이 이불 차듯, 흙을 걷어차버린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문어발 다리를 드러내었다.
마침내 7월 7일, 아이들과 못난이 당근을 수확했다. 못생긴 작물에 관한 생태 수업을 했고, 당근 콘테스트도 했다. 그리고 함께 당근을 나누어 먹은 후, 10분 글쓰기를 했다.
아이들이 뽑은 못난이 당근 1위
아이들이 지어준 이름
당근게, 당근게장, 근육당근, 당근산적, 스타벅스, 스님당근, 당근마켓의 신
아이들 글
당근이는 피부가 참 까글까글하고요. 생긴 건 마동석의 근육 같은 체형을 하고 있어요. 맛은 생긴 거에 비해 맛있어요. 우리 애기 잘 부탁해요.(강정*)
우리 텃밭의 당근들은 신기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 보통 파는 당근들은 길쭉하고 뾰족한 모양인데 우리 반 당근들은 신기하게 생겼다. 내가 이름을 지어줬는데 당근 게장이다. 게처럼 생겨서이다. 살짝 오돌토돌하고 냄새는 조금 달달한 냄새가 난다. (이경*)
이게 왜 대두 캐럿'이냐면 잎이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 머리같이 생겼는데 크기가 커서 '대두'이고 당근이니까 영어로 '캐럿'을 하기로 해서 '대두 캐럿'이다. 다른 것도 못생기긴 했는데 이 '대두 캐럿'이 가장 못생긴 것 같다. 향은 딱 당근 향이고, 촉감은 나무뿌리를 만지는 느낌이었다.(김서*)
당근의 생김새는 덩굴같이 꼬여있다. 만져봤을 때의 촉감은 거칠거칠하다. 철수세미 만지는 느낌 같다. 냄새는 당근을 먹을 때랑 똑같다. 쓰고 당근 특유의 향이 난다.(정현*)
아이들이 뽑은 못난이 당근 3위
아이들이 지어준 이름
앉아라, 못난이, 왕당근, 의자당근, 왕좌근, 에베렐, 당아치, 동굴, 무당도
아이들 글
일단 못난이 당근이라서 진짜 나보다 못생겼다. 촉감은 부드러우면서 거칠거칠하다. 냄새는 달달하다. 이름은 못난이다.(김효*)
멀리서 보이는 당근들을 보고 떠오른 생각이 있었으니 바로 무인도다. 종이컵에 몸을 반쯤 묻히고 살짝 튀어나온 주황빛 당근과 위에 자라나 있는 새파란 잎들이 우수수 있어 마치 야자수 나무처럼 느껴져서 '무당도'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안 뽑혔다. 특상에도...(이소*)
우리 반이 키운 당근을 교실로 가져왔다. 여러 당근을 보자마자 가장 인상 깊었던 당근은 첫 번째 당근이었다. 그 당근이 눈에 띈 이유는 모양이 백숙 같았기 때문이다. 이름은 당연히 백숙으로 지었고 스티커로 투표까지 했다. 먹을 때 그 맛은 아니었지만 재미있는 시간이었다.(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