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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농 Dec 18. 2022

생태시 수업, 생그래 3

3. 6학년 생태시 교육방법

지난 10월《나의 위대한 생태 텃밭》교육농 독서회 때였다. 올해 첫 학교 텃밭 농사를 시작한 터라, 학교 텃밭에 대해 나눌 게 별로 없었던 나는 대신, 시를 통해 생태를 이야기하고 함께 느끼고 배울 수 있었던 '생그래' 교육활동 사례를 잠깐 언급했다. 어떤 내용과 방법으로 진행했는지 독서회 선생님들이 궁금해하셔서 다음 11월 독서회 때 짧게 발표하기로 했다. 한 달 동안 나름 준비하다 보니, 긴 강의가 되었다. 풀씨께서 월간 교육농에 싣고 싶다고 내 강의를 원고로 정리해주셨다. 정말 감사할 일이다. 아래 이야기는 그렇게 해서 마련된 글이다.  



네 가지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 시의 힘

- 왜 생태시였나

- 생태시 교육 방법

- 좋은 점



직접 만든 생태시 모음집, 생그래


제가 만든 생태시 모음집이에요. 오른쪽 것은 작년에 만든 1학년용, 제 딸이 표지를 그려줬어요. 왼쪽 것은 올해 만든 6학년용인데, 저희 학년부장님이 6학년 전체가 다 했으면 좋겠다 하시며, 표지를 직접 그려주셨어요. 굉장히 잘 그렸죠? 미술을 전공하셨거든요. 그래서 올해는 6학년 전체가 생태시 교육을 했습니다.                       

제가 처음에 공동육아 때 시모임 얘기하며, 모임 이름이 ‘시엄니’였다고 했잖아요? 저는 이름 짓는 걸 좋아해요. 재밌더라고요. 오래 고민해, 생태시 자료집 이름을 ‘생그래’라고 지었어요. 

생, 생태시를 외워요. 
그, 그림을 그려요.
래, 내 느낌과 생각을 말해요. 


다음은 6학년 생그래 책의 목차예요.

윤동주부터 미야자와 겐지까지 55편으로 구성했어요.  목차, 내용 구성 양식은 제가 직접 만든거예요.




6학년 생그래 목차




생그래 구성





생태시 외우기 발표회 


백석의 〈수라〉라는 시예요. 학생들이 외우기 어려워하죠. 말이 너무 어려워서.       

             



 사진은 이 시를 외우고 있는 장면입니다. 학교 텃밭에서 수확한 땅콩 삶으면서 그 옆에서 시를 외우게 했죠. 이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잘 외우지 않는, 어려운 시들만 도전해요. 백석의 준치가시, 수라, 메리 올리버의 허리케인, 미야자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 등등. 이런 기특한 친구들이 꼭 있어요. 실패해도 긴 시만 외우는. 



시 외우기 발표회는 월요일에 해요. 주말에는 시와 함께 보내라고요. 외워왔을 때 짧은 시든 긴 시든 똑같이 칭찬해요.  

꼭 참여하지 않아도 그냥 듣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외우는 아이들한테는 사탕, 젤리나 스티커를 주는데, ‘시는 달콤한 거야’라고 좀 느끼라고. 때론 학급 전체 보상도 해요. 저도 가끔 외워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애들 앞에서.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 애기똥풀 전문, 안도현



안도현의 〈애기똥풀〉이에요. 이 시를 아이들 앞에서 외웠는데 실패했어요. 애들은 선생님이 실패하면 더 좋아하잖아요. 다음은 이런 경우를 담은 글과 그림이에요.


6학년 김*율 생그래





독자를 만들어주기: 친구들과 함께 해요


생그래 활동책을 1년 꾸준히 하다 보면 시들시들해질 때가 있잖아요.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독자를 만들어주기로 했어요. 자기가 쓴 글을 친구들이 읽고 짧게 글을 써주는 ‘친구들과 함께해요’. 처음에는 의미를 크게 생각지 않고 만든 칸이었어요. 시에 대한 그림과 글에 대해 친구들이 품앗이처럼 서로 짧게 한 두 문장 글을 써줘요. 그렇게 하니 학생들이 대충대충 안 하더라고요. 내가 한 걸 친구들한테 보여 줘야 하니까.



이 강의를 준비하면서 궁금해졌어요. 과연 우리 반 애들은 생그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무기명 설문을 했어요. 




“생그래를 할 때, 어느 부분이 가장 도움이 되는 것 같니?” 저는 그림 부분일 줄 알았거든요. 가장 쉬우니까. 그런데 애들은 ‘친구들과 함께 해요’가 가장 좋다는 거예요. 내 생각과 느낌을 친구들이 읽어준다는 행복감을 공유할 수 있다, 그래서 친구들 좀 더 친해지는 느낌이다, 이래요. 자기가 그리고 쓴 것을 친구들이 읽고 몇 줄 적어주는 게 아이들한테는 의미가 있구나.



독자를 만들어주기: 온라인 학급에 작품 올려주기



두 번째. 우리 반 온라인 학급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아이들 작품을 올려줘요.



교사가 좀 수고스럽기는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꼭 올려서 아이들 작품에 나름의 의미 부여를 하는 거죠.

이 시는 메리 올리버의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요〉예요.



정말이지 개미는 활기가 넘친다니까! 
발에 밟히면서 얼마나 법석을 떠는지 봐.

-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전문, 메리 올리버 



온라인 학급에 올린 거예요. 한번 볼까요.


6학년 김*율 생그래



이렇게 아이들의 그림을 글과 함께 올려주면, 학생들이 보면서 자기 작품이 출판되는 듯한 즐거움을 조금이나마 느끼지 않을까. 나중에 모아서 학급문집에도 넣어줄 예정이에요. 





교사도 함께 하기




저는 정말 가끔 합니다. 하지만 할 때는 엄청나게 생색을 내죠. 선생님도 했다 하면서. 한 학기 한두 번 하나요. 근데 어른이 될수록 참 생각이 딱딱해진다는 걸 느끼는 게 시를 읽고 그림을 그리려 하면 생각이 안 나요. 뭘 그려야 되지 싶어요. 그래서 그냥 시에 나오는 식물, 꽃을 그리게 돼요. 애들은 상상력이 유연한데 저는 나이가 먹을수록 참 머리가 안 굴러가는구나 싶죠. 



나물 캐러 들에 나온 순이는
나물을 캐다 말고 꽃을 땁니다.

앉은뱅이꽃,
마른 잔디 속에 앉은뱅이꽃
벌써 무슨 봄이라고
꽃이 피었나.

봄 오면 간다는
내 동무 순이
앉은뱅이꽃을 따며
몰래 웁니다.

- 앉은뱅이꽃 전문, 이원수



앉은뱅이꽃이 제비꽃의 다른 말이래요. 그래서 제비꽃을 찾아서 그렸어요. 아까 얘기했던 애기똥풀 같은 경우도 그렇고요. 그것밖에는 생각이 안 나니까.





학교 행사로도 생그래를


생그래 활동을 학교 행사로도 했어요. 첫 번째 사진은 지난 4월 6학년 과학 행사 때예요. 이때 생태시 외우기를 종목으로 넣었거든요. 생태 환경도 과학에 속하니까. 6학년 각반 학생들이 우리 반에 와서 시를 외웠어요. 왜 생태시 외우기를 선택했는지 물어보니, 가장 쉬울 것 같았대요. 하지만 시를 끝까지 외우는 데는 대부분 다 실패했어요. 시 외우는 게 쉬운 게 아니구나 경험했겠죠. 시간을 좀 더 주고, 조금이라도 외웠으면 다 상을 주긴 했어요. 



그 아래는 생그래 전시회. 6학년 텃밭 음악회 때, 각반 미술 작품도 전시해야 했는데, 우리 반은 뭘 전시할까 고민하다, ‘가장 우리 반 다운 걸 하자’ 생각하고 만든 거예요. 자기가 했던 생그래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다시 한번 그림을 정성스레 그리고, 그 아래 QR을 만들어 붙였어요. 스마트폰으로 QR을 인식하면, 학생이 자기 그림과 글을 설명하는 영상으로 연결돼요. 





* 표지 사진은 6학년김*율 학생의 그림입니다. 메리 올리버 시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를 읽고 그림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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