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있다는 실감
<80일간의 신혼여행> 33번 째 글.
아내와 함께 일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온 지 한 달이 넘었다. 우리가 계획한 80일 여행의 3분의 1을 넘은 지금, 이때까지의 여행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며, 무엇을 주었을까?
여러 가지가 떠오르지만, 오늘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바로 ‘휴식하는 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일을 시작한 뒤로 제대로 쉬었던 것이 언제였을까? 주말, 공휴일, 연차 등등 ‘쉬는 날’은 많았다.
하지만 그 쉬는 날에 우리는 진정으로 ‘휴식’을 했던가?
쉬는 시간이 생기면 침대에 눕거나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핸드폰으로 포털의 뉴스를 보며 스트레스받고, 관심도 없던 주제의 유튜브 쇼츠를 넘기며 빠르게 움직이는 화면에 정신을 빼앗긴다.
겨우 정신을 차려 다시 생산적인 모드에 돌입한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 일요일을 반납하고, 다음 주에 있을 일을 걱정하며 메일함을 열어본다. 머릿속은 항상 무언가에 쫓기 듯 부글부글 댄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다. 피로는 풀리지 않고 마음은 계속해서 불안하다.
휴식은 어렵다.
나는 정기적으로 번아웃이 왔다. 아내는 그 모든 스트레스가 곪았다 한 번에 터져 대상포진에 걸렸고, 이윽고 건강검진에서 심장에 이상을 발견했다.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지만, 이 상태를 무작정 이어갈 수는 없었다. 휴식이 필요했다. 하지만 휴식은 어떻게 하는 걸까?
우리는 긴 고민 끝에 ‘체력이 먼저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산티아고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실제로 일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왔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체력은 물론 휴식하는 방법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산티아고 길을 걸은 지 26일 차, 지금까지 약 465km를 이 두 다리로 걸어오고 있다. 육체적인 피로는 쌓일 대로 쌓였다. 아내의 발가락 몇 개는 감각이 마비된 채 돌아오지 못하고 있고, 내 허리와 어깨는 걸을 때마다 쑤셔온다. 그럼에도 오늘 묵고 있는 숙소에서 ‘우리 제대로 휴식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묵는 숙소는 산티아고 북쪽길 위 작은 마을 한 구석의 El Pinar(엘 삐나르)라는 호스텔로 이 숙소에 도착하는 길은 꽤나 험했는데, 23km를 걷는 짧지 않은 거리 더해 마을 초입부터 화장실이 너무 급했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길에서 화장실 문제는 정말 피하고 싶은 일 중 하나이지만, 나의 첫 번째, 두 번째 산티아고 길에 이어서 이번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아내와 있을 때 항상 조잘조잘 대는 나는 어느샌가부터 입을 꼭 다물고 걷기에 집중했다. 절박한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하지만 빠르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길쭉하게 늘어선 마을, 아무리 걸어도 좀처럼 숙소가 나타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드넓게 펼쳐진 밀 밭에는 거름이 전방위적으로 뿌려져 있었다. 그렇게 독한 냄새는 살면서 거의 맡아보지 못했다. 나의 배도 더 아파왔다.
여기까지인가… 포기하려 할 때 언덕 위의 호스텔을 발견했다. 체크인도 전에 화장실로 향했다. 극적으로 나의 존엄성도, 국가의 명예도(?) 지킬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숙소는 근사했다. 얼마 전에 묵었던 대도시 히혼의 숙소도 넓고 쾌적했지만, 이곳은 시골 마을에 있는 작은 리조트 같은 분위기가 흘렀다. 주변은 조용하고 한가로웠고, 주인분은 친절했다. 마당 한가운데는 투숙객이 모여 식사를 하거나 쉴 수 있는 공용공간도 있었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곡소리를 내며 침대에 누웠다. 근처에 식당이 없었지만, 숙소에서 파는 (아마도 냉동식품으로 보이는) 피자를 시켰다. 방 안의 TV에 유튜브를 연결해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 놓고 피자를 먹었다. 정말 냉동피자 맛이었다. 그럼에도 즐거웠다.
잠깐 낮잠을 자고 해가 저물 즈음, 공용 공간으로 산책을 나갔다. 조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자 투숙객의 휴식을 위한 곳이지만 손님이 우리 밖에 없는 것인지 아무도 없었다. 그 고요함이 좋았다. 우리는 커피머신에서 차와 코코아를 뽑아 소파에 앉았다.
이 장소에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창문이었다. 그 넓은 건물의 한쪽 벽면 전체가 유리창이었는데, 언덕 위에 있는 이 호스텔에서 저 멀리 작은 시골 마을이 다 내려다 보였다.
해가 저물기 전부터 앉아있던 우리는 한참이나 멍하니 그 창 밖의 마을을 바라보았다. 해가 지고 어둑해질 때까지.
분명 몸은 아프고 피곤했는데, 행복했다. 잘 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쉬고 있다’는 생각의 원천은 ‘지금 여기 있다’는 실감 때문인 것 같다.
실감: 실제로 체험하는 느낌. 지금, 여기에 있는 느낌.
이 실감을 하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바쁘게 하루를 살아가면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인다.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한다. 핸드폰 속에는 ‘여기 있지 않은 사람들’의 소식이 끊임없이 울린다. 그렇게 나는 여기에서 저기로, 현재에서 과거로, 혹은 미래로 부유하며 방황한다. ‘지금 여기’를 실감하지 못하게 된다.
내가 휴식하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이 실감의 부재 때문 아니었을까? 실감의 부재는 불안으로 이어졌다. 일을 마치고 집에 와도, 주말이 와도, 나는 불안했다. 내 미래가, 인간관계가,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사회가(적어도 포털 뉴스란에서 보이는 세상은 지옥 같았다.) 걱정되었다. 마치지 못한 일 때문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때문에 불안했다.
그렇게 죄책감과 제약과 의무감은 쉬는 날에도 나와 얼기설기 얽혀서 마음을 조여왔다. 아마 아내도 마찬가지였으리라.
하지만 오늘의 나는 아내와 함께 이 El Pinar라는 호스텔의 공용공간에서 창 밖을 바라보며 오롯이 존재했다. 세상과 단절된 채, 내일 출근해야 하는 회사도 없는 상태로, 제약과 의무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오롯이 ‘현재’에 존재했다. 그 ‘존재함’을 실감했다. 그리고 바로 그 실감이 나에게 정신적인 휴식을 가져다주었다.
제약과 의무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오롯이 '현재'에 존재했다.
그 '존재함'을 실감했다.
이번 여행이 가져다준 선물 중 하나가 바로 실감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 것 아닐까.
나와 아내 둘 다 생각이 많다. 걱정이 많고, 일에 온 신경을 쏟는다. 옛날 일에 이불을 차고, 다가올 미래를 설계하느라 부산하다. 일상에서 우리는 그런 생각들을 끊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연결고리들, 제약과 의무를 최대한 끊어내고 80일 동안 둘만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여행이라는 낯섦에 적응을 하고 조금씩 정신이 들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신경 쓰고 걱정하던 것들은 잠시 잊고 이 여행에 있다는 실감을 조금씩이나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실감이 우리로 하여금 휴식하게 하고 있다.
여행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보고 경험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휴양지에서 여유를 만끽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혹은 낯선 환경에서 놓여 자신의 감각을 벼리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이 중에서도 오늘 내가 느낀 여행의 이유는 일상의 환경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그리하여 실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게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실감을 여행에만 의존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이번 여행은 실감이 휴식의 조건이며, 실감을 위해선 나를 둘러싼 환경을 차단하고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알려줬다. 긴 여행을 통해서 실제로 그 환경, 혹은 생각을 차단할 수도 있겠지만 계속해서 여행만 할 수는 없다. 일상에서 그 걱정과 불안을 야기하는 생각을 끊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지금부터 하나씩 실천해 보기로 했다. 시작은 유튜브 쇼츠를 보지 않는 것. 이외에 온라인에서 지나치게 허우적 대지 말 것. 우리는 하염없이 창 밖을 바라보고 방으로 돌아가면서 다짐을 했다. 이 실감을 좀 더 자주 느끼기 위해서 현재에 있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