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맛집 순례단으로 이름 바꿉니다.
<80일간의 신혼여행> 34번째 글.
산티아고 길을 걷기 시작한 이래 밥만큼은 부족함 없이 잘 먹고 다녔다. 그런데 길을 걷은 지 28일 되는 이 날을 기점으로 입이 더 터지기 시작했다. 스페인 맛의 끝판왕 지역으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름하야 갈리시아 지방.
갈리시아 지방은 스페인의 서북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서늘하고 습한 지역으로 꼽힌다. 다른 지역에 비해서 유명한 도시나 관광자원이 많지는 않은 편이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있는 지역이기에 모든 순례자는 갈리시아 지방을 거치게 된다.
나의 지난 두 번의 산티아고 길에서도 갈리시아 지방을 지났었는데, 당시에는 워낙 예산이 적어 외식을 거의 못했음에도 음식이 유독 맛있었던 기억이 있었다. 이번에 알아보니 실제로 갈리시아 지역은 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 좋은 식재료가 많이 나고, 연간 300여 개의 미식 축제가 열릴 만큼 스페인 내에서도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https://www.mk.co.kr/news/culture/10274262)
갈리시아 지방이 가까워오며 아내에게 제안을 했다. 뒤의 여행 예산을 조금 조정해서라도 식비 예산을 더 늘리자고. (그래봤자 산티아고 길의 식비는 일반 유럽 여행지 식비의 절반 혹은 3분의 2 수준이지만)
아내는 갈리시아 음식이 그렇게 맛있냐고 반문하며, 예산 조정은 천천히 하고 일단 갈리시아에 가서 음식을 먹어보면서 생각하자고 답했다. 그리고 오늘 북쪽길에서 갈리시아 지역을 처음 만나는 도시, Ribadeo(리바데오) 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를 채 마치기도 전에 예산 조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얼마나 맛있길래 이렇게 호들갑을 떨까.
스페인 맛의 고장 갈리시아 지역에 들어온 기념으로 이번 편부터 8회에 걸쳐 우리가 갈리시아 지역을 걸으며 먹은 최고의 음식과 맛집을 소개하려 한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갈리시아 음식&맛집 랭킹 Top 8’
오늘은 그 첫 번째 순서로 8위를 차지한 카초포를 소개한다.
/ Restaurante el pozo de güelita(레스따우란떼 엘 뽀조 데 궬리따) @ La Caridad
22유로
https://maps.app.goo.gl/sFrtDiQZuhWMzHcc9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서 약 230km 떨어진 북쪽길의 La Caridad이라는 마을, 이곳엔 무려 아스투리아스 지방 1위, 스페인 전역 2위에 선정된 카초포 맛집이 있다. (2023년 기준)
위의 설명과 같이 이 마을은 갈리시아 지방이 아닌 아스투리아스(Asturias)지방에 있는 마을이다. 하지만 갈리시아 지역 바로 전에 있는 마을이기도 하고, 워낙 상징적인 맛집이라 추가했다.
카초포는 쉽게 이야기하면 치즈 돈가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큰 차이점은 돼지고기 대신 소고기, 하몽, 치즈가 들어간다는 점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찍어먹거나 부어먹는 소스가 없다는 점도 다르다.
우리는 프랑스길에서도 이 카초포를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입에 잘 맞지 않았다. 내가 체한 이후라 잘 넘어가지 않기도 했고.
그런데 북쪽길에서 우연히도 스페인 전역에서 카초포 2위를 달성한 맛집을 만난 것이다. (카초포 대회가 있다는 사실도 특이하다)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맛보리라, 마음을 먹고 식당을 향했다.
(스페인의 여느 식당이 그렇듯) 식당은 5시에 문을 열었음에도 7시가 되어서야 음식을 주문할 수 있었다. 우리는 식당에 제일 처음 도착해 와인 한 잔을 마시며 7시를 기다렸다.
식사가 가능한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줄을 서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식사를 위한 테이블이 가득 찰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작은 마을임을 생각하면 꽤 많은 손님이 몰리는 것 같았다. 역시 카초포 최고의 맛집이라 이건가…
우리는 카초포와 샐러드를 시켰다. 동시에 모든 손님의 주문을 받은 뒤 차례로 음식이 나왔다.
이곳의 카초포는 그 크기부터 심상치 않았다. 내 손의 2~3배는 되어 보이는 압도적인 크기였다. 한국으로 치면 왕왕돈가스 정도. 가장자리부터 공략하기로 했다.
끝 부분을 잘랐음에도 불구하고 소고기와 하몽, 치즈가 보였다. 카초포는 튀김이 얇은 것이 특징이었다. 안의 음식들을 한 데 모아주고, 그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용도 같다고 할까.
육즙,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그 촉촉함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거기엔 아마도 이베리코 돼지고기와 소고기의 향이 배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치즈 풍미가 느껴진다. 이 치즈는 한국의 치즈돈가스에 들어있는 치즈와는 달랐다. 반 즈음은 액체화 되어있는 이 치즈는 소스에 가까웠다. 그 짭조름하고 감칠맛 나는 치즈가 소고기와 하몽을 하나로 만들었다. 얇은 튀김옷 속에서 얇게 저민 소고기와 하몽, 그리고 거의 액체화 되어 있는 치즈, 이게 카초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짭조름하고 감칠맛이 강한 음식이었다. 식감은 두꺼운 고기를 씹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소스 없이 돈가스를 먹는다는 게 상상이 잘 가지 않았는데, 카초포를 먹어보니 그 촉촉한 식감이라면 소스 없이 먹는 게 가능하구나, 하고 납득이 갔다.
맛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국인의 입맛에서 완벽한 음식이라 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우선 튀김옷의 바삭함이 적었다. 한국의 튀김 기술은 반도체의 그것과 비견될 정도로 발전해있지 않은가(물론 말도 안 되는 비교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튀김옷의 바삭함은 그 기준이 상당하다. 더구나 카초포를 ‘스페인식 치즈 돈가스’라고 정의 내린 순간부터 그 바삭함의 스탠더드가 세워지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카초포의 튀김은 튀김옷으로서의 만족감을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소고기와 하몽, 치즈를 모아두는 역할에 그친다고 할 수 있다. 아마 그 크기 때문에라도 튀기는 과정에 어려움이 큰 것도 한몫하겠지만.
단 맛의 부재 또한 뭔가 모를 아쉬움을 가중시킨다. 이것은 분명 한국인이라 느끼는 아쉬움일 것이다. 한국은 단짠단짠에 길들여져 있다. 짜면 설탕을 넣고, 달면 소금을 넣어 ‘단짠 밸런스’를 맞춘다. 돈가스를 먹을 때 이런 단짠의 밸런스는 돈가스의 소스가 책임을 진다. 하지만 카초포는, 아니 유럽의 거의 모든 음식(식사를 위한 음식)에는 단 맛이 없다. 그래서 한국인은 유럽에서 먹는 음식을 짜다고 느낀다. 들은 바로는 실제로는 한국의 음식에 나트륨이 더 많으나 유럽에서는 음식에 설탕을 쓰는 것이 상당히 낯선 일이라 전반적으로 음식이 더 짜게 느껴진다고 한다. 여하튼 카초포를 먹을 때 이 단짠 밸런스가 맞지 않는 느낌을, 한국의 입맛을 가진 나로서는 느낄 수밖에 없었다.
뻑뻑함이 느껴지는 것은 식사에 국물류가 없는 유럽 식문화의 특징 때문일 것이다. 한국식 돈가스와 비교해 카초포는 기본적으로 촉촉한 음식이다. 하지만 돈가스집의 장국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같이 나온 감자튀김은 그 뻑뻑함을 한 층 가중시킨다.
이렇게 아쉬운 점이 분명 있었지만, 그것은 식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카초포는 분명 스페인의 맛이 잘 담겨있으면서도, 우리에게 친숙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맛있는 요리였다. 스페인 산티아고 북쪽길을 걷는 분이라면 한 번 들려서 식사를 해보시는 것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