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산티아고 음식&맛집 랭킹 Top8 - 1위 뿔뽀 감바스 알 아히요
산티아고 길에서 먹었던 음식 중, 아니 스페인에서 먹었던 음식 중 가장 맛있었던 음식을 꼽으라면 나와 아내 모두 이 음식을 꼽는다. 지금부터 그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우선 이름부터. 뿔뽀와 감바스는 각각 문어와 새우를, 아히요는 마늘을 뜻한다. 그러니 뿔뽀 감바스 알 아히요는 문어와 새우를 마늘 기름에 요리한 음식이라 할 수 있겠다.
앞서 소개한 스페인 갈리시아 지역의 대표적인 음식인 뿔뽀 알 라 가예가에서 이미 문어요리를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음식은 전혀 다른 음식이다. 뿔뽀 알 라 가예가는 삶은 문어 위에 올리브유와 소금을 뿌린 음식이다. 태생이 삶은 음식인 것이다. 하지만 알 아히요는 마늘 기름에 거의 튀기듯 볶아낸다는 점에서 요리 방법이 전혀 다르다.
사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감바스 알 아히요와 거의 같은 음식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 문어가 추가로 들어갔을 뿐이다. 음식을 시킬 때만 해도 그 정도로 생각했다.
우리가 이 식당에 간 날은 산티아고 길을 걸은 지 28일 차였다. 이미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몇 번의 감바스를 먹었다. 놀라운 점은 그 감바스들이 별로였다는 사실이다. 한 번은 알베르게에 딸린 식당에서 감바스를 시켰다. 아내와 산티아고를 걷기 시작한 이래 처음 먹는 감바스였다. 스페인 본토에서 먹는 감바스라니, 큰 기대를 안고 주문을 했다. 그런데 비주얼부터 김이 빠졌다. 칵테일 새우같이 조그만 새우 몇 마리가 다였는데, 그마저도 새우 똥을 빼내지 않았다. 보글보글 끓는 비주얼은 좋았으나, 마늘향도 새우향도 거의 나지 않았다. 이게 올리브유가 맞긴 한 걸까, 싶을 정도로 무미건조한 향이었다. 새우를 한 입 먹으니 비린내가 입 안에 퍼졌다. 그날은 38km를 걸어 완전히 녹초가 된 상태였는데도 맛이 없었으니, 말 다 했다. 그 외에도 두 번을 먹었는데 그저 그랬다.
어쩌면 감바스에 대한 우리의 기준이 너무 높아서 일 수도 있다. 혹은 한국적인 입맛에 스페인 방식이 안 맞는 것일지도. 우리는 감바스를 좋아한다. 집에서도 감바스를 자주 해 먹는데, 솔직히 바깥에서 사 먹는 것보다 우리가 만든 게 훨씬 맛있다. 큼직한 좋은 새우를 준비하고 마늘을 듬뿍 넣고 페페론치노도 마음껏 넣기 때문일 것이다. 올리브와 새우 향이 향긋하게 올라오고, 새우의 육수가 가득 담겨 진해진 올리브유는 짭짤하다. 페퍼론치노는 매콤함이 일말의 느끼함까지 싹 잡아준다. 스페인에서 있으면서도 우리가 만든 감바스가 그리워졌다.
스페인 감바스 별 것 없구나, 하는 건방진 생각을 하던 그때, 바로 이곳을 만났다. 스페인 내에서도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한 갈리시아 지방에서 처음 도착한 도시, Ribadeo(리바데오)에서.
우리는 28일간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실망했던 감바스를 떠올리며 큰 기대를 갖지 않기로 했다. 더구나 이 식당은 점심에 문을 연 몇 안 되는 식당이라 무턱대고 들어간 곳이었다. 맛집인지 뭔지 아무런 정보도 찾지 않고 간, 그야말로 랜덤하게 들어간 식당이었다. 그리고 메뉴판에 뿔뽀와 감바스가 함께 들어간 요리가 있길래 한 번 시켜본 것뿐이다.
식당은 넓었다. 넓은 자리가 꽤 많이 차 있었는데, 중간에 테이블을 붙여 사람들이 길게 늘어앉아 식사에 술을 곁들이고 있었다. ‘스페인도 회식을 하는구나’, 그런데 현지인이 이렇게 있는 걸 보니 왠지 맛집의 기운이 느껴졌다.
우리는 두 가지 메뉴를 시켰는데, 하나는 뿔뽀 감바스 알 아히요, 다른 하나는 스테이크였다. 우리의 관심사는 스테이크였으므로, 웨이트리스분이 뿔뽀 감바스 알 아히요를 내주었을 때는 무심한 표정이었다. 요리는 넓고 흰 접시 위에 있는 갈색 자기 그릇에 담겨 있었고, 그 그릇을 또 다른 넓고 흰 접시가 뚜껑처럼 덮은 상태로 나왔다.
웨이트리스는 음식을 식탁에 내려놓은 위 뚜껑 접시를 열었다. 처음엔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음식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음식의 향은 올라왔다. 눈보다 코가 먼저 알아챘다. 이 음식의 진가를. 내 시선은 그 김 너머에 있는 뿔뽀 감바스 알 아히요로 향했다. 이윽고 음식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깊은 몰입의 상태. 내 눈앞에 있는 음식에 내 모든 의식이 집중되었다. 강한 마늘 향이 코 깊숙이 삼켜졌다. 이 정도 마늘 향이 스페인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던가. 마늘의 민족인 내가 만족하고도 남을 정도의 진한 마늘 향, 그리고 문어와 새우에서 나오는 바다의 향, 고소하고 시원한 향이 연달아 느껴졌다. 그리고… 어? 매콤함? 설마...
스페인어로 매운맛을 Picante(삐깐떼)라고 한다. 우리는 이제껏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삐깐떼?를 물었다. 매운 음식이 있느냐, 매운 소스가 있느냐, 하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나온 음식, 혹은 ‘Picante’’가 크게 쓰여있는 병에 담긴 소스를 받은 우리는 코웃음 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삐깐떼야? 나중에 이해하게 된 사실이지만, 유럽에서는 맵다는 것은 향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 생각해 보면 사실 맵다는 맛은 혀의 통증일 뿐이니깐. 그래서 스페인에서는 일말의 매운맛도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스페인 갈리시아에 있는 이 음식에서 매콤한 기운이 느껴진다. 색깔도 붉은 기가 돌았다. 파프리카의 색과는 분명 달랐다.
놀란 우리는 얼른 새우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정말 약간의 매콤함이 느껴졌다. 이거다! 우리가 찾던 맛이. 재밌게도 여기 새우 역시 똥을 빼지 않았고, 크기도 작았다. 그런데도 새우의 탱글탱글한 식감이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비린내도 전혀 나지 않았다. 바다의 향 뿐이었다. 올리브 오일을 한껏 머금은 새우는 고소하고 짭짤하고 달고 매콤했다.
곧바로 문어를 집어 들었다. 뿔뽀는 과연 어떤 맛일까. 입에 넣었고 턱관절이 한 번 움직였다. 그런데 웬 걸, 문어가 녹았다. 쫀득쫀득한 문어가 쫀득하게 녹았다. 입에 쫙쫙 달라붙는 문어가 순식산에 사라졌다. 놀라운 식감이었다. 거기에 큼직한 마늘을 씹는다. 푹 익은 마늘은 여전히 강렬한 향을 머금고 있다.
아내와 나는 그렇게 새우와 문어, 마늘을 한 조각씩 먹고 나서 눈을 마주쳤다. 어쩔 수 없다. 불가항력적이다. 맥주를 시켜야만 한다. 갈리시아 맥주를 시켰다.
스페인의 맥주는 부드럽다. 문어와 새우를 녹진한 올리브 오일에 푹 담갔다가 입에 넣었다. 아찔한 식감에 고소하고 짭짤하면서 재료 본연의 단 맛이 느껴지면 맥주를 한 모금 삼켰다. 한국의 포장마차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함께 나온 빵을 올리브 오일에 찍어먹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올리브 오일은 더 이상 그냥 올리브 오일이 아니다. 소위 말하는 엑기스가 된 것이다. 거기엔 새우의 내장, 조금 뜯겨 나온 새우와 문어의 살, 마늘의 파편, 가라앉은 소금이 한데 모여있다. 바게트 빵을 가져다 올리브 오일을 싹싹 긁는다. 빵이 오일을 충분히 흡수하도록 뜸도 들인다. 한 입 먹으면, 이게 감바스고, 이게 뿔뽀다 하는 감탄이 터진다. 그리고 맥주 한 모금에 ‘행복하다’ 소리가 흘러나온다.
이윽고 스테이크가 나왔지만, 뿔뽀 감바스 알 아히요의 감동이 가시지 않았다. 우리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오일이 한 방울도 남지 않은 갈색 자기 그릇을 바라보며, 여기 오길 참 잘했다는 흐뭇한 생각에 빠져있었다.
이 음식은 뒤 이은 여행 중에도, 심지여 여행을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불현듯 떠올라 침이 고이게 한다. 미슐랭 가이드의 별점 기준 중 ‘이 식당을 위해 여행을 올 만하다’가 별 3개라고 하는데, 이 식당은 적어도 우리 부부에겐 그 정도의 강렬한 음식으로 남아있다. 산티아고를 다시 간다면, 이 뿔뽀 감바스 알 아히요를 먹기 위해 북쪽길을 걸을 것 같다.
Pulpo con Gambas al Ajillo / La Quinta @Bibadeo
https://maps.app.goo.gl/dpjfMazZ4PrWFzEj6
다음 주부터는 다시 80일간의 신혼여행기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