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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많은 사람을 위한, 할 일 구조조정

지속 가능한 계획 세우는 법 2.

by 느낀표

"시간이 없어서"

저는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요.


언제부터였을까, 생각해 봤죠.

아마도 15살에 죽을뻔한 이후였던 것 같아요.


긴 이야기지만 요약하면, 무척이나 의욕 없던 삶을 살던 제가 바다에서 죽을뻔하고 180도 달라졌다는 거예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자리한 순간이었죠.


그 이후로 할 수 있는 건 닥치는 대로 했던 것 같아요.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해보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았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지치기 시작했어요.


"시간이 없어서"라는 말이 입에 붙기 시작했죠.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도 하루는 늘 부족했어요.

시간이 모자란 게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했던 걸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필요한 시간과 사용 가능한 시간

항상 해야 할 일에 허덕이며 살다가 한 번은 시간을 재보기로 했어요.

우선 제가 하고 있는 일들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어가는지 계산해 봤어요.


회사에서 하는 일을 제외하고 자격증 시험 준비와 동호회 활동, 친구들과 함께 기획하고 있던 사이드 프로젝트까지 일주일에 몇 시간이 소요되는지 적어봤어요.


그리고 출근 전 아침 시간, 퇴근 후 저녁 시간, 주말까지, 회사 업무를 제외하고 제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해 봤죠.


그랬더니 역시나, 제가 쓸 수 있는 시간보다 하려는 일이 더 많았어요. 예상을 하고 있었지만 숫자로 적고 보니 비로소 느껴졌어요. 불가능한 계획을 매일 반복하고, 좌절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항상 마음이 바쁘고 무언가에 쫓기고 있었구나.



욕심 많은 계획이 만든 후회

이걸 깨닫고 나서 예전 생각이 났어요. 의욕만 넘치고 요령은 전혀 없던 저의 대학생 1학년 시절이요.

한 학기에 4개씩, 1년에 동아리만 8개를 하고, 공모전에 나가고, 영어 시험을 준비하고, 학점은 최대한 꽉 채워 들었어요. 하고 싶은 건 다 했죠.


하지만 결과는 뻔했어요. 그 무엇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그저 바쁘기만 한 시간들.

그때 했던 동아리 중에 남은 건 하나도 없고, 공모전엔 떨어졌고, 영어 시험은 목표로 했던 점수를 못 얻었고, 학점은 8학기 중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어요.


그렇게 몰아붙이던 시간이 지금 돌아보면 제일 아까운 시간이었어죠. 무엇 하나에도 집중하지 못했으니까요.



할 일 구조조정

그래서 이번엔 다르게 해 보기로 했어요. 가용 시간의 절반만 쓰기로 했어요.

나머지 절반은 그냥 비워 두는 거죠.


그러기 위해선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 같은 일들을 포기해야 했어요.

말이 쉽지, 처음엔 불안했어요. 더 할 수 있는데 남겨놓는 게 낭비 같았거든요. 무엇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줄이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시간이 '진짜' 없는 것도 아닌데, 이건 남겨둘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죠. 하지만 그렇게 남겨두다간 끝이 없었을 거예요.

절반이라는 기준을 두고 할 일들을 정리해 나갔어요.


절반의 여백, 처음엔 불안했죠. 그런데 그 여백 덕분에 마음이 달라졌어요.

갑자기 생긴 회의에도, 예상치 못한 가족의 부탁에도 덜 짜증 내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어요.

계획 밖의 일이 생겨도 마음의 여유가 생겨난 거죠.


그런 여유는 제가 하는 일에 더 몰입할 수 있게 했어요.

더 이상 해야 할 일에 휩쓸려 사는 것이 아니라, 제가 선택한 일을 충실하게 해 나가는 감각이 생겼죠.


계속해서 검검하기

이런 구조조정은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해요.

시간이 지나면서 여유에 익숙해지고, 좀 더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거든요. 주변에서 이런저런 기회도 생기고요.


저는 최근에도 필요한 시간과 가용 시간을 측정하고, 할 일 구조조정을 했어요.

정신 차려보니 하는 일들이 이만큼 불어나 있더라고요.


할일구조조정_가용시간.png 평일과 휴일, 자유롭게 사용 가능한 시간을 주단위로 측정
할일구조조정.png 지금 하고 있는 일 들에 소요되는 시간을 확인

먼저 일상에서 자유롭게 사용하는 시간을 측정하니 주당 31시간이 나왔어요.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소요되는 시간을 적어보니 30시간 정도가 나와서 16시간 정도가 되게 할 일을 줄였어요.



지속 가능한 계획은 '여유'에서 시작된다

흔히들 시간을 알차게 보낸다고 하면 주어진 시간을 꽉 채워서 쓰는 걸 얘기하는 것 같아요.

빈틈없이 계획을 세우고, 그걸 해내는 게 성실이라고 믿죠.


하지만 생각해 보면 창의성도, 인사이트도, 삶의 변화도 다 여백에서 시작돼요.


시간이 꽉 차 있으면 생각이 들어설 틈이 없어지죠.

사소한 일에도 금방 예민해지고, 계획이 조금만 틀어져도 쉽게 방황하게 돼요.


그래서 이제는 계획을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워두는 '여유'에서 시작해야 해요.


지금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한 번 살펴보세요.

너무 많은 걸 담으려다 할 일에 휩쓸리지는 않을지요.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을 적고,

내가 하는 일에 필요한 시간을 적고,

필요한 시간을 쓸 수 있는 시간의 절반으로 계획한다면,

지속 가능한 계획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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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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