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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법

조승연의 탐구생활과 침착맨의 언어와 이미지

by 느낀표
우리는 타인의 의식이라는 무대에서 연기하는 사람이다.
-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자미라 엘 우아실, 프리데만 카릭


우리의 정체성은 결국 다른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존재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식되기 위해선 나를 보여줘야 하죠. 내가 아무리 다정한 사람이라고 해도 말투가 무뚝뚝하면 오해를 받겠죠. 물론 내가 정말 다정한 사람이라면 가까운 사람들은 결국에는 나를 알아주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무뚝뚝한 사람으로 존재할 거예요. 즉, 표현이 나라는 사람의 인상을 결정짓는 것이죠.


Own-being 프레임워크의 마지막 레이어, Expression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정체성(Identity)을 내 안에 세우고 실천(Practice)으로 내 삶에 적용을 했다면, 이제는 그 방향성을 세상에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고민할 차례입니다.


나 혼자 잘 사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필요 없겠지만, 우리는 결국 남들과 함께 살아가죠. 그리고 나를 정확하게 보여줬을 때 내게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일, 그것에는 크게 말과 이미지라는 두 축이 있어요. 이것을 각각 Script(스크립트)Scene(씬)이라 부르겠습니다.



표현은 내면의 결실이자, 외부와의 접점

어떤 말로, 어떤 이미지로 자신을 표현하는가는 단순히 취향만의 영역은 아닙니다. 그 사람의 가치관, 정체성, 철학이 드러나는 결과물이자 접점이죠. 즉, 표현은 외적인 껍데기가 아니라 삶의 결이 드러나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이름을 듣고, 프로필 사진을 보고, 한두 마디의 말이나 글을 접합니다.

예를 들어 저의 회사 메일에는 서명란에 자신을 표현하는 한 단어를 적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23rd why"라는 단어를 적었어요. 어떤 현상에 대해 궁금증 가지고 그 원인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저를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이처럼 Expression은 표면을 이쁘고 멋있게 가꾸는 일이 아니라 내면을 외면으로 나타내는 섬세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Script - 나는 어떤 언어로 세상과 연결되는가

Script는 말투를 넘어서 이름, 명함의 슬로건, 이력서의 제목, 자기소개 문장, SNS 소개글 등 자신을 표현하는 모든 언어적인 방식을 이야기합니다.


SNS나 브런치에 올리는 글의 제목은 어떤 식으로 짓는지, 어투는 어떤지

자기소개 문장에 어떤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하는지

내가 만든 브랜드의 이름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어떤 말을 쓰고 있는지


이런 언어 선택 하나하나가 나라는 사람을 표현하는 버벌 코드(Verbal Code)입니다.

기업의 브랜드에서도 이걸 섬세하게 신경 쓰죠.

누군가는 직관적인 언어를 씁니다.

"세상을 바꾸는 작은 습관"

누군가는 철학적인 문장을 선호합니다.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

누군가는 재치 있는 방식으로 풀기도 하죠.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black_세바시.png
think different.png
배민 슬로건.jpg



이처럼 Script는 단순히 글을 잘 쓰는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어떤 말로 구조화할지에 대한 선택의 집합입니다.


내가 늘 질문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쓰는 사람인지, 비유를 즐겨 쓰는 사람인지, 서사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인지 생각해 보세요.

언어는 나를 대변합니다. 사람들은 슬로건, 한 줄 소개, 말버릇, 문장 스타일을 통해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하는 감을 잡습니다.



Scene - 나는 어떤 장면 속에 있는가

Scene은 언어가 아닌 시각적 표현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보이는 방식, 나를 둘러싼 공간, 이미지, 컬러, 비주얼 톤이 Scene의 구성요소입니다.


나라는 존재를 브랜드화한다면,

내 웹사이트는 어떤 디자인을 하고 있나요?

인스타그램 피드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명함은 어떻게 생겼나요?


Scene은 그 자체로 강력한 메시지를 가집니다.

화려한 색감은 에너지를

미니멀한 구성이면 절제와 집중력을

흑백은 차분함과 신뢰를 전달합니다.


그리고 Scene은 Script와의 관계 속에서 완성됩니다.

말은 부드러운데 디자인은 각져있고 딱딱하면 어딘가 이상하죠.

반대로 말도 다정하고, 이미지도 둥글고 따뜻하면 그 사람의 결이 잘 느껴집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조승연과 침착맨

두 명의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예시로 들어볼게요.

조승연의 탐구생활침착맨입니다.

두 채널은 성격이 전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각자의 Script와 Scene이 일관된다는 것이죠.


조승연 - 정제된 지식의 언어와 이미지

Script

조승연의 탐구생활은 교양과 지식, 사회 이슈에 대한 생각을 전달하는 콘텐츠를 주로 만듭니다.

Script도 구조화된 지식을 전달하는 언어죠.

콘텐츠 제목을 보면 "여행은 경험일까 낭비일까", "한식이 뉴욕에서 잘 먹히는 이유 외신 분석" 같은 식이에요.

슬로건처럼 기능하면서도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명확하게 드러나죠.


또 영상 안에서는 "~라는 맥락에서 보면요", "이건 굉장히 흥미로운 사례인데요"처럼 논리와 맥락을 강조하는 표현을 반복합니다.

조승연 씨의 언어는 정중하고 지적이지만 지나치게 학술적이지는 않아요.

'탐구생활'이라는 타이틀 자체도 고급 정보에 대한 일상적 접근이라는 주제를 드러내고 있어요.


Scene

조승연의 탐구생활 콘텐츠는 보통 정갈한 공간에서 촬영됩니다. 책장이나 깔끔한 서재를 배경으로 따뜻한 조명으로 연출이 되어있죠.

영상은 카메라 무빙 없이 안정적인 구도로 구성되어 있고, 자막도 세련되고 깔끔합니다.

슬라이드 자료도 도표, 타이포 중심의 정제된 디자인이에요.

전체적으로 신뢰 가고 안정적인 Scene을 구축하고 있죠.


조승연_여행.png
조승연_한식.png
조승연_영상_서재배경.png 정돈된 배경에서 깔끔한 자막으로 신뢰성을 높이는 <조승연의 탐구생활> 콘텐츠


침착맨 - 정제되지 않은 진정성과 일상의 언어

Script

침착맨의 Script는 즉흥성과 진솔함이 핵심입니다.

콘텐츠 제목을 보면 "산, 그리고 러브버그와의 맞짱", "직장인들이 사랑하는 생선구이 먹방"처럼 친근하고 가볍게 만들어져 있죠.

말투 역시 일상적이고 관찰과 사담, 유머를 주로 사용합니다.

"몰라~ 그냥 그런 느낌이었어요.", "이게 맞나 싶긴 한데..."와 같이 정확하지 않지만 공감되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꾸밈없는 생활 언어죠.


Scene

촬영 공간은 집이나 작업실입니다. 뒷배경은 잡다한 물건이 정신없이 늘어진 책장이죠. 책 대신 각종 장난감이나 인형, 소품들이 있습니다.

채널 썸네일도 종종 수작업 그래픽이나 낙서 스타일로 꾸며지며, 과장된 컬러와 레이아웃은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더합니다.

'있는 그대로, 아무것도 꾸미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Scene 전반에 녹아있어요.


침착맨_생선구이 먹방.png
침착맨_인왕산.png
침착맨_영상_배경2.png 정제되지 않은 화면이 많이 쓰이는 <침착맨> 콘텐츠


이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Script와 Scene이 일치한다는 것이에요.




표현은 정체성을 드러낸다

표현은 꾸미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정체성을 세상에 옮기기 위한 것입니다.

결국, 나다움을 끊임없이 탐색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언어와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탄생하는 거예요.


own-being은 '겉보다 속이 단단한' 존재를 만들기 위한 프레임입니다.

하지만 그 단단함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아무에게도 전달되지 않을 거예요.


앞서 나의 정체성을 세웠다면, 이제는 자신을 드러내는 언어를 다듬고, 자신이 비치는 장면을 설계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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