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나뭇가지 끝

12월 23일의 기록

by 무웉

목요일과 토요일은 당직 근무를 섰기에 안 그래도 빠르게 지나가던 시간이 악셀이라도 밟듯이 가속해버렸다. 그렇게 되면 금요일 일요일은 내내 잠을 자거나 핸드폰을 쓰기 때문에 나흘이 그냥 사라지듯 되는 것이다. 모든 시간은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다른 때보다 옅은 흔적을 남긴다고 하는게 적당하겠다. 당직 근무 때는 옆에 있는 CCTV 근무자와 가끔 이야기를 한다. 깊은 이야기를 할 체력도 없고 나를 포함해 다들 귀찮아 죽겠다는 식으로 앉아있기 때문에 간단한 이야기다. 대대가 작아서 그런지 내가 과학고에 나와서 의대를 졸업하고 군대에 왔다는 사실은 대부분이 알고 있었다. 내가 받는 질문은 주로 의대에 정말 가고 싶어서 갔냐는 내용이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부모님이 원하셔서 갔다.'는 내용의 대답을 질문만큼이나 형식적으로 했다. 대답할 때는 몰랐는데 여기에 적고 보니 그것 또한 정말 가고 싶은 것에 포함되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기분이 좋거나 체력이 남을 때면 사실 좋아하던 수학을 버리고 의대에 온 것을 후회할 때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기 때문에 토요일 당직 때는 어려워보이는 수학 올림피아드 문제를 10문제 종이에 적어서 갔다. 24시간동안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할 일은 1시간 안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머랭을 쳐서 그걸 24시간짜리 부피로 만들어놓은 것 같았다. 웅웅거리고 흔들리는데다가 이상한 냄새도 나는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야 낫지만 최악보다 낫다고 해서 좋은 것 또한 아닌 법이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푸는 수학문제들은 24시간을 효과적으로 견디게 해주었다. 처음의 2시간 동안 두 문제의 문제 번호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리는데 성공했으나, 당직이 끝날 때에는 모두 3문제에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이나 수학 과외를 하던 새내기 시절의 나는 분명히 더 잘 풀 수 있었을 것 같아서 묘한 마음이 들었다. 어린 시절 살던 동네를 방문했을 때 놀던 공터가 사라진 걸 발견한 느낌이었다. 아쉬운 마음이었을까?

사람은 크면서 점점 여러 갈래로 갈라져나간다. 중학교 때는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이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전혀 다른 곳에서 살아간다. 커다란 밑동이 위로 올라가서 두꺼운 가지 두 개로 갈라지고, 또 얇은 가지들로 갈라지고, 마침내 잎이 달린다. 최종적으로 어떤 잎에 도달하는지는 여러 번의 선택을 거쳐야 한다. 처음의 갈림길부터 왼쪽 가지를 선택할까? 아니면 오른쪽 가지를 선택할까? 선택이 주어진다. 고민을 하든, 고민을 하지 않든, 왼쪽을 고르든, 오른쪽을 고르든, 확실한 건 고르지 않은 쪽 절반의 잎에는 도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절반의 잎에 닿기 위한 가능성을 대가로 나머지 절반의 잎에 도달하기 위한 가능성을 없앤다. 다음 번 선택에서는 또 나머지 중 절반을, 그 다음 번에는 이제 팔분의 일로...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선택들을 해나갈수록 내가 포기한 것은 늘어만 간다.

한 때는 버킷리스트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나 또한 누군가 시켜서 버킷리스트 비슷한 걸 만들어본 적이 있다. 물론 충분한 고민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적어보았다. 비행기 비지니스 클래스 타기, 호텔 뷔페 가기, 여자친구와 해외여행 가기, 게임 랭커 찍어보기, 자전거 국토종주하기 등이 종이에 쓰였다. 사실 대부분의 것이 그렇듯이 돈과 시간이면 해결되는 일들이었다. 그러므로 시간이나 돈을 소비한다는 것은 버킷리스트에 담긴 물건을 하나씩 다시 진열대에 올려놓는 것이다. 쇼핑이 끝나고 얻는 것은 구매한 물건들이지만 잃은 것은 슈퍼에 있는 물건들 중 구매하지 않은 모든 물건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불행이라는 중력장에 묶여있는 나를 깨닫고 기분이 나빴다. 그러나 인간이 모두 그 중력을 받는다는 것을 깨닫고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다행히 결국 겨울이 되면 잎은 모두 낙엽이 되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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