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4 목요일

삶에 관한 태도

by anna

과연 나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뇌는 쓸수록 발달이 되는 것일까. 최근 나의 화두 중 하나다. 익숙해진 분야를 벗어나 새로운 분야에서 새로운 지식들을 습득하고 또다시 익숙해지는 과정들을 거치면서 어쩌면 정말로 내가 한계를 긋지 않는 한 계속 발전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든다. 하지만 사회에서 나이로 그어지는 한계선들로 인해 때로는 위축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 또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고군분투하는 하루를 보내겠지.


{임지영, 멍게의 맛}

책 속 한 인터뷰이의 말대로 아이를 키우는 건 "거대한 불확실성"을 안고 사는 일이다. 정의롭고 청렴할 것만 같던 사람들도 자식 때문에 불법적이거나 비윤리적인 일을 저질렀다는 뉴스를 보며 작가는 두려워한다. 그런 모순이 가능한 부모의 자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대목이다. 최지은 작가는 말한다. "가능하면 딜레마 상황을 피하고 싶고, 가능하면 삶에서 모순을 줄이고 싶은데, 나의 욕망과 타인인 아이의 욕망이 자꾸 충돌하는 상황에서는 그럴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p.233)
너무 경쟁에 치이지 않고 소소하게 살길 바라지만 애도 그것을 원할까? 또 그 조차도 쉽지 않을 텐데 너무 순진한 생각이 아닐까? 내가 자주 반복하는 생각이다.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이들의 선택이 "과정이기도 결과이기도 의문이기도 삶에 관한 태도이기도 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질문을 던져 보게 되었다. (p.234)
나는 왜 아이를 가졌을까? 폭풍이 휘몰아치는 대로 떠밀려 온 측면이 없지 않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미래 자체를 의심해 본 적은 없다. 어쩌면 살아 볼 만한 세상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제의 확신이 오늘은 명백하게 깨지고, 당장 죽을 것 같다가도 금세 살 만해지고, 며칠새 달라진 나뭇잎의 색깔로 세월의 흐름을 감각하고,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밥알을 삼키는 동안 틈틈이 스미는 고달픔을 수용하는 하루, 그걸 겪게 하는 게 미안한 일만은 아니지 않을까? (p.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