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갈등은 왜 발생할까? 사회적 갈등은 집단 간의 갈등이자, 개인 간의 갈등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채무 관계나 고용 관계와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개인이 타인의 행동 혹은 사고를 이해하지 못할 때 주로 발생한다. 부부 간의 갈등, 친구 간의 갈등은 그 반대편 사람을 도무지 이해하고 용인할 수 없어 서로 갑론을박을 펼치고 다투게 되지 않는가? 언뜻 보면 사소해보이는 이유일지도 모르나, 서로 간의 몰이해는 서로 간의 소통과 협력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고 심할 경우 관계 단절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왜 이리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힘든 것일까?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라나 성인이 된다. 세포 내 DNA에 저장된 선천적 염기 서열과 후천적 경험의 총합이 곧 개인인 것이다. 여러 경험이 축적되어 정신이 성숙해지면서 세상을 보는 틀이 만들어지고 강화된다. 이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우리는 틀을 통해 세상에 수많은 정보들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틀은 세상을 바라보는 유용한 도구인 것이다.
하지만 틀이라는 도구의 유용함과 편리함에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나머지, 틀 속의 세상이 전부라 믿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틀은 우리와 세상을 이어주는 창이지만, 동시에 세상의 일부분을 가리는 벽이기도 하다. 틀로 바라본 세상은 필연적으로 세상의 모든 부분을 담지 못하고, 그 일부분만을 담아내 세상을 표상한다. 즉,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틀의 특성을 망각하게 될 때, 사람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게 된다. 고정관념에 매몰된 극단주의자는 자신의 틀로써 세상의 옳고 그름을 정립하며, 자신의 틀 속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비정상으로 치부하여 배제한다. 찬란한 문화와 기술의 발전을 일구어낸 원동력인 다양성은 부정한 것으로 반드시 제거되어야만 하는 위협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틀에 갇힌 사람에게 소통과 이해는 후퇴일 뿐이다. 그들은 세계의 수많은 비정상적이고 불온한 것들을 몰아내기 위해 투쟁하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이는 무지의 지(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깨우치라는 의미로, 자신이 다 안다고 자만하는 것은 모르는 지식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은 그저 사소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세상의 수많은 단면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에게 보이는 세상이 전체가 아닌 일부라는 것을 인지한다면,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상의 일부를 보는 우리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함께하는 데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A Square Window. Man Make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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