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생전에 떡을 참 좋아하셨다. 아예 전용 떡시루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한겨울에 먹는 찰진 호박떡을 유난히 좋아하셨다. 금년 정월대보름이 지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 추도식이다. 이번에는 봉수산 자락에 전원주택을 마련한 여동생이 추도예배 겸 집들이를 한단다. 그래 푸짐하게 호박떡을 만들어 가져가자 했다.
한겨울에 썰어 넌 호박이 차가운 바람과 투명한 햇살을 받고 잘 말라 제법 실한 호박고지가 되었다. 사실 따로 호박 모종을 심은 것도 아닌데 텃밭 여기저기에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열린 호박을 거두어 손질한 것이다. 작년에 벌레 나고 못난 호박들을 텃밭 언덕이며 담장 밑에 거름이나 되라고 통째로 던져 놓았는데 그 녀석들이 싹을 틔워 효자 노릇을 한 것이다. 따뜻한 아파트에 보관했던 반듯한 호박씨는 정성껏 심어봤지만 허사였다. 호박도 추운 겨울을 겪어야 싹을 틔운다니 우리 인생사와 같아 보인다.
호박은 끈질기고 생명력이 강한 녀석이다. 호박 덩굴은 한여름의 찌는 더위에 고개를 푹 숙이고 다 죽어가는 듯해도 새벽이슬을 맞으면 다시 솟아난다. 돌담 너머에 있는 찔레나무 가시덤불과 표독스런 탱자나무 가시가 찌르거나 말거나 기어이 타고 넘어 환하게 꽃을 피워 올린다. 심지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서도 손을 뻗어 생명의 축제를 연다. 여리 디 여린 순과 손톱만 스쳐도 자국이 나는 애호박만 보고 호박더러 연약하다고 한다면 큰 실례다.
호박꽃은 나에게 그리움의 꽃이다. 샛노란 별이 되어 피어나는 호박꽃은 어머니를 닮았다. 화려하지도 않고 아찔한 향기를 뽐내지 않아도 마음이 다가가고 푸근해지는 정겨운 꽃이다. 무어라 말을 걸지 않아도 먼발치에서도 단번에 나를 알아본다, 이런 호박꽃이야말로 우리 집 정원에서 피는 꽃들의 어머니다. 텃밭 담장 너머로 피어난 환한 호박꽃을 보고 있으면 꼭 누군가 반가운 사람이 찾아올 것만 같다.
우리 집 늙은 호박들은 참 못생겼다. 손자 손녀가 나를 골려 먹을 때도 호박 같다고 한다. 예쁜 호박은 애호박 때부터 따 먹고, 오는 사람마다 주다 보니 못난이만 남은 것이다. 골이 가지런하고 잘생긴 맷돌 호박은 한둘뿐이고 대부분 길쭉하거나 둥글넙데데한 녀석들인데 참 제멋대로 생겼다. 그래도 꿋꿋하게 남아 호박고지가 된 놈들은 칼집을 내기 어려울 정도로 껍질이 단단하고 속살은 그야말로 온통 붉은 황금색이다. 그러고 보면 호박도 사람처럼 겉모양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지 싶다.
호박은 아낌없이 내주는 사랑이다. 무참히 새순을 꺾어도 요절하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잎과 줄기를 내준다. 호박잎을 쪄내고 된장국에 애호박을 썰어 넣을 때부터 호박은 온전히 자신을 다 내어 준 것이다. 고소한 호박 부침개나 달달한 호박죽은 내 것, 네 것 없이 먹을 수 있는 넉넉하고 평등한 사랑을 나누어 준다. 더구나 호박은 늙어서도 약이 되고 떡이 되니 아낌없이 내주는 사랑이 분명해 보인다.
단골로 가는 방앗간에서 우리 집 호박떡이 찰 지게 잘 익었다. 유아원에 갓 들어간 손자가 따끈한 호박떡 하나를 집어 들고 ‘이게 모야’라고 한다. 나는 이게 바로 네가 못생겼다고 놀린 호박으로 만든 떡인데 네 아빠의 할아버지가 주신 선물이라 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손자의 애매한 표정 너머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환하게 웃고 있는 것 같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호박떡은 차가울 때 먹어야 제맛인 겨’라고 한마디 툭 던지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