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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인 Aug 07. 2024

칼국수 추억

칼국수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의 하나다. 음식 자체가 수더분하고 지극히 서민적이기 때문이다. 칼국수를 먹을 때는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 칼국수는 혼자 가서 먹어도 되고 흉허물 없는 사람끼리 어울려 후루룩 거리며 먹어도 좋다. 그래서 칼국수는 그 맛도 모양도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각양각색이요 그야말로 자유분방한 음식이다.

삼십 년 넘게 대전에 살면서 흔히 듣는 질문이 대전을 대표할 만한 음식이 뭐냐는 것이다. 이럴 때가 가장 난처하다. 지금의 대전이야 충청도를 대표하는 큰 도시라지만 근세에 이르러야 경부선과 호남선 철도가 놓이고 전국 팔도 사람들이 모여 형성된 곳이다. 음식도 사람 따라 사방팔방에서 골고루 모였다. 그러다 보니 대전만의 특색을 가진 음식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음식으로 따지면 대전은 칼국수로 대표되는 도시다. 한국전쟁 후 식량이 부족했던 우리나라에 외국의 원조로 밀가루가 들어오면서 대전을 중심으로 칼국수 문화가 퍼져나갔다고 한다. 대전은 지금 전국에서 유일하게 칼국수 축제까지 열리고 있다. 이런 곳에서 살다 보니 칼국수와 친해지지 않을 수 없고 자연스럽게 나의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강원도 꼭대기부터 제주도 끝까지 여러 도시와 골목의 칼국수를 많이도 먹어보았다.

칼국수는 말 그대로 밀가루 반죽을 칼로 썰어 국물에 넣고 익혀서 고명을 얻거나 겉절이 같은 소박한 반찬을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밀가루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반죽으로 메밀가루도 사용하였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콩가루를 섞어 풍미를 더하기도 하였다. 중국에서 다오샤오미엔刀削麵도 먹어보고 일본의 오사카나 베트남 여러 시골에서도 나름 칼국수 비슷한 면 요리를 맛보았다. 그래도 역시 내 입맛에는 우리나라의 칼국수가 제격이다. 특히 비라도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면 더없이 생각나는 음식이 칼국수다.

뭐니 뭐니 해도 칼국수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국물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하도 좋아해서 칼국수가 청와대 만찬까지 올랐다고 한다. 그 요리사가 만든 칼국수를 먹어보니 진한 고기 육수에 잘게 간 소고기와 달걀지단을 얹어 제법 격식을 차린 것이었다. 하나 모든 칼국수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전국의 칼국수를 먹어보면 대체로 이렇다. 부산이나 경상도 아래쪽은 멸치 육수를 사용하고, 전라도 지역에서는 바지락 같은 해산물을 육수로 쓴다. 경기도 지방은 멸치에 닭고기를 사용하기도 하고, 충청도에서는 디포리와 사골육수를 섞어 쓴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된장이나 고추장을 풀기도 하고, 전라도에서는 팥죽에 칼국수 면을 넣고 설탕을 쳐서 먹기도 한다. 들깨 칼국수나 어죽 칼국수도 있고, 제주도 바닷가에서는 보말로 칼국수 육수를 끓이거나 삶은 돼지고기 수육을 얹어 먹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칼국수에 특별한 호불호는 없다. 계절 따라 입맛에 따라 모든 칼국수 집에 제각각의 특색이 있고 다만 오래 남는 추억이 있을 뿐이다. 입맛이 떨어진 아내를 위해 처가에서 택배로 보내준 해물 칼국수를 한 솥 끓여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들까지 불러 함께 먹던 추억이 새롭다. 또한 추운 날 친구와 함께 시장 골목에서 먹던 얼큰한 김치 칼국수 맛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젊었을 때는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점심시간마다 맵기로 유명한 공주칼국수 집에도 자주 갔다. 하도 매워서 애꿎은 쑥갓을 잔뜩 넣으면서 땀을 많이도 흘렸다. 지금도 그 집에 가면 그 시절 동료들이 어서 앉으라고 손짓할 것만 같다.

그러나 아무래도 마음속에서 진정으로 그리운 칼국수는 따로 있다. 역시 어린 시절 고향에서 어머니가 만들어 주던 칼국수다. 한여름 저녁이면 칠 남매가 모깃불 옆에 멍석을 깔고 옹기종기 쪼그리고 모여 앉았다. 그러고는 마당 한쪽 솥단지에서 끓어 넘치던 칼국수를 한 그릇씩 배급 타듯 받아먹었다. 별다른 육수도 아니고 고명 같은 것도 없었다. 그저 큼지막한 스텐 그릇에 멸치 한두 마리와 채 썰어 넣은 애호박 몇 가닥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처럼 맛있는 칼국수를 먹어본 적이 없다. 게다가 칼국수를 먹다가 면을 자르고 남은 넓적한 꽁다리라도 발견하면 보물이라도 찾은 듯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다시는 먹을 수 없는 엄마표 칼국수, 홍두깨로 대충 밀어 끓여주신 칼국수 맛의 비법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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