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평생을 먹어온 것이 국과 밥이다. 가끔 빵이나 국수도 찾기만 그것은 주식이라기보다는 간식이요,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 온 것은 국과 밥이 틀림없다. 더구나 어릴 때부터 국이 없으면 밥을 먹은 것 같지 않았으니 국밥이야말로 나를 지탱해온 전부나 다름없다.
귀촌하여 옆집에 사는 분이 해거름에 슬며시 찾아왔다. 맛있다는 국밥집을 찾아간 김에 내 생각이 나서 선지국밥 한 그릇을 사왔으니 먹어보라고 한다. 내가 국밥을 좋아한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마침 텃밭 일을 마치고 시장하던 참에 허겁지겁 달려들어 먹게 되었다. 깔끔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먹을 만한 정도가 아니라 반할 정도로 맛있다. 양도 넉넉해 다음날 아침까지 배불리 먹었다.
국밥은 국물에 들어간 재료에 따라 선지국밥, 소머리국밥, 콩나물국밥, 돼지국밥, 순대국밥도 있고 아예 해장국으로 부르기도 한다. 설렁탕이나 육개장은 물론 보신탕 역시 일종의 국밥이긴 마찬가지다. 전국 방방곳곳의 국밥이란 국밥을 다 모아본다면 종류나 맛은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입에 맞는 국밥 한 그릇이 주는 행복을 평생 찾아다녔다. 내가 미식가의 경지는 아니라도 음식 맛을 소중하게 여기는 성품을 타고났으니 그 역시 팔자소관이지 싶다.
국밥은 국에 밥을 넣어먹는 음식문화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음식이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전 세계 어느 나라를 둘러보아도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인도나 동남아시아 또는 중국 등지에서는 쌀 자체가 달라 주로 볶음밥을 만들어 먹고 수질이 좋지 않아 국물 요리가 발전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우리와 비슷한 쌀을 갖고 있는 일본에서조차 우리 같은 국밥문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보면 평생 국밥을 좋아한 나는 여지없는 토종 한국 사람이 틀림없다.
사회초년병 시절 공주에서 직장을 다닐 때였다. 시내 복판을 흐르는 제민천 주변에는 국밥집이 줄지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한 식당의 국밥은 나의 입맛을 매료시켰다. 소박한 밥상이었지만 그때까지 먹던 국밥과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하숙집에서 밥상을 차려놓고 나를 기다리는 줄 뻔히 알면서도 나는 퇴근 후에 종종 혼자서도 그 국밥집을 찾아갈 정도였다. 지금도 모처럼 옛 추억이 떠올라 공주까지 예전의 국밥집을 찾아가보지만 아이들은 국밥대신 석갈비나 다른 메뉴를 주문한다. 젊은이들의 입맛은 내 국밥 추억과는 많이 다른 모양이다.
평생 남이 해주는 음식만 먹고 살아온 내가 제대로 할 줄 아는 음식은 거의 없다. 늘그막에 사람대접을 받으려면 한 가지라도 제대로 만들 줄 아는 음식이 있어야 한단다. 내가 할 수 있는 음식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아들이 입맛이 떨어졌을 때 찾는 메뉴가 있다. 하지 감자가 나올 때 할머니가 오징어를 넣고 만들어 주던 우리집표 국밥이다.
조리법은 간단하다. 맑은 멸치육수에 집고추장을 되직하게 풀고 하지 감자를 두툼하게 썰어 넣는다. 여기에 오징어 한 마리를 잘게 썰어 넣으면 그만이다. 단맛을 더 내려면 굵은 대파를 통째로 엇 썰어 넣고 은근한 불로 국물이 뭉근해질 때까지 조리면 된다. 여기에 다른 재료를 더 넣거나 맛을 낸다고 젓갈이나 양념을 첨가하면 완전 잡탕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러한 유혹을 물리치는 것이다. 그래야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난다.
지난 주말에 내가 만든 이 음식을 냄비 째 들고 아내한테 맛을 보라고 해보았다. 이 음식의 주연은 집에서 담근 고추장과 감자요 오징어는 조연이다. 국물이 많지 않지만 그렇다고 조림은 아니다. 아내의 표정을 보니 합격이다. 무슨 이름도 없는 요리지만 내가 ‘고추장맛 하지감자국’이라고 해보았다. 먹는 방법은 식은 밥에 이 국물을 얹어 먹어야 제 맛이다. 이번 주말에 아들 내외가 오면 아버지표 하지 감자국이나 한번 끓여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