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이다. 점심에 무엇을 먹을까 고민해 봤지만 무더위를 씻어줄 별미로 콩국수만한 음식도 드물다. 고소하면서도 시원한 콩국에 얼음이라도 동동 띄워 차가운 면을 먹다 보면 흐르던 땀도 쏙 들어간다.
여름철 음식으로 콩국수는 냉면과 쌍벽을 이루는 대표적인 메뉴지만 두 음식에 대한 느낌은 전혀 다르다. 냉면이 밖에서 사 먹어야 하는 음식이라면 콩국수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 주던 음식이다. 그래서 콩국수는 더 친근하면서도 푸근한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어머니의 손맛이 담겨있는 콩국수는 그래서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아스라한 그리움까지 배어있다.
내가 일하는 직장에서 멀지 않은 당진 면천에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콩국수집이 있다. 함께 밥을 먹는 동료들과 서둘러 콩국수집으로 향했다. 면천의 콩국수 집은 면천읍성과 향교사이에 있다. 한두 집이 아니고 아예 동네 전체의 가게마다 콩국수를 판다. 면천은 말 그대로 시내 면(沔) 내 천(川)이다. 예로부터 물이 좋아 두견주로도 유명하다. 근래에는 콩을 많이 재배하여 그 좋은 물로 여름 내내 콩국수를 만들어 파니 가게마다 문전성시를 이룬다.
삽교천 쪽에서 면천으로 가는 길은 넓고 평평하다. 예당평야 곡창지대의 넓은 뜰이 시원하게 펼쳐있다. 면천읍성에 다다르니 이곳에 논밭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미산 자락 아래 소나무 숲이 근사하다.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이 면천군수로 부임하여 조성했다는 골정지 연못을 넘어가니 콩국수집이 바로 보인다. 일찍 도착했는가 싶은데 콩국수 집 앞은 벌써 사람들로 장사진이다. 이 조그만 동네에 어디서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단골로 가는 집에서는 번호표로 플라스틱 숟가락을 하나씩 나눠준다. 거기에 번호가 적혀있다. 땀을 닦으며 숟가락은 두드리고 있다 보니 우리 차례다. 앉자마자 사람 수대로 콩국수가 나온다. 다른 메뉴는 아예 없으니 주문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여기 면천의 콩국수는 근방에서 농사지은 서리태를 갈아 만든 콩물이 예술이다. 묽지 않고 되직하면서도 미묘하게 목에 넘어가는 맛이 집에서 맷돌로 갈아 만든 바로 그 맛이다.
이 집 콩국수에는 계란이나 채 썬 오이 같은 다른 고명은 없다. 그저 콩물과 면이 전부다, 면은 직접 뽑은 중면이요 초록색이 스며들어 있다. 쑥향이 은근하게 올라오는 면에 얼음 따위를 넣지 않았어도 차갑고 찰진 맛이 일품이요 더위를 식혀주기에 충분하다. 곁들여 먹는 열무김치나 잘 익은 정구지 김치도 별미다. 김치를 곁들여 먹으니 따로 소금 간을 하지 않아도 된다, 종종 설탕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 데 아마 전라도 지방 사람들일게다. 나는 아직 설탕을 쳐보지는 않았으나 그것도 근사해 보인다. 다음에는 설탕을 한 숟가락 넣어봐야겠다. 어떤 미묘한 맛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콩국수 한 그릇을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비웠다. 줄서서 기다란 보람이 있다. 누가 혹시 당진에서 먹을 만한 게 무엇이냐고 하면 면천읍성에서 시원한 콩국수를 먹어보라고 해야겠다. 면천이 멀다면 영랑사 가는 길 입구 삼거리로 가도 좋다. 그 집도 줄서기는 매한가진데 콩국수에 넣어 드시라고 고소한 콩가루까지 듬뿍 내준다. 내일도 오늘처럼 누가 “션한 콩국수나 한 그릇 해유”라고 말을 걸어온다면 두말없이 따라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