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짜장면이란 것을 처음 먹었을 때 이 세상 음식이 아닌 것 같았다. 시골에서 학교 대표로 뽑혀 도회지로 경시대회를 나갔는데 선생님께서 짜장면을 사주신 것이다. 촌놈이 버스를 처음 타 본 것도 신기했지만 그날 선생님과 함께 먹은 짜장면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짜장면에 대한 추억은 또 있다. 결혼 전 지금의 아내와 시골 면사무소 앞 중국집에서 처음 먹은 음식이 바로 짜장면이었다. 이래저래 짜장면은 추억의 맛까지 더해 지금도 나를 유혹한다.
음식 이야기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른다. 추운 겨울날 아버지를 따라 새벽에 소시장에 갔다 얻어먹은 배추 시래깃국이 생각난다. 아마 그게 아버지가 나한테 사준 첫 음식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먹는 내내 아무 말이 없다가 당신 그릇에서 주먹만 한 선지 한 덩어리를 뚝 떠 내 그릇에 넣어 주셨다.
할머니는 어느 날 새벽 부엌으로 나만 조용히 불렀다. 불을 때고 남은 숯불에 구운 고기를 손으로 발라 부뚜막에 있던 굵은소금을 찍어 입에 넣어 주셨다. 그때 몰래 얻어먹던 고기가 뭔지도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새벽에 밭에서 잡아 온 두더지 구이였다. 짭짤하면서도 쫄깃한 그 희한한 맛은 지금 어디서도 다시 찾을 수 없다.
봄이 되면 어머니는 절구통에 불린 쌀을 빻아 쑥 개떡을 찌곤 하셨다. 쑥 개떡은 뜨거울 때보다 식혀 먹어야 찰진 맛이 더 일품이다. 얼마 전에 그 맛이 그립기도 하여 텃밭에 난 쑥을 뜯어다 방앗간에 부탁하여 쑥절편을 빼 왔다. 모양이나 맛은 더 세련되었지만 향기와 정취는 예전 것만 못하다.
또 하나 내가 어릴 때 가장 맛있게 먹은 별미는 닭 내장 볶음이었다. 집에서 손님이라도 와서 씨암탉을 잡는 날이면 내장 볶음은 우리 몫이었다. 작은 냄비에 아직 생기다만 하얀 알과 함께 자작하고 달달하게 볶아낸 닭 내장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지금은 그런 음식을 만드는 집도 사라지고 찾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어떤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을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이나 할머니 덕분이다. 땅 한 평 물려받지 못했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최고의 선물을 받은 셈이다. 퇴직할 무렵 자녀 교육 비결이 뭐냐고 물어보는 직장 후배들한테 한 말이 생각난다. 부모가 자식한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바로 음식이라고 했던가. 사람이 평생 먹고사는 데 어릴 때의 경험과 맛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한다. 유년기에 멋진 음식을 선물하는 것은 평생의 행복을 선물하는 거다. 잘 먹이면 나머지는 알아서 큰다.
이번 주말에 손자 손녀들을 만나면 짜장면 말고 먹고 싶은 게 또 있는지 한번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