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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인 Aug 21. 2023

먼저간 친구 S에게

  “너 S 알지? 지난달에 자살했어. 그런데 S가 너한테 편지랑 몇 가지를 남겨놓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해서 전화했어” 


어느 날 걸려 온 S와 단짝이었던 친구의 전화였다. 그 순간 뭐에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S가 나를 찾아왔던 날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겨울의 잔설이 남아있는 토요일 오후 창가. 두 손을 깍지 끼고 앉아있던 작은 소녀는 초등학교 때의 S모습 그대로였다. 화장을 하나도 하지 않은 얼굴은 창호지처럼 창백했고 맑은 미소는 여전히 슬프도록 예뻤다. 


  커피를 시켜놓고 입에 대지도 않은 채 한 시간이 다 되도록 S는 손가락만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내가 어찌어찌해서 공무원이 되었고, 결혼했고, 고향 친구들은 누굴 만나고 있고 등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S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간간이 고개만 끄덕일 뿐 조용히 나만 쳐다보던 S는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 같아 보였다.


  찻집을 나와 걷자고 해서 둘이 산성공원에 갔다. 따박따박 걷는 S는 턱을 치켜세우고 마른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까치들을 올려보기도 하고 잔디에 남아있는 물젖은 눈을 뭉쳐 말없이 던지기도 하였다. 차가운 벤치에 앉아 석양을 보면서 그냥 해가 질 때까지 서로 앞을 바라보았다. 


  S는 마지막 버스를 타면서 앙상하고 차가운 손을 내밀었다. “그냥 너를 보고 싶었어. 잘 살아”라고 말끝을 흐리던 S에게 “그래 넌 하나도 변한 게 없네. 초등학교 때 그대로야. 나중에 밥이나 한번 먹자”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왜 그 말밖에 못 했는지 후회가 든다. S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나였다는 것을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편지와 유품은 모두 그냥 없애 달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한동안 고향 친구들은 똑똑하고 예뻤던 S가 죽은 사건을 입에 올렸다. 어떤 친구는 S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고 했고 어떤 친구는 연탄가스 사고로 죽었다고 했다. 나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처럼 침묵했다. 지금까지도 비겁하게.

  S야, 친구 중에서 이 세상을 너만 너무 일찍 떠났구나.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좋아했던 너의 눈동자는 참 맑고 순수했어. 그날 죽음을 예약하고 밥 먹을 시간도 아까워서 그냥 걷자고 한 걸 눈치 못 챈 내가 참 미안하다. 


  지금도 어린 시절의 학교를 생각하면 빨간 스웨터를 단정하게 입고 교실 밖으로 뛰어나가다 나와 눈동자를 마주치던 우리 반 부반장 S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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