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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인 Aug 18. 2023

개헤엄

  내가 대답하기 곤란한 것 중 하나가 수영을 할 줄 아냐는 질문이다. 하루 종일이라도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놀 수는 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정식으로 수영을 배워본 적은 없다. 


  어린 시절 학교를 마치면 나의 놀이터는 동네 저수지다. 샘에 물 고이 듯 동네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늘 그 저수지에 모여 여름 한 철을 보낸다. 물이 아직 차가우면 물수제비를 뜨면서 놀고, 물에 들어갈 만하면 으레 책가방을 내팽개친 채 빤쓰만 입고 저수지로 들어가 자맥질한다.


  본격적으로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아이들은 온종일 저수지에 모여 헤엄을 치면서 누가 빠른지 내기를 한다. 출발점에서 고무신 벗어놓은 곳을 한 바퀴 돌아오는 시합이다. 오륙 학년 형들을 이겨 먹으려고 용을 써봐도 매번 헛물만 켰다. 그래도 일등 먹는 놀이도 있다. 저수지 가장자리에 있는 나무에 올라가 물속으로 뛰어내리는 지금으로 말하면 다이빙 놀이다. 개학 날이 다가오면 내 어깻죽지는 허물이 벗겨지고 얼굴은 온통 까무잡잡하다. 그렇게 놀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가고 내 키는 저수지 가장자리 나무처럼 쑥쑥 자란다.


  중학생쯤 되어서는 백마강 정도를 혼자서 헤엄쳐 건너는 것은 일도 아니다.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닌데 우리 동네 아이들은 모두 수영을 잘한다. 나도 그런 아이들과 어울려 자연스럽게 저수지며 강에서 노는 데는 빠지지 않는다. 그러구러 성장한 후 도시로 나와 직장에 다닐 때도 따로 수영강습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근사한 휴양지나 호텔 수영장이라도 가면 영 망설여진다. 내가 하는 개헤엄을 누가 보면 웃지나 않을까 창피하다. 


  하지만 물을 가둬놓은 수영장이 아니라 강이나 바다라면 문제는 다르다. 자유형, 평영, 접영, 배영 같은 영법은 하나도 모르지만 그런 데서는 어린 시절부터 하던 개헤엄이 아주 최고다. 가만 생각하니 요즘 학교에서 시행하는 생존 수영이 바로 개헤엄이다.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팔다리를 허우적거려 폼은 우습지만 파도치는 강이나 바다에서는 그만큼 안전하고 쓸모 있는 수영법도 없다. 더구나 산소통을 메고 스킨스쿠버를 해보면 정식 수영법이란 게 별로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수영이란 게 그저 몸을 물에 편하게 맡기고 물결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면 그만이다. 


  개헤엄이라고 아주 무시할 일은 아니다. 시드니 올림픽 자유형 수영 경기에 적도기니 출신의 선수가 출전했는데 개헤엄으로 완주하였다고 한다. 그걸 보면 인간이 구사할 수 있는 다른 영법에 비해 속도는 느리지만 개헤엄을 쳤다고 조롱거리가 될 일은 아닌 듯싶다. 축구선수였던 그 선수가 경기를 마치고 인터뷰한 내용이 재미있다. 남들은 메달을 따기 위해 수영했지만 자신은 익사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고 한다.


  사람은 물에 빠지면 죽는다는 두려움 때문에 앞뒤 따지지 않고 아무거나 움켜잡으려다 익사한다고 한다. 반면 동물들은 두려움 대신 본능적으로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물에 몸을 맡기기 때문에 산다고 한다. 물에 빠져 죽느니 창피하더라도 개헤엄을 치는 게 훨씬 낫다. 달리기 시합 중에서 오리걸음 같은 경보도 있다. 그렇다면 다음 올림픽에는 개헤엄을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심판은 글쎄, 요금 개가 사람보다 낫다고 하니 개한테 맡기면 어떨까. 상상은 자유다. 


  뒤돌아보니 내 삶도 그렇다.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것 없이 살아왔으니 수영으로 치면 여태 개헤엄이나  치며 산 셈이다. 이제 퇴직 후 평생 못해본 그림도 그리고, 색소폰이나 대금도 불어 보지만 영 신통치 않다. 여전히 개헤엄을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길 고비마다 흙탕물 깊은 물에 빠져 허부적대기는 했어도 아직 익사하지 않았으니 그만하면 됐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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