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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인 Aug 23. 2023

나의 죽음 앞에서

   내가 처음 죽음을 처음 목격한 것은 초등학교 시절 어릴 때였다. 무섭고 슬프기도 하였다. 


  호랑이 같던 증조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함께 숨 쉴 때는 몰랐는데 삼베 수의로 꽁꽁 싸맨 채 안방 윗목에 모셔둔 시신은 두려움 자체였다. 당시 장례식은 며칠에 걸쳐 시골집에서 치러졌다. 차일을 친 마당 한쪽에서는 밤새도록 통나무들이 탁, 탁 소리를 내면서 타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람이 죽으면 불꽃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거라고 믿었다. 깜깜한 밤하늘에는 강물처럼 은하수가 펼쳐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별빛 사이로 우리 집 마당에서 피어오르는 불꽃들이 밤새도록 빨려 올라갔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상가에 많이도 가보았고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것도 보았다. 유명한 사람도 있었고 평범한 사람도 있었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나보다 어린 동생도 둘이나 먼저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죽음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나니 이제 내 차례라는 생각이 퍼뜩 든다.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니 무섭기도 하고 남은 가족들이 어떨지 걱정도 된다. 혹시 내가 치매라도 걸리거나 몹쓸 병에 걸려 고생하거나 추한 모습으로 죽을까 두렵다. 더구나 아무 준비도 못 했는데 나한테 덜컥 죽음이 찾아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다. 


  세상에 태어나던 때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죽을 때는 다르다.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할지 선택하고 준비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 일생을 살아온 혜택이요 축복이다. 죽음이 무엇인지 또 죽음 이후의 세상이 어떨지 나는 모른다. 아마 그것은 신의 영역일 것이다. 하지만 죽기 전까지는 온전히 내 몫이다. 죽음에 임박해서 아무런 준비 없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고 남은 사람한테도 가장 슬픈 일일 것이다. 만년에 교통사고를 당하여 투병 생활을 하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그랬다. 


  아버지는 치매로 가족조차 알아보지 못하다 전염성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결국에는 격리 병실에서 쓸쓸히 임종하셨다. 보고 싶은 사람도 있었을 테고, 하고 싶은 말도 많으셨을 텐데 마지막 서너 달 동안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떠나셨다. 그냥 서늘한 눈빛만 남기고 가신 것이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셨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렇게 빨리 훌쩍 떠나실 줄은 몰랐다. 


  나의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다가왔는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아주 멀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이 예를 들어 수백 년 죽지 않고 산다면 그게 과연 축복인지 재앙인지는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어떤 시인은 살아생전을 소풍온 것이라 하였다. 소풍을 왔으니 돌아갈 곳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죽음은 두려움이나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요 선물인 셈이다.


  하루를 살아도 백 년처럼 사는 사람이 있고 백 년을 살아도 하루치밖에 못 사는 사람이 있다. 얼마를 더 사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더구나 새로운 세상으로 여행을 간다는 데 억지로 막을 필요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이것이 내가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이유다. 


  폐암으로 고통받던 64세 남자가 조력사하기 직전에 유언처럼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두렵지는 않은데 어릴 때 달리기 출발선에 섰을 때처럼, 아니면 대중 앞에서 연설하기 전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어떤 면에서는 설레기도 하고요. 오늘 밤엔 잠들지 않으려고 해요. 생의 마지막 밤을 잠으로 보내고 싶진 않으니까요. 모든 순간을 깨어서 지켜보고 느껴보려고 해요. 지상의 모든 순간, 모든 마지막을...”

 스위스 바젤에서 평화롭게 생을 마감한 그는 여기서 가까운 공주의 한 수목원에 영원히 잠들어 있다. 


  이 세상에 오기 전에 어디서 왔는지 알았어야 했는가. 아니다. 그저 온 것이다. 이 세상 떠날 때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야 하는가, 그것도 아닐 것이다. 그저 가면 된다. 애초에 시작도 모르니 끝을 몰라도 된다. 죽음 앞에서 두려울 것도 궁금해 할 것도 없다. 다만 나의 죽음이 사랑하는 가족에게 지나친 짐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또 하나 바란다면 너무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죽음을 연구한 여러 학자의 말에 따르면 죽음에 임박하여 많은 사람이 임사체험을 한다고 한다. 환하고 밝은 빛줄기를 따라 새로운 세상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나도 유체이탈을 경험하며 허공에 떠서 죽은 나를 보기도 하고 나의 죽음 앞에서 다른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들어보는 멋진 경험을 하고 싶다. 그런 다음 어린 시절 호랑이 할머니 장례식 날 깜깜한 밤하늘에 타오르던 불꽃처럼 내가 왔을 법한 은하수 저편으로 마음껏 여행을 떠나고 싶다. 


  나의 죽음 앞에서 새로운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겁나지만 설렌다. 나의 장례식장은 울음바다가 아니라 웃음바다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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