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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인 Sep 07. 2023

돈다발 그 친구

  30년도 더 된 참으로 혈기 왕성했던 시절의 부끄러운 추억이 떠오른다.

 

  시골에서 함께 자란 친구가 서울에 가서 돈을 무지 벌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마침 그 친구한테 금요일 저녁에 얼굴이나 보자는 전화가 왔다. 중학교 때 헤어졌으니 이십여 년 만에 만나는 것이다.


  나는 그 당시 삼십 대의 가난한 가장이었다. 도시에서 직장에 다니던 다른 시골 친구들도 나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형편이었다. 적은 월급에 셋방살이하면서 그만그만하게 살고 있었다. 그래도 없는 집 자식들이 우애가 좋다는 말처럼 시골 친구들은 서로 부축이라도 하듯 자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며 의지했다.


  약속 장소인 대전 유성에 있는 근사한 술집에 들어서니 친구들이 벌써 와 있었다. 자주 만나던 친구들 말고도 늦게 대학을 마치고 직장에 다닌 지 얼마 안 된 친구도 있었다. 서울서 온 그 친구는 술상 한가운데 떡하니 앉아있었다. 머리카락에 잔뜩 기름을 발라 뒤로 넘겼지만 어렸을 때 장난치던 모습은 그대로였다. 인사말은 당연히 서로 어릴 때 하던 욕이었다.


  술자리가 시작되면서 모든 화제는 그 친구의 입에서 나왔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도망가서 고생한 이야기며 미싱 기술을 배우고 공장을 차리기까지의 무용담이 끊이질 않았다. 지금은 아예 대구의 원단공장까지 인수했다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다른 친구들은 다들 부러운 눈으로 연신 맞장구치기에 바빴다. 역시 술자리는 술값을 내는 사람이 임자였다. 그 후로도 그 친구는 시골 친구들을 자주 불러 모았고 그때마다 검정색 각 그랜저 트렁크에서 돈다발을 꺼내 호탕하게 술판에 뿌렸다.


  술자리가 거듭될수록 화기애애하던 친구들 모임은 점점 어색한 쪽으로 흘러갔다. 술을 마실수록 그 친구는 중학교 때 공부도 못하고 체구까지 작아 얻어터지고 무시당한 분풀이를 쏟아내는 듯했다. 입은 거칠어졌고 도에 넘치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친구도 있고 무식한 놈이 돈만 벌면 다냐고 대드는 친구도 있었다. 결국 서로 멱살까지 잡으면서 술판은 개판이 되면서 그 후로 여럿이 모이는 일은 없어졌다.


  지금 그 친구는 IMF 때 파산한 이후로 연락도 되지 않는다. 오래전에 이혼까지 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일이다. 시골 친구들이 모이면 아직도 가끔 그 돈다발 친구 이야기를 한다. 촌놈이 자수성가하여 돈다발을 뿌려댔으니 그만하면 잘난 놈이라고 하는 친구도 있고, 배우지도 못한 놈이 돈 좀 벌었다고 그렇게도 위세를 떨더니 잘됐다는 친구도 있다. 이번에도 두 패로 갈려 언성을 높인다. 그러다가 또 그때처럼 친구 모임이 깨질까 싶어 걱정이다.


 돌아오는 길에 혼자 반문한다. 그 친구한테 나는 어떤 친구였을까, 나한테 그 친구는 어떤 친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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