것도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
후련은 거짓말이지만,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나니 또 다른 겁이 찾아왔다.
"임신 계획을 물어보면 뭐라고 해야 하나."
난임을 탈출하고 싶었던 날들을 뒤로 보내고 나는 이력서를 내기 시작했다. 자유를 즐겼으면 일은 하는 게 맞았다. 임신 준비도 안 하는데 언제까지 백수로 지낼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여유를 보내기 위해 경제적인 생활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보태고 싶었다.
몇 년 전에도 자연 임신을 계획하며 일 년을 백수로 지낸 적이 있었다. 그때 중간에 일을 구할까 싶다가도 고민이 된 게 임신의 여부였다. 임신을 하면 일을 오래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나도, 일하는 곳도 피해를 주게 되니 그게 싫었다.
"임신 계획이 있나요?"
"생각은 있는데, 정해진 계획은 없어요."
결혼을 하고 나니 일을 하는 도중이나 면접을 보러 가면 항상 아이와 임신 계획을 물었다. 결혼 초반이었기에 난임센터를 다닐 생각은 전혀 하지 않던 시기였다. 내 대답에는 확신이 없었다. 임신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으니 거짓으로 말하긴 싫었고 그렇다고 계획을 한 건 아니라서 내려진 답은 애매했다.
어쩌다 보니 다시 돌아온 현재에도 면접을 보면 여전히 임신 여부는 유효했다. 이력서를 내고 받은 첫 전화에서 일을 그만두고 몇 개월 일을 안 한 이유를 물어서 임신 준비를 했다고 하니 결혼을 했냐며 몇 가지를 물어보더니 면접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같은 직무로 몇 년의 경력이 있어서 일을 못 구한다는 걱정과 조급함은 없었다. 다만 요즘 평균 근무 나이를 비교하면 생각보다 내 나이는 많은 편이라 그게 걸리긴 했다. 경력을 원하는 곳도 있지만 신입을 뽑아 가르치는 걸 원하는 곳도 있으니까.
"혹시 결혼은 하셨어요?"
"네, 했어요."
"그럼 아이는 있나요?"
"아니요, 없어요."
"아, 신혼이시구나.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나 보다."
최근 마지막 면접을 본 곳에서 들은 질문이었다. 당연히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그저 대부분 직원들이 아이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던져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난임센터를 다니는 중이거나 직후였다면 마음이 아릴 테지만 추스른 후여서 내 대답은 빠르고 간결했다.
"결혼한 지는 6년 정도 됐어요."
"그럼 왜...?"
"안 생겨서요."
"아... 죄송해요."
전이라면 애매하게 대답을 했겠지만 왜인지 솔직한 답변이 나왔다. 이게 내 잘못도 아니고, 원하는 대로 되는 것도 아니기에 둘러대는 건 싫었다. 면접을 보고 나오니 뭔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직장이라면 임신으로 일을 갑자기 그만둘 수도 있고, 육아휴직을 쓸 수도 있어서 하는 질문이겠지만 결혼을 하면 꼬리처럼 따라붙는 말이 임신과 아이의 유무라니. 이해하면서도, 별일 아닌 듯 괜찮으면서도 막상 이런 질문은 꺼려지곤 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작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같이 일을 해보지도 않고 결혼과 임신으로 사람을 고른다는 현실이 웃기고도 슬펐다. 엄청난 능력이나 재능이 있다면 어떤 조건이든 스카우트라도 당하겠지만, 내 인생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착잡했다.
"괜찮아, 일할 곳은 많아."
내가 해온 노력만큼 일을 잘한다는 평을 매번 받았고, 그걸 남편도 알기에 쓸어주는 위로는 마음을 두텁게 만들었다. 사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불안함이 늘어가는 중인데 남편이 너그럽게 대해주니 고마웠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나는 일을 구할 때 뭔가 느낌이 있었다. 여길 다닐 것 같다는 것과 예상치 못한 곳에서 뽑아준다거나. 내가 해야 될 일이라면 벽이 있더라도 하게 되는 일이 워낙 많아서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조건이 맞든 안 맞든 인연이라면 어떻게든 하게 된다고.
벌써 두 달이 지난 현재도 면접을 본 직장과 나의 거절이 오가서 백수를 못 벗어나고 있지만 괜찮았다. 내 일이라면 언젠가는 하게 될 테니까. 면접을 볼 때마다 듣는 아이와 임신의 대한 질문도 단단한 마음이 답이었다.
내가 뭐라고 하든 선택은 일하는 곳의 몫이고 나를 받아준다면 열심히 근무를 하는 건 나의 몫이었다. 그럼 계획이 있든 없든 상관이 없을 것이다. 책임감을 갖고 업무에 임하면서 어느 정도 적절한 시기가 지났을 때 임신을 하게 되면 나도 그들도 환영을 해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인생의 길은 스스로 개척한다지만 다가올 미래는 아무도 모르니까. 내가 잘해왔다면 어떤 눈초리든 받아낼 자신이 있었다. 웃으면서 잘 살고, 잘 지내면 우리의 삶과 미래도 저절로 즐거워지겠지.
끝으로,
브런치를 꾸준히 쓰고 싶지만 나의 주된 주제는 난임에 관련된 일이기에 연달아 쓰려면 무언가 적을 게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난임센터를 다니고 있기 않기에 내리 글을 써낼 순 없었다. 만들어낸 거짓은 싫으니까.
그래도 아직 임신에 대한 건 따라붙기에 일상에서 겪은 일을 쓸 수 있어 다행이었다. 브런치는 나의 얘기를 써 내려가는 거니까 어쩌면 일기와도 같았다. 그래서인지 전에 쓴 글을 보면 마음이 슬프면서도 그간 노력에 안심이 쌓였다.
일을 하다가 난임센터를 다시 다니게 되면 내가 남긴 글이 나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일 보게 될 면접으로 인해 떨리는 마음을 다잡는 게 급선무였다.
뭐든 다 물어보라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