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득 Oct 28. 2024

자연 임신 시도는 해보는 게 낫겠지

될 거라는 생각은 없지만

난임 병원은 다녔던 몇 개월의 기나긴 시간이 끝나고 내 일상에는 평온함이 찾아왔다.


"약 안 먹으니까 되게 편하다, 오늘은 뭐랑 한 잔 할까?"


미련과 아쉬움을 버리고 일을 다시 하자는 생각을 접하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일을 다시 해야 한다는 현실 때문도, 얄궂게 남은 작은 희망 때문도 아니었다. 마치 난임센터는 발도 들이지 않은 것처럼, 아예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느껴져서 그런 듯했다.


무섭도록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간 나는 신나게 술을 마셨다. 남편과 웃으며 시간을 보내고, 친언니를 만나 우는 대신 괜찮아진 감정을 전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에 탓할 것도 없고, 이러면 성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헛된 바람도 마음속에서 떠나보낼 수 있었다.


"나이가 어려서 괜찮아. 더 즐겨도 돼."

"조바심 갖지 말고 마음 편하게 지내."

"그런 말도 있잖아, 시기도 때가 다 있다고."


오랜만에 모임에서 만난 지인들에게 위로를 받고, 좋은 말을 들으니 한결 마음이 가뿐하기도 했다. 그래, 어쩌면 내가 엄마가 되려는 것과 아기를 만나려는 시기가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을 하니 미래의 우리를 위해 좀 더 행복하게, 즐겁게, 여유를 가지며 살아도 될 것 같았다.


마음이 나아지니 시야가 넓어졌다. 멀리 두었던 친구에게도 연락해 만남을 요청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도전한 시험관 1차에서 한 번에 임신이 된 친구를 이제는 편히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한 오해처럼 그 친구도 나에게 어떤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건넨 만남이었다.


"나는 네가 날 안 만나고 싶어 하는 줄 알았어."

"아냐, 임신이 되고 나서 뭔가 말하기가 어려웠어. 나는 배려였는데 오해가 되었나 봐."


친했다고 여겼던 친구와 멀어진 느낌부터 같은 날 임신을 하면서 극과 극의 상황을 맞이했으니 친구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아이의 성별도 남편을 통해 들었으니 어쩌면 좋은 소식을 전달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솔직히 나도 멀리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니.


거의 만삭에 들어선 친구를 보니 기특하기도 하고 마음이 찌르르했다. 진짜로 아기 엄마가 되는 친구의 모습이 대리만족처럼 좋기도 했고 이전엔 몰랐지만 살짝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마 내가 임신을 잠시 쉬겠다고 정했으니 미묘하면서도 부정적이지 않은 기분이 복합적으로 오는 듯했다. 


"몸 조심하고 잘가."

"응, 몸 더 무거워지기 전에 또 만나자."


내가 괜찮아졌다고 여길 때 여러 가지의 감정과 상황을 정리하는 게 맞았다. 어차피 보게 될 친구와의 관계를 푸는 것도, 누군가 시험관을 성공했다는 걸 보고도 개의치 않은 것도. 모두가 다 내 몫이었다. 임신을 나에게 강요할 이는 없다는 걸 나는 알아야 하고 인지해야 했다. 그래야 진심으로 웃음이 나올 테니까.


무료해진 일상이었지만 더없이 편한 나날이기에 임신 준비로 불안정했던 심리 상태는 점차 나아졌다. 남편과 간 캠핑에서 신나게 먹고 놀면서 스트레스도 풀었고 좋아하는 술도 마음껏 마셨다. 주변에도 조금 쉬었다가 나중에 다시 시도를 해본다고 했기에 시간의 촉박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여보, 우리 자연적인 만남을 가져볼까."


난임을 확인받고 성공할 때까지 겪는 모든 일들은 체력이든 정신이든 고된 과정이었다. 그만큼 남편과 분위기를 만들기도 어려웠고 조심스러운 것도, 금지된 것도 있기에 자연적인 만남은 사치였다. 마침 무거운 압박을 내려놓았으니 이참에 알콩달콩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여기서 내가 포기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배란테스트기를 통한 자연 임신 시도였다. 임신이란 게 계획적으로 해도 이루어질 확률이 높지 않기 때문에 지속적인 시도는 하고 싶었다. 난임센터를 다니며 인공으로 하는 시술을 내려놓은 것뿐이지 임신을 멀리한 건 아니니까.


전처럼 달에 몇 번을 해야 한다는 의의를 두진 않았다. 배란테스트기를 시도해 보며 피크를 알아보고, 맞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지나치는 그런 정도의 얕은 마음이었다. 자연적인 시도로 성공한다는 생각은 일절 없었고 이걸로 또 매달리는 지경에 이르고 싶지 않았다.


"와, 벌써 피크가 뜨려고 해."


전달까지 시험관으로 인한 인공주기였기에 배란일을 예측할 수 없지만 생각보다 당겨진 날짜가 놀라웠다. 시작 전 증상도 보다 예민하고 매번 겪지만 인체의 신비는 기가 막힐 정도로 신기했다. 그리고 배란 예정일을 확인한 나는 정확히 14일 후 자연적인 생리주기를 맞이했다.


"주기가 너무 확실하니 건강하긴 한데 이걸 웃어야 되나, 말아야 하나."


알고 있으면서도 새삼 느껴지는 일정한 날짜에 헛헛한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왜냐면 일단 나는 건강하다는 거니까.


그것만으로도 만족이었다. 뭐든 건강한 게 최고니까.

작가의 이전글 불안정한 마음이 꿈에서도 비치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