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에서
서울대학병원은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울음이 존재하는 곳이다. 환자는 보호자 때문에 울음을 삼킨다. 보호자는 환자를 위해 울음을 삼킨다. 그런 슬픔이 쌓이고 쌓이면 계단, 복도, 보호자 탕비실에서 소리 죽여 그 서러운 울음을 조금씩 조금씩 짜낸다. 한번 '엉엉' 터트릴 만도 한데, 그마저도 새어 나갈까, 혹여나 내 울음이 병원 전체에 퍼져 눈물로 홍수를 만들까 하는 생각에 그 울음조차 조금씩 흔적 없이 짜내어 흩뿌린다.
어머니의 췌장 수술이 예정된 날, 나는 서울대학병원의 그 조용한 슬픔 속으로 들어갔다. 보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긴지 그때까지는 몰랐다. 하루하루가 마치 한 달처럼 느껴졌고, 매 순간이 숨을 참고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수술실 앞 대기실에서 나는 처음으로 그 '조용한 울음'을 이해했다. 어머니를 위해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과 막막한 두려움 사이에서 나는 울음을 삼켰다. 눈물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어머니가 수술실에서 나오셨을 때 웃는 얼굴로 맞아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그 눈물을 다시 가슴 깊숙이 밀어 넣었다.
병실에서의 밤들은 더욱 길었다. 어머니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간병 의자에 앉아 있으면, 창밖 서울의 불빛들이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 가끔 어머니가 잠결에 아프다고 신음하실 때면, 나는 그 소리가 복도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작은 목소리로 괜찮다고, 곧 나아질 거라고 속삭였다.
복도를 걸을 때마다 나와 같은 사람들과 마주쳤다.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으며 눈물을 지우는 중년의 아들, 계단 모퉁이에서 전화를 받으며 목소리를 가다듬는 딸, 탕비실에서 혼자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는 며느리. 우리는 서로의 눈을 마주치면 모른 척을 했다. 그것이 이곳의 예의였고, 서로에 대한 배려였다.
퇴원하는 날,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휠체어를 밀며 플랫폼을 걸었고, 어머니를 고향으로 향하는 열차에 모셔드렸다. 창가 자리에 앉으신 어머니는 괜찮다며 손을 흔드셨고,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 드렸다.
열차가 출발했다. 어머니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 갔고, 마침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괜찮았다. 그런데 텅 빈 플랫폼에 혼자 서 있자,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졌다. 마흔 살이 된 남자가 기차 플랫폼 벤치에 주저앉아 한참을 서럽게 '거억 거억' 소리 내어 울었다.
보름 동안 삼켜왔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수술실 앞에서의 두려움, 밤마다 어머니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느꼈던 무력감, 그리고 안도감까지.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나를 보았지만 상관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그 조용한 울음을 참을 필요가 없었다.
서울대학병원에서의 보름은 나에게 사랑의 다른 이름을 가르쳐주었다. 때로는 울지 않는 것이, 때로는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때로는 걱정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사랑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조용한 사랑들이 모여 이 거대한 병원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다는 것을.
지금도 가끔 어머니의 정기검진을 위해 그 병원에 가면, 복도 어딘가에서 혼자 슬픔을 짜내어 흩뿌리는 누군가를 본다. 나는 여전히 모른 척한다. 그것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배려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