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현장 그리고 트라우마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 작은 소리가 세상의 가장 무거운 침묵을 깨뜨린다. 재난 현장에서 파인더를 들여다보는 사진기자의 눈은 단순히 피사체를 포착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참혹한 현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또 하나의 마음이다.
10년이 넘은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장면들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해양경찰 배에서 실려 나오는 절망 그리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이들을 부르는 가족들의 울음소리. 이 모든 것이 렌즈를 통해 내 안으로 스며들어,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되었다.
경험이 쌓이면서 나는 하나의 방법을 터득했다. 재난 현장에 도착하면 파인더에서 눈을 떼지 않는 것. 마치 TV나 영화를 보고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작은 네모 화면 안에 갇힌 현실은 조금은 덜 아프게 다가온다.
동료들과 나누는 어색한 농담들도 그런 맥락이다. "오늘 날씨 좋네", "커피 한 잔 하고 싶다"와 같은 일상적인 말들을 던지며 우리는 서로를 깨워준다. 눈보라 속에서 동사 위험에 처한 사람을 깨우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를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도록 붙들어 준다.
사람들은 종종 오해한다. 재난 현장에서 웃고 있는 기자들을 보며 "어떻게 저런 곳에서 웃을 수 있느냐"고 비난한다. 하지만 그 웃음은 무감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절망에 잠식되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우리도 사람이기에, 그 참혹함이 유쾌할 리 없다.
아무리 거리를 두려 해도, 현장의 절규와 절망은 어김없이 몸에 스며든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며 몸을 씻어도 그 냄새는 쉽게 가시지 않는다. 침대에 누워도 귀에 맴도는 울음소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한참을 고생하고 나서야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때로는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분노가 우리에게 터져나오기도 한다. 기자나 공무원들이 그 분노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우리 역시 그들과 같은 아픔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우리도 그 현장에서 상처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집에서 모니터를 통해 재난 소식을 접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겪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깊고 직접적이다. 우리는 그 장면을 눈으로 목격하고, 그 냄새를 맡고, 그 절규를 온몸으로 들어야 한다. 화면을 끄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고스란히 남아 평생을 함께 가야 하는 기억이 된다.
10여 년 전 그 사건의 기억은 지금도 가슴 한편에 흉터로 남아있다. 봄이 오면 그때의 계절을 떠올리고, 비슷한 소식을 들으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어쩌면 이것이 기록자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잊고 싶어 하는 순간들을 기억하고, 전하고, 함께 아파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현장으로 향한다. 누군가는 그 진실을 기록해야 하고, 누군가는 그 아픔을 증언해야 하기 때문이다. 파인더 속 작은 세상을 통해 더 큰 세상에 전하는 이야기. 그것이 상처가 되어 돌아온다 해도.
사진기자의 카메라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아픔을 담아내는 마음이고, 진실을 전하는 용기이며, 때로는 자신을 지키는 방패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잊혀져서는 안 될 순간들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는 증언자의 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