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고 확실한 비극

by 이선우

30분 뒤. 기자석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형석은 씩씩거리는 편집국장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아, 국장님. 현장에서 돌발 상황이 좀 있어서요. 네네, 바로 쏩니다. 그림 되는 걸로요. 걱정 마십시오.”

전화를 끊은 형석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시간이 없었다. 30분 내로 뭔가 만들어내지 못하면, 오피는커녕 시말서였다.

“야, 뭐 없어? 빨리 찾아봐. 안전한 걸로. 리스크 없는 걸로.”

형석이 닥달했다.

그때였다.

체육관 구석, 링거를 맞고 있던 한 어머니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며칠째 식음을 전폐하고 딸의 이름만 부르던 60대 노모였다.

“아이고! 내 새끼야! 불쌍해서 어떡해! 엄마가 미안해! 못난 어미가 미안해!”

링거대가 요란하게 쓰러지고, 링거 줄이 뽑힌 팔에서 붉은 피가 솟구쳤다. 하얀 매트리스 위로 선혈이 낭자했다. 주변의 가족들이 비명을 질렀다. 의료진이 다급하게 달려들었다.

“어머니! 정신 차리세요! 여기 의사 선생님! 혈압이 너무 낮아요!”

꾸며내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고통. 진짜 비극이었다. 그 어떤 영화보다 처절한 장면이었다.

그 순간.

형석, 미진, 동훈의 눈빛이 동시에 변했다.

방금 전 유가족 아버지의 일침에 느꼈던 찰나의 부끄러움은 온데간데없었다. 알몸 남자에게 당했던 배신감과 허탈함도 사라졌다. 그들의 동공은 다시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아니 시체 냄새를 맡은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확장되었다.

이번엔 ‘진짜’였다. 해석이 필요 없는, 완벽하게 안전하고 슬픈 상품.

“박 차장! 지금이야! 줌 당겨! 피! 핏자국 찍어!”

형석이 낮고 빠르게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엔 흥분이 서려 있었다. ‘이거다. 이걸로 때우면 된다. 국장도 만족할 거야.’

“비켜! 다 비켜! 안 보여!”

박동훈이 다시 멧돼지처럼 돌진했다. 그는 쓰러진 어머니의 얼굴이 가장 잘 보이는 틈새로 렌즈를 거칠게 밀어 넣었다. 렌즈가 거의 어머니의 코앞까지 닿을 듯했다. 의료진이 “찍지 마세요! 환자 보호해주세요! 나가세요! 사람 죽어가는 거 안 보여요?”라고 소리쳤지만, 동훈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국민이 알아야 할 거 아냐! 이 썩어빠진 나라 꼴을 보라고! 언론 탄압하지 마! 내가 누군 줄 알아? 대한일보 박동훈이야!”

동훈은 정의를 핑계로 가장 자극적인 표정을 훔쳤다. 알몸 남자는 ‘위험해서’ 버렸지만, 자식 잃은 어미의 오열은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상품’이었다. 누구도 욕하지 않고, 누구나 클릭할 완벽한 비극의 클리셰. 눈물, 피, 모성애. 흥행 요소가 다 있었다.

*차르르륵. 차르르륵.*

셔터 소리가 기관총처럼 쏟아지며 체육관의 정적을 난도질했다. 동훈은 셔터를 누를 때마다 자신이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고 믿었다.

“최 기자, 뭐 해! 받아 적어! 빨리!”

“네! 쓰고 있어요!”

최미진의 손가락이 우아하게 춤을 췄다. 이번엔 진짜였다. 승진을 위한 확실한 한 방. 그녀는 옆 테이블 <한국뉴스> 기자가 쓴 기사를 힐끗 훔쳐보며 키워드를 조합했다. ‘창백한 낯빛’, ‘피 맺힌 절규’, ‘허공을 젓는 손’. 그녀는 이미 머릿속에서 이 단어들을 재조립하고 있었다. 3분이면 충분했다.

<실신하는 어머니... 정부는 어디에 있나>

그녀의 샤넬 가방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친구들의 단톡방이었다.

> [야, 너 기사 떴다! 대박 슬퍼 ㅠㅠ 미진이 글빨 죽이네.]

미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 구역의 주인공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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