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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ll E Jun 12. 2021

“ 모두에게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박기형님

 건설노동의 현 주소를 세상에 외침에 있어 힘을 보태고자 이해관계자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는 저희 Wall E팀이 만난 마지막 이해관계자(단체)는 바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입니다.

우리 모두가 안전한 노동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힘쓰고 계신 한노보연의 박기형 상임활동가님과 어떤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는지 함께 만나볼까요?





1. 한국노동보건연구소와 활동가님의 역할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이하 한노보연) 상임활동가 박기형입니다.


한노보연은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노동안전보건운동을 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IMF경제위기 로 많은 사업체에서 구조조정이 일어난 후 인력은 줄어들었고 한 사람이 처리해야 하는 업무량은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 다양한 산재 사고와 직업병 역시 증가했습니다.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촉발된 근골격계질환집단요양 투쟁을 계기로2003년에 출범하였습니다.


2000년대 중반 제조업 사업장을 중심으로 교대제와 야간노동 연구 및 현장개선 활동을 펼치며 노동자들의 건강권 사수를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습니다. 야간 노동은 뇌심혈관계 질환과 암의 발생과도 연관이 깊습니다. 야간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지만, 사업장의 특성 등을 고려해 불가피하게 야간노동을 하는 경우, 노동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교대제 개선 연구와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더불어 제조업 사업장을 중심으로 근골격계 질환이 발생하지 않도록 일하는 중간에 쉬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고 가능한 노동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도록  근골격계질환 예방 활동 또한 집중적으로 펼쳐왔습니다.


이후 한노보연에서는 반도체전자산업에서의 노동자 건강권을 위한 반올림의 투쟁에 적극 연대해왔고, 사후 대응이 아닌 사전적으로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터에서 위험을 예방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중지권을 현장에서 실행할 수 있도록 하고 사회 전반에 이를 알리기 위해 힘써왔습니다. 최근에는 업무상 정신질환 및 과로사, 과로자살 문제에 관심을 갖고 대응해왔고, 2019년부터는 방문노동의 위험, 여성 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에 주목한 화장실 이용과 여성 질환에 대한 연구와 현장활동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노보연의 상임활동가들과 회원들은 노동조합과의 연대활동과 더불어 노동안전보건에 관한 교육도 나가고, 현장조사도 다니고, 집회/시위가 있으면 참여도 하고, 특정 사안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위에 참여하기도 하며, 국회 토론회나 법 제정에 대한 논의 테이블이 있으면 의견을 보내는 활동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는 그 중에서도 건설업과 방송영화업 분야의 노동 안전을 위한 일들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한노보연은 노동부나 안전보건공단의 통계 자료에 대한 감시와 비판에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참여하고 있는 건설노조와의 연대활동, 건설업 안전문제를 예로 들면, 건설안전 문제 수준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통계치가 정확해야 합니다. 최근에 건설업에서의 추락사고를 방지하겠다고 안전발판 설치를 위한 집중점검사업을 안전보건공단에서 펼쳤습니다. 이 사업의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여러 기준이 마련되고 평가되어야 하겠지만, 우선 산재통계지표로 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인데요. 산재통계 자체가 국가 차원에서 면밀히 취합하고 분석하던 지표가 아니다 보니, 그리고 산재은폐 등의 문제가 지속되다보니 국가기관의 통계 수치가 부정확하거나 분석수준이 깊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2019년, 2020년에 걸쳐, 연구소 차원에서  산재통계애 대한 검토 의견을 내고 정부의 공공 데이터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제언을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2019년 김용균법이라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당시에도, 하위법령 제정과 관련해 민주노총과 여타 노동안전보건단체들과 함께 하위령 제정의 방향과 구체적 내용에 대한 제안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정부의 노동안전보건사업과 법제정과 관련한 대응도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2.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건설 노동 환경과 관련하여 진행한 활동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한노보연은 건설 노조와 약 4~5년 정도 연대 사업으로 함께하였습니다. 총 3가지 차례의 연구 사업을 진행해왔습니다.


첫째로 2018년에는 아파트의 지하주차장과 지지물을 만드는 지층 작업을 하는 형틀 목수들을 비롯한 형틀 목수 전반의 노동강도를 연구하였습니다.


둘째로 이전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그들 중에서도 가장 노동강도가 높다고 알려져 있는 아파트 등 건물 내벽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형틀 목수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현장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들을 가리켜 알폼 노동자라고 부르는데요. 이들의 노동 강도 평가를 2020년에 진행하였습니다. 두 연구 결과를 가지고 국회 토론회를 개최하거나 현장 노동자 교육과 언론에 공론화하는 활동 등을 진행하였습니다.


세 번째 연구 사업으로는 2019년 길거리에 흔히 볼 수 있는 전봇대와 전선 작업을 설치 및 보수하는 건설 노동자들, 배전 전기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평가하였습니다. 배전 노동자들의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작업의 노동 강도는 어느 정도인지 측정하여 노동강도를 높이는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그들의 노동 환경이 얼마나 위험한지 확인하고, 노동 환경과 노동 조건의 변화를 위한 근거 자료를 만들어 그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 전력 등에 변화를 촉구하는 활동을 만들어가는 데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구 사업에 더해 건설 노조 조합원들 교육이나, 건설 안전 특별법 제정을 위한 의견 공유, 법안 검토, 등의 노동안전보건활동의 파트너 역할을 했습니다. 2021년에는 경기사무실을 중심으로 타워크레인 기사들의 근골격계질환 등 건강권 보장을 위한 현장연구와 활동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3. 그간 여러 산재사건이 반복되면서 법이 개정 및 제정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체 산재 사고 사망자 비율의 절반 이상이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특히, 왜 사고 유형 중 일용직 근로자 피해자가 많은 지 궁금합니다.


우선적으로 일용직 근로자가 많은 이유는, 건설 현장의 고용 시스템 자체가 모두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이뤄져 있어서 그렇습니다. 건설사에 고용되어 있거나, 건설 시행사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은 정규직이겠지만 그들은 대부분 현장을 관리, 감독하는 사람들입니다. 실제로 들어가서 무언가를 만들고 다듬고 고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용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전체 건설 기간 중 각자가 맡은 업무가 이뤄지는 특정 기간 동안만 일을 하고, 또 다른 현장으로 가서 일을 합니다. 이런 특성에 더해, 오래 전부터 형성된 다단계 하도급 구조 하에서 정규직이 아닌 일용직으로 고용되는 관행과 사업구조가 고착화된 것이죠. 이로 인해 건설노동자들은 정규직 고용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설명드리면, 건설 현장에서는 역사적으로 그 고용형태가 처음부터 일용직이었다고 합니다. 왜 일용직인지는 명확히 밝혀진 적은 없지만, 건설 물량에 따라 고용이 달라지고, 현장을 매번 옮기게 되는 특수성과 인력을 상시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없는 업무 구조 때문에 일용직 노동을 자본과 기업들에서 선호하고 이를 널리 활용하는 것 때문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왜 일용직 근로자들의 산재사고가 많다는 것에 이유를 말하기는 사실 어렵습니다. 일용직 근로자라는 조건 자체가 위험을 높이기도 하지만, 건설현장의 노동환경에 주목하는 게 더 적합한 접근이 아닐까 싶어요. 달리 말해, “전체 산재 비율 중에 건설업이 많을까?”에 대해서 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만큼 건설 현장이 안전하지 않게 운영이 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부분 건설 현장은 힘들고, 위험하고, 다치기 쉬운 소위 말하는 노가다라고 불리는 3D 업종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건설현장이니까 당연히 위험하고 다치는 것은 아닙니다. 건설현장이라고 위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의 건설 현장이어서 다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예를 들어, 캐나다의 건설 현장은 외벽 바깥으로 추락 방지판과 안전 구조물이 꼼꼼하게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건설현장에서 걸어 다녀도 발이 빠지거나 떨어질 일이 전혀 없죠. 반면에 한국은 안전발판도 불안정하고, 낙하방지에방을 위한 안전설비도 제대로 설치가 안되어 있는 경우가 많이 있죠.


 작업 속도의 차이도 있습니다. 모든 건설현장 노동자가 안전고리를 착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든지 떨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곳에서 안전 고리를 착용하게 하는데, 한국에서는 안전고리를 잘 착용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노동자 개인의 안전의식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물론 안전 고리를 착용하면 작업 자세가 불편하죠. 그동안 건설노동자들이 안전고리를 착용하고 작업하지 않았던 탓에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혹자는 건설현장에 들어올 때부터 안전한 자세로 교육을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게 가능하려면, 건설업의 교육시스템 자체를 문제삼아야 하는데, 논점이 달라지니, 이는 일단 넘어가죠. 다시 원래 얘기로 돌아오면, 안전 고리를 착용하면 작업 속도가 떨어집니다. 이렇게 작업속도가 늦어지는 걸 건설사, 건설자본들은 싫어합니다. 작업이 더디게 이뤄지면 건설기간이 늘어나고 건설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즉 건설노동자들이 다치고 아플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건설사에서 작업 효율을 중요시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빠듯하게 정해놓은 공사기간 내에 일을 마쳐야 하니, 노동자들 스스로도 위험을 무릅쓰지 않을 수 없죠. 예를 들어, 이틀치의 안전하게 일할 스케줄을 하루안에 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며 일하게 됩니다. 일 자체가 힘든데 쉬지도 못하니, 몸이 회복할 시간은 없고 갈수록 몸이 망가지는 것이죠. 반대로, 안전하게 일하기 위해서는 작업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요. 결국, 충분히 안전을 확보하며 일할 수 있는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를 보장하지 않는 작업 일정이 산재사망사고를 유발하는 요인 중 하나죠. 좀 더 근본적으로는 건설산업의 이윤구조와 맥이 닿아있습니다. 따라서 안전 설비가 잘 갖춰져야 하는 것과 함께, 위험하지 않게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건설현장은 두 가지 모두 잘 안되어 있습니다.


실례로 안전보건공단에서 2018~19년도에 집중적으로 안전 발판에 대한 사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안전 발판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데 한국은 안전 발판에 대한 규제가 별로 없고, 건설사에서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저렴하고, 규격화되지 않은 제품을 씁니다. 그리고 이 발판들을 낡았다고 해서 잘 교체하지도 않죠. 그래서 빈 공간이 많거나, 쉽게 무너지는 발판들이 있어 이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 및 교체 사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건설업의 사망 사고를 줄이는 방책으로 안전 발판을 적합한 것으로 교체하였음에도 최근 산재통계자료를 보면 안전사고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지는 않았습니다. 노동 강도나 작업 속도의 문제가 여전했기 것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어요. 여러 사안 중 가장 심각한 문제에 집중해서 그걸 해결하는 것도 취할 수 있는 전략이죠. 하지만 높은 산재 사고 발생률은 여러 사안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일입니다. 어느 하나의 조치만 집중적으로 시행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닌 거죠. 그러니 참 어려운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산재 사건들이 과거부터 이어져 왔고, 처벌을 떠나 사측에서도 당연히 사건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막고 싶을 텐데, 이러한 산재 사고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예방이 안되고 있는 구체적인 이유가 궁금합니다.


건설업에 국한해서 이야기하면, 제대로 예방되지 않는 원인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 있습니다. 이때 도급이란 민법 제664조에 따르면, “당사자 일방이 어느 일을 완성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그 일의 결과에 대하여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기는 계약”입니다. 건설현장을 가보시면, 수많은 작업이 동시에 여러 곳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요즘 한창 얘기되는 재개발 지역을 예로 들어보죠. 한 재개발조합이 아파트 단지를 짓는 공사를 발주를 해요. 그러면, 이 공사를 맡기 위해 건설사들이 경쟁입찰에 응하겠죠. 그래서 한 건설사가 이를 따냈어요. 그런데 그 건설사는 상시적으로 아파트를 짓기 위한 인력과 장비, 기술 등을 모두 갖추고 있지 않아요. 아파트를 짓는데 필요한 각 작업을 담당한 전문건설업체에게 용역을 맡기죠. 여기까지는 불법이 아니에요. 문제는 도급을 받은 것을 재하도급을 주면 법을 어기는 것이지요. 하지만 건설현장에서는 이런 일이 너무 오랫동안 당연한 사업구조로 고착화되었어요. 전문건설업체에도 자신이 담당한 사업을 진행할 인력과 기술, 장비 등이 충분치 않죠. 그래서 다시 그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실제로 일할 팀이나 업체를 구하고 거기에 재하도급을 줘요. 이렇게 중층적인 하도급이 늘상 벌어지고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하도급 구조가 복잡하게 얽히다 보면, 정해진 예산 안에서 참여하는 업체와 인력들이 이윤을 나눠가져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겨요. 하도급 업체들은 최대한의 이윤을 남기기 위해 인건비를 낮추거나, 싼 자재를 쓰거나, 안전과 관련해서는 안전 관리 비용을 줄이는 것입니다. 때로는 안전장비나 설비 등을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만 하고 실제로 위험예방이 되지 않게 하거나요. 그리고 무엇보다 장비 임대 비용, 인건비 등 제반비용을 줄이기 위한 최우선 과제가 바로 공사기간을 줄이는 것입니다. 그러니 최대의 이윤을 남기려는 목표 아래 안전은 명백한 후순위가 되어 버리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출처 뉴스토마토)


물론 산업안전보건법을 보면, 공사 규모에 따라서 반드시 안전 관리비를 일정 이상 계상하도록 법적으로 정해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사업장에 대한 규제는 법과 행정에서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그리고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일수록 규제하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심지어 건설 업체들은 자기 자본으로 사업을 진행하지 않고, 은행에 가서 대출하여 직접 시공하기 때문에, 높은 이자 비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공사비는 줄이고 이익실현 기간을 당기다 보니 안전예방은 고려대상이 아니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5. 산재 피해를 막기 위해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을 강화한 ‘김용균법’이 등장하였는데, 왜 이것이 효과가 미진했고 중대재해처벌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먼저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의 개정안인 ‘김용균법’의 효과가 미진했다는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아직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김용균법’이 미진했기 때문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해서 두가지로 답변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김용균법‘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하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첫째로, ‘김용균법’은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으로 갑자기 만들어져서 제출된 법안은 아닙니다. 17~18년도부터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제정 이후 20년 가까이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정 당시에 한국은 제조업 중심의 공장 구조였습니다. 신발 공장이나, 작은 수공업들도 많았는데, 그때는 정규직 노동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근데 산업의 노동 형태가 97년 이후로 비정규직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며 변화했고, 그 유형도 프리랜서, 사내하청, 무기 계약직 등으로 다양한 형태를 띄게 되었습니다. 기업들도 한 기업이 하나의 사업만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자회사도 만들고 하청업들이 생기고, 책임구조가 되게 복잡해지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A기업에서 A 기업의 자회사를 세우는 방식으로 부품에 대해서 공급받는 것을 유지하되, 그 책임을 바깥으로 분산시키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A기업  본사의 법적인 책임을 분리시켜서, 그 책임을 하청업체, 자회사만 지도록 하는 방식으로, 불필요한 업무에 대해서 외주를 주는 책임 회피제도가 만들어진 것이죠. 다른 업체들에게 하청을 맡기며 몸집은 줄이되 이윤을 늘리는 전략은 90년대 이후부터 성행하였습니다.


이러한 기업 구조의 변화를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이 충분히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의제가 되기 전에는 안전 관리 설비를 제대로 해야 하는 의무가 하청업체에게만 있는 것으로 법적으로 해석되기도 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사업의 실권, 특히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설비개선 등의 안전조치를 취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은 원청에 있는데 모든 사고의 책임은 하청이 맡게 되는 상황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여러 사회운동에서 문제제기를 하였고, 이게 사법처벌의 과정에서 법적인 쟁점아 되었습니다. 이런 여러 사건들을 계기로 법제도 개선의 요구가 마련되었습니다. 이렇듯 변화하는 노동시장에 부합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모아졌습니다. 이에 정부 또한 문제의식에 일부 공감하면서 개정안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정부에서 제출한 개정안의 실효성과 일부 조항의 변경요구 등의 갑론을박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그 당시에는 개정안이 통과될 사회적, 정치적 압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을 계기로, 사회적으로 산안법 개정의 필요성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산안법의 개정을 통해 하청업체에 소속된 직원들도, 실질적으로 안전이 보장될 수 있을 수 있음이 대중적인 공감을 얻게 되었고, 그에 따라 산안법의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벌금형이나 과태료가 조정되거나, 법의 구조 자체도 많이 바뀌었고, 위험할 때 작업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조리급식실 노동자에 대한 안전 관리, 건설 현장의 안전 관리에 대한 추가 조항 등 여러 조항이 새롭게 신설되거나 개정되어 기존의 산안법에 비해 개선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법조항의 변화가 반드시 실제 현장의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고, 법 자체도 여전히 손봐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에 산안법 개정과 이를 현장에서 실현하는 일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김용균법’과 맥락이 조금은 다릅니다. 처음에는 기업 살인법이라고 불리며. 2000년대 초반부터 소개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산재 사고는 기업에 의한 살인이라는 주장을 가지고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운동 차원의 제안이었습니다. 노동 조합과 민주 노총도 반복되는 산재사망사고를 해결하기 위한 캠페인 중 하나로 기업 살인법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기업 살인법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진전되었던 계기는 세월호 참사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기업 살인법이 담고 있는 여러 문제의식 중 하나인 ‘법인에 대한 처벌’, ‘포괄적 책임 부여’ 등의 쟁점이 더욱 더 가시화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의 중심 쟁점은 처벌의 논리를 달리하여. 포괄적인 형사상 책임을 묻고, 이를 근거로 법인을 처벌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기존 한국의 범죄에 대한 형법에 대해서는 법인을 처벌할 수 없었습니다. 행정 의무를 위반한 것에 대한 과태료 처벌만 있을 분, 법인 자체에 대한 형사상 처벌은 불가능했죠. 민사상 처벌도 낮은 수준이었고요. 처벌 규정이 있다고 해도, 사법부에서도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문제의식이 충분치 않아서 최대로 적용하기보다는 낮은 수준에서의 처벌만 내리고 있었습니다. 예방의무와 이행점검이 제대로 되지 않을 뿐더러, 사후 처벌 또한 가벼우니, 기업들은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노동환경을 변화시킬 유인을 찾지 못했고, 결국 산업 재해 예방은 기업들의 우선순위가 아니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 것입니다. 다음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은 처벌의 근거나 처벌의 대상, 반대로 말해 의무의 범위나 내용, 의무 수임 주체를 포괄적으로 규정하고자 했습니다. 세월호참사나 가습기살균제참사에서 보듯이, 참사가 벌어진 원인을 단 하나로 규정할 수 없으며 직접적 원인도 찾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참사를 일으킨 책임주체 또한 단 한 명, 단 하나의 기업 등으로 제한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노동자의 안전에 있어서도 폭넓게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동안 기업들은 산안법상 기술적으로 규정된 안전조치 사항들만 지켰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곳들도 태반이긴 합니다만. 앞서 얘기한 건설업에서의 공사기간 문제라든가, 고 김용균 노동자가 구의역 김군의 사례에서 확인된 2인 1조 근무를 통한 위험예방 등은 안전과 관련한 법적 처벌의 대상이 아니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죠. 시민재해나 산업재해 모두 위험을 예방하는 데 있어서, 예상되는 결과를 막기 위해 법적으로 규정되지 않더라도 가능한 한 관련된 모든 조치를 취하도록 하기 위해서, 한 편으로는 의무를 포괄적으로 넓히고, 포괄적으로 넓힌 의무에도 불구하고 처벌의 근거를 결과 발생을 근거로 삼고, 다른 한편에서는 결과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책임을 물으며 그렇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대상을 경영책임자, 발주처, 해당 사업의 인허가 및 안전관리와 관련된 권한을 지닌 공무원, 법인 자체 등으로 확대하려고 했던 것이죠. 따라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회적 참사,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서, 기업과 정부로 하여금 모든 가능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요구하는 법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런 문제의식이 널리 확산되었음에도, 워낙 새로운 법적 논리이다보니 한국의 형법 구조와 논리에 충돌하고 있고, 재계에서도 법적 의무가 모호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며 볼멘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법을 적용해서 처벌사례를 만들려면, 구체적인 위반 사항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해요. 즉 법의 실효성을 위해서는 법이 담아내고자 한 상징적 의미를 일부 퇴색시킬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이 때문에 하위법령 제정 과정에서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정한 의무들로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있고요. 처벌 대상도 안전이사 등 몇몇의 책임주체로만 제한하거나 전가하려고 하고 있어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었지만, 이 법의 의미와 효력을 약화시키려는 쪽과 법제정의 취지를 최대한 살리려는 쪽과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6. 법 제정 외에 건설 노동 환경에서의 사고를 유의미하게 줄이기 위해 정부와 사측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산재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자 참여를 어떻게 잘할 수 있게 그 경로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사측에서는 이윤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삶에 더 관심을 기울여, 그들이 안전을 확보할 수 있게 참여의 기회를 보장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부에서도 노동자 참여를 위한 제도와 참여 경로를 마련해줘야 할 것이고요.


 더불어 정부 기관에서는 안전 감시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안전 발판 집중 점검, 사망사고를 위한 안전 관리 인력을 집중적으로 운영하지만, 관리를 하는 인력과 재정을 늘지 않은 상황에서 이는 풍선 누르기와 같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안전 관리 역량, 안전 관리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 필요한데, 예산이 많이 배정되어 있지도 않고, 인력의 확충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여의치 않습니다. 그래서 메르스 사태 이후 질병관리본부를 신설하고 인수공통감염이나 팬데믹 등에 대처하기 위한 권한을 집중하고 강화시켰던 것처럼, 산업재해에 대해 종합적인 집행력을 갖는 대안적 기구 또한 논의될 필요가 있습니다. 각 부처별로 담당하고 있는 산업들이 있고,  안전에 관련하여 업무 또한 분화되어 있는데, 이렇게 흩어진 각 부서의 안전 관련 기능과 권한을 종합할 수 있도록 특별 조직을 만들거나 협력체계를 구축한다면, 종합적인 안전 관리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이런 고민들이 모여 산업안전보건관리청 신설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펼쳐지고 있습니다.


7. 사람마다 ‘안전하다’는 기준이 다를 것 같습니다. ‘안전한 건설현장’의 기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현장에서 나만 조심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은 산재 예방에 효과적인 대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안전은 내가 일하는 환경에서 혼자 조심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가 생각하는 ‘안전한 건설현장’은 천천히 쉬면서, 주의력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곳, 조심하면서 일할 수 있는 인원, 설비, 안전 관리 체계 등이 갖춰져 있는 곳입니다. 건설 사고는 노동자 개인이 문제가 아니라 노동 조건, 노동 환경의 문제임을 우리 모두가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적절한 노동 조건과 노동 환경의 확보만이 완전한 안전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은 시혜적으로 기업이 해줘야 할 것이 아니라,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모든 노동자의 권리입니다.


8. 해당 주제의 이해관계자로서 일반 시민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나요?


시민들이 안전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노동 조건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조심조심 코리아”를 외쳤던 과거보다 “안전은 권리입니다”를 말하는 현재처럼 적절한 노동 환경의 보장으로 모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노동자 건강에 대하여 생각할 때, 산재 사망사고 뿐 아니라 직업병도 심각한 문제이니 함께 고려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노동자가 안전해야 시민이 안전합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승무원을 비롯한 노동자들이 선박의 노후화 등 여러 위험요인을 지적했음에도,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건설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무너지거나 철거현장에서 철거물이 도로를 덮치는 등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위험은 언제든 시민들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고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함께 해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연구소의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고, 정기간행물인 <일터>도 많이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안전 문제, 개인의 문제가 아닌 노동 조건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적절한 노동 환경의 보장으로 모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인터뷰 발췌 중-


‘안전’은 한 명의 개인에게만 부담할 수 있는 책임이 아닙니다. 모두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만큼 단단해 질 것이며, 우리의 일터에도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즉, 건설노동자 분들이 더욱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함께 목소리를 내보는 것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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