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벽, 잠들기 전 문득 떠 오른 사람, 20살 때 같은 하숙방에서 함께 하숙한 학형, “그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당시 24세에 이미 성령을 마주 한 사람. ‘가시덤불을 헤쳐 이제 겨우 톨게이트가 저만치 보이는데 그 사람은 지금 어디쯤 서 있을꼬?’
오후에 궁금증이 해소됐다. 목소리는 50년 전의 음색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통화를 하고 난 다음 기념으로 노래 한 곡과 “이제 찾았으니 50년 전 과제, 명리공부 시작합시다.”하고 카톡을 보냈다. 연이어 답장이 왔다.
“50년간의 긴 세월이 오늘 통화로 50년을 깔끔히 지워버렸습니다. 같은 방에서 하숙했던 50년 전을 회상하며 그 때 미래의 꿈을 하나 하나 돌이켜 보며 별똥별 하늘 궁전을 바라 보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전언 속에서 ‘50년 세월을 지워버렸다.’는 말에는 여러 가지의 의미가 함축돼 있었다. 통화 중 나눈 말과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어떤 경로를 통해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는지부터 시작되었다.
“그 당시는 마른 체격에 호리호리한 얼굴이었는데 포탈사이트에 등장한 인물사진에는 보름달 같이 둥근 얼굴을 하고 있든데 현실의 때가 많이 묻었는지 과거의 그 구도자 같이 또랑또랑하고 예리한 모습은 어디 갔나요?” 50년 만에 하는 첫 대화치고는 무척 황당했을 것이다. ‘너는 겉 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냐?’하고 반박할 언설이었다. 그는 의외로 연방 ‘껄껄껄’하며 웃어됐다. 나는 그의 지위나 위신 등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의 ‘영적성장’이 무척 궁금했다. 그 학형의 체험은 매우 강력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는 20살 즈음에 열흘 정도 먹을 수 있는 미숫가루를 들고 남해 보리암 근처에 텐트를 치고 기거하면서 7일 간 기도를 했다고 했다,
기도의 내용이 실로 기막혔다. “너에게 겨자씨 만큼의 믿음이 있다면 이 산을 저 산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를 갖게 될 것이며......”하는 성경의 말씀을 직접 체험해 보고자 한 것이었다. 앞 산을 바라보며
“하나님! 눈 앞이 보이는 저 앞 산을 다른 쪽으로 옮겨 주시어 저의 믿음을 증명해 주세요.”
기도 7일이 끝날 즈음, 아침에 일어나 감은 눈을 살포시 떠 보니 산은 이 전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있었다. 그는 산은 그대로 있었지만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현존’을 느꼈다고 했다.
그 뿐이 아니다. 하숙집 주인의 막내아들이 ‘도시 건달’로 어머니 속을 많이 썩이고 있었는데 언젠가 그 학형은 “저 애가 6개월 후에 경찰서 신세를 질 것이라.”라고 했다. 그의 말을 예사로 듣고 넘겼는데 어느 날 하숙집에 큰 소동이 벌어졌다. 하숙집 아들이 집단 패싸움을 해 몇몇은 병원에 실려 가고 하숙집 아들이 연류되어 경찰서에 붙잡혀 있다는 것이었다. 문득 몇 개월 전에 한 학형의 말이 스쳤다.
“몇 개월 전 하숙집 아들이 얼마 안 지나 경찰서 신세를 진다고 했는데 무얼 보고 알았어요?”
“아, 얼마 전 그 아들의 생년월일을 잠깐 봤거든.”
“그 사주팔자 보는거 말입니까?”
“관상도 그렇지.”
“명리 좀 가르쳐 주세요.”
“배우지 마오.”
“그렇게 신통한 것을 왜 배우지 말라 합니까?”
“나중에는 크게 도움 될 게 없어서 그렇지.”
“대체 명리는 어디서 배웠어요.”
“어떤 처사님 한테 배웠지.”
그는 이어서 말했다.
“명리, 주역, 관상 등을 공부하면서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었지,”
이제 그 학형의 나이 24세 이후 5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의 정신세계를 공감하고 싶다. 카톡에 ‘하늘궁전’이라는 표현 속에 응축되어 있는 세세한 마음의 결을 맞이하고 싶다.
커피 한 잔에 글 쓰기 좋은 저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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