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믿음의 결과는 우연히 찾아왔다. 길을 가다가 K교수는 유행에 뒤처진 느낌을 주는 ‘000 정신신경과 의원’라고 적힌 간판을 보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아마 저 의원에 있는 주치의는 많은 임상경험이 있지 않을까?’였다. 별다른 장비와 검사기구도 없었지만 족히 70세는 넘어 보이는 정신신경과 의사가 내린 K교수의 어지럼증에 대한 처방은 두 가지였다.
“지금부터 일체의 검사를 받지 마세요.”
“처방된 약을 규칙적으로 복용하고 그 약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마세요.”
K교수는 약을 규칙적으로 복용한 이후부터 다소 안정을 찾기 시작하였다. 자세를 빠르게 바꾸거나 복잡한 셈법이 오고 가는 식사자리를 빼고는 일상생활이 대체로 안정되었다.
또한 K교수의 어지럼증을 완화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준 것은 ‘사람과 자연’이다.
역설적으로 K교수는 어지럼증을 갖기 시작한 이후부터 주변의 교수들과 친교를 다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특히 대학 내에서 신입생 충원이 잘 되지 않는 과의 교수들과의 교분이다. 평소에는 그들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였다. 그들은 단지 같은 학내의 구성원일 뿐이었다.
언젠가 중학교 동창생 모임에서 누가 K교수를 불러
“ K교수! ” 하자,
다른 친구 한 사람이 “ 아! 반똥가리 교수!”하지 않는가?
K교수는 분기가 올라오기 전에 그런 말에 충격을 받아 적절한 대꾸를 하지 못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K교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뇌까렸다.
“ 자아~ 씩들! 교육이 뭔지도 모르는 것들이 까불고 있어. 그래 오냐! 씹어라 씹어!”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K교수는 자신의 처지가 벌컥 스러워지는 듯하기도 했다. 그것은 K교수 자신이 전문대학 교수이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 교육자로서의 본분을 다하면서 살고 있는가?' 하는 자괴감에서 흘러나온 일말의 서글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명색이 대한민국에서 대학교수는 가장 많은 교육을 받은 계층에 속하며, 사회적 지위 또한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직업이 아닌가?
보수 또한 근로자의 평균임금에 비하면 그것을 훨씬 상회한다. 누구 말대로 긴긴 방학 있지, 달력에 빨간색칠, 파란색칠한 날까지 다 놀지, 정년 길지, 퇴직하면 연금 받지. 무엇을 더 원하는가 하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저마다 지니고 있는 고유한 가족구조로 인한 경제규모를 따지지 않는다면 대학 교수직업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직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느 누구든 고립된 삶을 살지 않는 한, 인간의 삶의 질은 단순한 외형적인 조건에 비례하지 않는다. K교수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K교수의 두중현상은 엄격하게 따지면 그의 내면에 있다.
사람은 누구나 하루 세끼를 먹고 산다. 외국의 어느 백만장자는 죽기 1년 전 자신의 삶을 1년 간만 연장해 주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산의 절반을 주겠다는 광고를 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뿐이랴! 소문에 의하면 고인이 된 우리나라 대재벌도 ‘김치 하고 흰쌀밥’을 한 번 만이라도 먹을 수 있게 해 준다면 그 역시 재산의 반을 내놓겠다고 했다고 한다.
성경에 “ 밥 만으로 살 수 없다”라는 말속에는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밥은 먹어야 한다는 말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하루 세끼 밥 먹는 것 이외의 것은 무엇으로 채워지는가? 무엇 보다도 그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것일 게다.
일자리 문제는 매우 복잡한 사회 경제적 상황과 연관되어 있으며, 이 역시 하루 세끼의 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일이란 무엇인가? 일은 축복인가? 고역인가? 일은 축복인 동시에 고역이다. 많은 사람들은 일이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일에 대한 동기가 자발적이어야 하고 일을 하기 위한 조건이 좋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직장문화가 억압적이고, 인간관계가 폐쇄적이고 직장 내 의사소통이 일방적이면 일이 축복이 되기 어렵다. 이때의 일은 먹고살기 위해서 마지못해 해야 하는 강제 노역에 다름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강제적 노역에 시달리면서 생활을 영위해 간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러한 상황이 오늘날 우리들의 운명이라면 운명이다. 앞으로 많은 세월이 흐른다 하더라도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러한 노동소외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칼 마르크스가 사망한 지 백 수십 년이 흘렀지만 오늘날 상황은 과거 그가 주장한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노동소외가 소멸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떤 의미에서는 마르크스가 외쳤던 ‘노동소외’의 문제는 현대에 와서 매우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과거 마르크스가 노동소외의 문제를 다룰 때 ‘자본에 지배된 노동조건’에 중점을 두었다면 오늘날에는 그 중심이 인간의식의 발달과 관련한 노동소외의 문제로 이동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권력이동』에서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은 정보사회에 와서 드디어 그 유용성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권력원천의 중심이 과거에는 돈, 노동, 자본, 물리력이었다면 오늘날은 그것이 정보와 지식으로 이동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정보와 지식은 누가 만들어내는 것인가? 인공지능 시대의 근간인 데이터, 정보, 지식 역시 사람노동의 산물이기 때문에 권력이동과 함께 노동의 원천이 이동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현대가 과거에 비해 노동의 원천이 이동되었다면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가치설이 완전히 폐기 처분되었다고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노동이 가치의 중심이라는 말은 사람이 가치의 중심이라는 말과 다름 아니다.
K교수는 중학교 동기가 말한 의미의 ‘반똥가리 교수’가 아니라, 마르크스가 주장한 ‘노동가치설’의 측면에서 본 ‘반똥가리 교수’ 임을 자각한다. 그것은 그가 하고 있는 일은 분명히 교육활동이지만 사실은 교육활동의 포장 속에는 비교육적 활동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K교수는 대학에서 난삽한 여러 일에 직면했을 때, 대학원 시절 어떤 교육학 교수의 말을 수시로 떠올려 뇌까리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