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좋은 것도 배우지만 나쁜 것을 더 많이 배운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은 교육적 처방으로만 해결되지 않고 그곳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해결되는 것들이 더 많다. 가시덤불을 피하고 잡초 더미를 헤집고 나서야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 ‘교육’이다.”
K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은 지방소재대학이다. 설립준칙주의에 의해 대학설립이 자유러워지다 보니 많은 대학이 양산되어 지방에서는 입학자원의 고갈로 인해 미등록률로 인하여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IT계열학과가 추락하고 많은 교수들이 제갈길로 가거나 대학에서 쫓겨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신분변동은 생존과 관련이 있기에 어떤 대학교수들은 쫓겨나는 것에 대항하여 필사적인 항의를 계속하고 있기도 하다. 사학의 비리를 담보 삼아 대학당국과 투쟁하는 일도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어떤 측면에서는 상당수 지방대학들이 이러한 형태의 잠재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행히 2010년부터 5년간은 출생인구가 70만 대에 들어서고 입학정원 감축의 효과도 있으니 당분간은 큰 어려움이 없다는 안도감을 갖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출생률은 2015년을 정점으로 하여 감소하다가 2020년 이후에는 출생인구가 40만 명 대이니 정원감축, 폐과, 대학멸실 등의 수순이 예고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립대학에서는 머지않은 미래를 대비하여 향후 5년 동안에 지속가능한 대학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문제에 사활을 걸고 있다.
K교수는 지금 나이가 50세이니 50대 후반까지 직장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K교수는 석박사 공부를 마치고 35세에 대학에 진입하였으며 이제 15년째 대학에 근무하고 있다. 결혼을 늦게 하여 아직 자녀 둘이 중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4-5년 후에는 자녀들이 막 대학에 입학하는 나이인데 평탄치 않은 앞날을 생각해 보면 항상 마음이 불안하다. 초 읽듯이, 다가오는 불안한 미래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K교수의 전공은 호텔경영학이다. 학과장을 10년째 맡고 있다. 10년 동안 학과장을 맡고 있으니 다른 과의 학과장에 비하여 가장 오래 보직을 맡고 있는 셈이다. 같은 과 교수에 관한 것이라면 집에 있는 숟가락 하나까지 훤히 꿰뚫을 정도이다.
대학에서 대외비로 지급되는 성과급도 과 교수들은 서로 공개하여 비교할 뿐 아니라, 성과급을 조금이라도 많이 탄 교수는 자진해서 한 턱을 내기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 성과급이란 게 새로운 재원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봉급의 각종 수당을 재원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제로-섬 게임이다.
내가 많이 받으면 내가 많이 받은 것만큼 다른 교수들이 덜 받는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에 서로의 살림살이를 뻔히 잘 알고 있는 처지에 있는 교수들로서는 타 교수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로 다가온다.
성과급 제도는 교수들의 경쟁력을 고취시키기 위한 것이 기본취지이다. 취업률, 충원율등, 학과별 공동노력을 통해서 획득할 수 있는 점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교수평가, 논문 등의 교육활동, 학교경영에의 참가, 봉사 활동 등의 개인별 업적이 주종을 이룬다. 정량적 기준이 아니고서는 객관적 평가가 어렵기 때문에 정성적 평가의 영역은 매우 축소되어 있다. 성과급 제도가 이렇다 보니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과급 평가항목에 들지 않는 활동은 자연히 등한시되는 경향으로 흐르게 된다.
한 번은 K교수가 빈번히 결석하는 한 학생을 붙들고 상담을 하고 있는 것을 본 같은 과 교수의 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상담이 밥 먹여 줍니까? 논문이나 쓰세요”
K교수는 이 말을 무심코 받아넘기면서 이렇게 응답했다.
“ 교수의 본분이 먼저 학생교육 아니겠어요?”
그 교수는 한 술 더 떠서 또 이렇게 말했다.
“ 뭐 그리 힘들게 사세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실속 좀 챙기세요.”
K교수는 ‘어~허’하면서 썩소(썩은 미소)로 그 상황을 종료했다. K교수는 요즘 들어 부쩍 과 교수들이 정량적 평가의 대상이 되지 않는 일에 소홀할 뿐 아니라, 서로 협력하여 할 수 있는 일에는 등한하고, 점수를 획득할 수 있는 개인적 활동에 치중하는 경향이 갈수록 그 도를 더해 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사람은 아무리 교육을 많이 받아도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사고구조를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인가?”
“교육적 신념을 지니고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교수상은 이상에 불과하단 말인가?”
성과급을 많이 탄 교수가 동료교수들을 초치해서 술을 사는 행태는 교수가 반드시 경제적 동기에 의해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성과급이라는 제도에 철저하게 적응해 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 그러니 책임은 무겁고 책임이행에 대한 반대급부가 미미한 학과장 자리를 자청해서 하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K교수의 어지럼증 증상도 이러한 성과위주의 대학정책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이 미미한 사립대학으로서는 재원의 원천이 학생들의 등록금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학생모집이 안 되는 과는 늘 존폐위기의 그들 속에서 학교생활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 충원이 안 되는 과에 소속된 교수들의 마음속엔 늘 어두운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