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난 기타리스트의 꿈

by 제로진

나는 갓 난 기타리스트이다. 정말 갓 났다... 난 지 한 삼주 되었나? 갓 난 인간이었던 시절로부터는 수 십년이 흘렀고 그 이후로도 수많은 상황과 경험들에서 나는 갓 난 무언가였다. 외부 영역으로부터, 특정한 분야의 세계로 갓 태어난 날들이 수도 없었다. 그럴때마다 정말 갓 태어났던 시절 내가 느꼈을 인간과 세상에 대한 어색함, 그리고 고통들은 씻은 듯 사라져 기억해낼래야 기억할 수가 없는데, 지금 내가 겪는 (출생과는 비교도 안 될) 초심자로서의 괴로움은 왜 이리도 생생하던지!


말이 길었다. 아무튼 제대로 다루는 악기가 하나도 없는 나는 21세기 교양시민이 되고자... 악기를 하나 배워보기로 했다. 그건 통기타였다. 학문적인 영역의 음악에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어쨌든 나는 음악을 굉장히 사랑한다. 멜로디가 주는 도취감도 좋고 리듬이 주는 울림도 좋다. 뭔지는 몰라도 내가 주인공이 된 것 같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 늘 OST가 깔려왔기 때문에 느끼는 착각 같은 것이지만.


또 말이 길어지네. 아무튼 그래서 동네 기타학원에 등록함으로써 나는 갓 난 기타리스트가 되었다! 목소리가 정말 기차 화통을 솥에 넣고 펄펄 끓여서 달인 물을 유리컵에 담아 후루룩 후루룩 마셨대도 믿을 만큼 크고, 칭찬에 아주 후한 사람이 나의 기타 선생님이 되었다. 목소리가 얼마나 크냐면 내가 말도 안 되게 느린 속도로 몇 가지 코드를 잡고 음을 뚱겨보는데, 거기에 "와 정말 이미 너무 완벽하신데요! 포즈는 이미 프로이신데요!" 하고 칭찬해주는 목소리 때문에 "제 기타 소리가 잘 안 들려요..." 라고 말하고 싶은 수준으로 크다.


그리고 나의 기타 선생님은 성인인 내가 이정도 기본 지식은 다 알고 있을거라 생각했는지 온음표와 4분음표와 8분음표와 16분음표와 박자 개념 등을 줄기차게 물었으나 내가 정말 하나도 모른다고 하자 당황하며 이런저런 음악 이론을 알려주었다. 또 나는 그런 새로운 지식들이 너무 반갑고 신기해서 옳다구나 하며 배우고 외웠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내 무의식에 꽤나 강한 잔상으로 남았던 모양이었다.


왜냐면 내가 며칠 전에 꿈을 꿨기 때문이다. 그 꿈 속에서 나는 교복을 입은 학생이었고, 반 친구들과 단체로 어딜 갔는지 우르르 줄을 서 있었다. 근데 반 친구 중에 한 애가 나의 치부를 건드렸는지 아무튼 굉장히 수치심을 불러오는 발언을 했다. 뭐였는지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정말 법적 대응까지 불사할만큼의 모욕적인 언행이었고 꿈 속이어서인지 학창 시절이어서인지(?) 불의를 도무지 참을 수 없던 나는 얘를 고소하겠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그랬더니 나의 담임선생님으로 보이는 어떤 엄청나게 길고 또 그보다 더 엄청나게 마른 남성이 그런 나를 제재했다. 하지만 나는 고소 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했고... 선생님이 그런 내게 말했다.


"너 지금 쟤 고소하면 너도 저 친구도 인생 정말 망한다" 라고. 그래서 난 사춘기의 힘을 빌려 소리쳤다. "인생 망하면 뭐요, 그럼 그냥 죽으면 되죠." 하고... 꿈속에서조차 나는 꽤나 회피성 인간이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그렇게 선생님 앞에서 못 할 말을 했더니 그가 너무 쓸쓸하고 슬픈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이러면 내가 어떻게 너를 16분음표 박자로 사랑할 수 있겠니?"


대체 아직도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꿈 속에서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심장을 울리는 감동과 이렇게 친구를 고소해서는 안 되겠다는 감정적 동요를 느꼈고 알겠다며 모든 것을 용서하고 물러났다. 엄청 길고 말랐던 그 선생님은 잘 생각했다는 듯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종국에는 뒤에 서있던 나무 줄기의 일부가 되었던 것 같다.


어떻게 너를 16분음표 박자로 사랑할 수 있겠냐고? 그게 대체 뭔데...? 좀 빠르게 사랑하는 건가? 아직도 박자개념이 좀 헷갈려서 뭐라 정의내리기가 더 힘들지만... 살아오며 꿈 속에서 들은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은 대사였다. 어쨌든 어떤 박자이든 간에 갓 난 기타리스트인 나는 진심을 다하여 배울 준비가 되어 있다. 얼마나진심이냐면 꿈까지 꿀 정도이다... 외국어 학습에 몰입하면 외국어로 말하는 꿈을 꾸는 것처럼 음악 학습에 몰입하니 하다하다 이제 음악용어로 대화를 하네.


아직은 갓 난 기타리스트이지만 곧 무럭무럭 성장할 나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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