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 두 번인 사람

by 제로진


나는 어릴 때부터 걱정이 많은 애였다. 내 삶 속 염려와 기우의 역사는 말 그대로 유구한데, 초등학생 시절엔 매일의 수학 숙제에 조금씩 흔들리는 이빨 걱정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야자 끝나고 하교하는 고등학생 언니오빠들을 보면서도 먼 미래를 우려했다. ‘나도 고등학생이 되면 저렇게 한밤중까지 엄마아빠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걸까?’ 다가올 비극에 몸서리치며 어른이 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쯤 했으면 좋았으련만 성인이 되고서도 나는 항상 어딘가 체한 사람 같았다. 대학 졸업 후 마주한 사회의 무게는 어찌나 무겁던지. 동료들 사이에서 평판이 안 좋으면 어떡하지, 맡은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하면 어쩌지… 날 짓누르는 고민들은 꼬리에 꼬리를 문 대륙 횡단 열차였다. 난 아직도 까만 밤에 듬성듬성 불 켜진 고등학교 건물을 바라보던 겁먹은 어린애 그대론데, 억울하게도 그간 몸이 많이 자라 이젠 지나가는 어른들을 붙잡고 ‘뿌엥’하고 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어디 말도 못 하고 혼자 시름시름 병든 닭마냥 지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유난히 걱정 많은 나약한 나 자신이 부끄럽고 싫었다. 나날이 영육이 쇠약해져가고 있는 나를 보고 어느 날엔가 엄마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쩜 그렇게 나나 너네 할머니랑 똑같냐고. 어쩜 그렇게 소중한 게 많고, 또 지키고 싶은 게 많으냐고. 난 이해가 안 됐다. 걱정이 많다는 건 그저 겁이 많다는 건데, 소중한 게 많다는 건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냥 날 위로하려 멋지게 표현한 거겠지. 게다가 엄마가 겁이 많다니? ‘모든 엄마는 강하다’ 같은 뻔한 표현을 배제하고서라도 엄마는 엄마 자체로 드물게 용감한 인간이었다.


그렇다고 믿어왔는데, 웬걸, 아니었다. 엄마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걸 불과 지난 주에 깨달았다. 내 생일 케익에 꽂힌 초를 불면서.


나는 생일이 두 번이다. 진짜 내가 태어난 날은 12월 14일인데, 주민등록증 속 생일은 바로 그 다음 해 3월 14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나던 한겨울의 12월, 그때만큼은 어른들을 붙잡고 마음껏 ‘뿌엥’하고 울어대던 나를 내려다보며 엄마와 할머니는 특유의 ‘걱정 유전자’가 발동했던 모양이다. “아니, 올해 끝자락에 태어났는데 그라면 봄에 태어난 아들이랑 거의 1년 나이차가 나는 거 아이가?” 할머니가 시작했고, “그니까요. 아가 느려가지고 동갑 아들 사이에서 적응 못하면 우짜노.” 엄마도 동의했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한 해 늦게 입학시킬 요량으로 해가 바뀐 후 출생 신고를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염려한 일의 대부분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고 엄마와 할머니의 걱정거리였던 나 또한 당신들이 키워보니 그냥 원래 태어난 해에 학교에 보내도 되겠다 싶었단다. 결국 나는 평생을 나와 아무 관계도 없는 날에 각종 포인트사와 미용실, 그리고 회사 인사팀으로부터 축하 문자를 받게 되었다.


3월 14일이 있었던 지난 주, 회사 동료들로부터 생일 아닌 날 생일 축하를 받고 있는데 엄마 생각이 났다. 내 가짜 생일이 말해주고 있었다. 젊은 시절의 엄마는 딸 출생 신고도 늦게 할 정도로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걸. 그리고 그 걱정은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걸.


기억조차 없는 어린 시절, 누군가의 소중한 걱정거리였던 나는 덕분에 생일이 두 번인 사람이 됐다. 앞으로 살아가며 수많은 걱정을 마주하겠지만 이제 그럴 때마다 그 뒤에 숨은 것, 내가 이 순간에 지키고 싶은 게 과연 무엇인지를 대신 떠올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깨를 짓누르던 짐들도 꽤나 귀하게 느껴진다. 왜인지 두 번 태어난 것만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목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