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연휴 끝에 네 생각이 나서 편지를 써.
다가온 출근 생각을 하며 사무치는 괴로움에 좀먹히고 있니?..
나는 아냐..
나는 백수이기 때문이야...
방금 와인도 한 모금 했다.
종종 생각해보건대 나는 술 한두모금을 마시고 아주 살짝 취기가 올랐을 때 훨씬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
평소에는 좀 기운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이유없이 좀 언짢을 때가 많은 듯도 한데
술을 약간만 마시면 훨씬 더 포용적이고 사교적이게 되더라고.
알콜을 섭취하지 않아도 항상 살짝 취해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서 읽었는데 동북아시아인들이 타 지역 인간들보다 행복을 느끼는 뇌의 어딘가가 좀 덜 발달했다고 하더라.
이또한 가짜뉴스이려나...?? 요즘 뭐 하도 가짜뉴스가 많아설라무네 뭘 믿을 수가 있어야지 원...
믿음과 신뢰가 비싸지는 게 너무 슬프다. 교통비가 오르고 사과가 금값이 되는것보다 믿음의 값이 비싸지는 게 더 치명적인 것 같아.
살기가 왜이리 팍팍하다냐?
생물학자들은 인류가 갈수록 진화하고 살기도 점점 더 좋아지는게 명백한 사실이라고 하던데 그또한 가짜뉴스가 아닐런지..
한편의 거대한 가짜뉴스 유니버스에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아무튼 그래서 동북아시아인들이 타 지역 인간보다 행복을 덜 느끼게 설계됐다는 진짠지 가짠지 뭔지모를 뉴스를 봤는데 좀 진짜같어.
그래도 난 이를 악물고 웃어보련다...
연기학원 선생님이 나보고 눈은 슬픈데 입만 웃고있다고 한 게 생각나네ㅠㅠ
그게 얼마나 고도의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지 아마 모르실테지..
오늘 대학 때 한 무리에 함께 소속되어 있었던 친구를 만났어.
걘 어릴때부터 너무 어른스럽고 철학적이고 뭐랄까 깊이가 남달랐던 애라 난 어린마음에 그 친구를 좀 부담스럽게 여겼었거든..
걔의 사상과 사고방식 같은 것들이 너무 멋져보여서 걔 앞에서 괜히 인정받고 싶단 맘에 내 자랑도 엄청 하고 그랬다. 진짜 개 흑역사야..
그래서인지 그시절 이후로 난 본인을 엄청 과시하는 사람들을 크게 미워하지 않게 됐어.
어쩌면 어른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아이의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거든..
어쨌든 그렇게 어려웠던 친구였는데 나도 나이먹고 하다 보니 걔가 그때 했던 말들을 이제서야 이해하게 되고 또 요즘엔 썩 말이 잘 통하더라. 신기하지.
나도 어른이 되긴 됐나봐.. 그간 사회에 얻어맞으면서 배웠나..
그래서 요즘엔 심지어 단 둘이서도 종종 보면서 서로의 주파수를 맞춰가고 있어.
걔랑 얘기하다 보면 뭐랄까 그냥 이 대화의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귀하다는 기분이 들어. 낭비되는 시간이 없는 느낌 있지.
오늘은 인문학과 순수과학의 지식을 골고루 탑재한 인간이 얼마나 창조적이고 창의적일 수 있는지도 이야기하고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간다는 게 젊은시절 얼마나 도전해봄직한 일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어.
대학생 떄는 걔가 하고 있는 말을 들으면 막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지식탐구의 욕망과 감성적 자극이 그야말로 용광로처럼 끓어올랐고 헤어져서 집에 가는 길엔 굴러가는 지하철마저도 새세상처럼 보이고 그랬다.
이젠 그정도로 날 각성시키는 무언가가 점점 더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고.. 그런 순간들이 오래 지속되지도 않는데
그래도 짧게나마 날 꼬집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어.
그치만 너무 소중히 여기지 않고 데면데면하게 생각해야지.
난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면 뭔가 망쳐버리게 될까봐 겁이 나거든...
그냥 지나가는 옆집 강아지처럼 바라보련다.
옆집 강아지는 몇년전에 죽긴 했다..
좋은 데 갔겠지..
순수한 영혼들은 죽으면 좋은 데 간다더라고..
이것도 가짜뉴스냐?...
내일 출근 잘 하고 10월도 화이팅해보자
참 아름다운 계절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