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로 떨어지는 날씨가 계속되었다. 이불 밖으로 얼굴만 내민 채 천장 너머로 보이는 하늘 정원을 감상했다. 조경 비용에 돈 한 푼 들이지 않았지만, 창 너머의 수백 제곱미터 하늘 풍경이 다 내 것이었다.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하늘은 핑크빛, 귤빛, 금빛…… 으로 바뀌며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매일 하늘의 모습이 달랐는데 항상 오늘 보는 하늘이 가장 아름다웠다.
폰으로 겨울 하늘과 잘 어울리는 음악을 찾아보다가 어쩌다 중년 여가수의 공연 모습을 보게 되었다. 여가수의 모습이 낯설지 않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다름 아닌 옥망 여사였다. 여장부 같던 옥망 여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입술에 필러를 넣은 것인지 입술이 복어처럼 부풀어 올라온 것만 제외하고 간드러지는 목소리와 박자에 맞춰 가볍게 흔들리는 허리, 머리를 우아하게 틀어 올린 채 몸매가 멋지게 드러나는 선홍빛 드레스를 입은 옥망 여사의 모습은 화면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고속버스, 택시, 고속도로 휴게소는 물론이고 젊은 층 사이에서도 옥망 여사가 부른 트로트 메들리의 인기는 전국적으로 뜨거웠다. 첫 번째 팬미팅이 부산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접한 그 날 나는 부산으로 가는 고속버스 티켓을 끊었다.
부산으로 떠나는 날, 나는 크로스백에 모자와 칫솔만 챙겨 집을 나섰다. 오전 열한 시에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버스에 올라탔다.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이 버스 안에 앉아있었다. 운전석 머리 위에 티비 모니터가 걸려 있어 가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버스 기사의 취향에 따라 티비에서는 뉴스만 주구장창 흘러나왔다.
……또 그 소식이었다. 몇 주 전부터 심심찮게 뉴스, 전자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이슈로 제주도 앞바다에 인어가 출몰한다는 이야기였다. 제주도 주민들로부터 인어를 봤다고 하는 신고가 한 두 건이 아니라 수십여 건이 넘어가고 있는 상태로 현재 해양경찰에서 바다를 수색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티비 화면에는 여기자가 직접 제주도로 내려가 현장 취재를 하는 모습이 나왔다. 작은 항구에 서 있는 어부들에게 다가가 여기자가 질문을 던진다.
“안녕하세요. VVS에서 나온 김은영 기자라고 합니다. 혹시 인어를 직접 보셨나요?”
두 명의 젊은 어부는 서로 형제지간인 듯했다. 마이크 앞에 서 있는 몸집이 큰 어부가 여기자의 질문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몸에 두꺼운 털옷을 두르고 찬바람에 양볼이 빨갛게 얼어 있었다. 나는 자세히 화면을 응시했다. ……어디서 본 듯한 그. 면접남. 그는 화면발이 훨씬 낫긴 한 것 같았다. 턱 밑에 거뭇거뭇한 수염을 기르고는 겨울 햇살에 얼굴이 검붉게 타 있었다. ……그는 바위처럼 단단하고 건강하게 보였다. 면접남 뒤에서 조용히 배경처럼 서 있는 남자애. 보이지 않는 눈으로 깨끗하게 손질된 생선을 줄에 걸어 바닷바람에 말리고 있었다. ……형제는 그렇게 서로의 빈 자리에 돌아와 있었다.
여기자가 마이크를 어부의 코앞까지 들이밀며 흥분한 목소리로 재차 질문을 던진다.
“인어 모습이 실제로 어떻든가요? 네?”
버스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 숨을 죽인다.
“실제 우리가 생각하는 그 모습이 맞습니까?”
버스 안에서 졸고 있는 한두 명의 사람을 빼고는 모두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어…… 여…….”
기사님이 티비 화면의 볼륨을 높인다.
“여…… 여자애처럼?”
곧바로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의 야유가 터져나온다.
“야야야, 티비 꺼.”
“됐다고 해라, 마.”
“왜들 저렇게 난리야?”
“몰랐어?”
“뭐?”
“인어의 눈물…….”
“그게 왜?”
“그걸 먹으면.”
“……먹으면?”
“추녀가 절세미녀가 된다는 군. 살도 빠지고 새가슴도 자라나고…… 피부도 아주 그냥…….”
나는 티비에서 슬그머니 눈을 돌렸다. 발육기도 아닌데 요즘 들어 계속 가슴 쪽 통증이 느껴져 신경이 쓰이곤 했었다. ……나는 물끄러미 가슴 쪽을 내려다보았다.
두 시간 반을 달려 휴게실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찬바람이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모자를 뒤집어쓰고 음식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눈에 바로 띄는 곳이 빨간 간판의 감자를 조리해서 파는 가게였고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그곳 가게 앞 대기 줄에 들어가 차례를 기다려 감자튀김 두 봉지와 생수 한 통을 샀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음식점 가까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나무 테이블에 앉았다. 감자튀김 위에 케찹을 듬뿍 뿌린 후 감자를 하나씩 입에 넣었다. 손이 얼얼해질 정도로 찬바람이 살결을 파고들었지만, 버스 안에 냄새를 피우는 게 싫어 밖에서 다 먹고 버스로 돌아갈 참이었다. 다리를 달달 떨며 감자튀김을 먹으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러다 어느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몇 년은 빨지도 않고 껴입고 다녔을 것 같은 검은색 점퍼에 기름이 주르륵 흘러내릴 것 같은 떡진 머리…… 구정물이 말라붙어 있는 듯한 구릿빛 얼굴의 노인이었다. 설마 내 쪽으로 오겠어, 하며 안심하고 있는데 노인은 정확히 내 바로 맞은편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어 있을 것 같은 노인이 감자튀김을 먹는 나를 멀거니 바라본다.
“좀…… 드실래요?”
노인은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봉지를 말없이 낚아채 감자를 입에 털어 넣는다.
“다 드셔도 돼요.”
노인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물통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 이것도.”
나는 물통도 노인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빼앗아 먹기라도 할까 봐 그런가…… 노인은 먹는 중에 계속 내 얼굴을 구석구석 뜯어본다. 나는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고속버스를 찾는 시늉을 하며 이리저리 눈을 굴린다. 감자튀김 두 봉지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간에 기별도 안 간다는 듯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노인네…… 천천히 노인이 입을 연다.
“어디로 가시나?”
“부산이요.”
“아…….”
“어디로 가세요?”
“글쎄.”
“…….”
“나는 사람을 찾고 있어.”
“네…….”
“당신만한 나이 때야.”
나는 그제야 노인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 이유를 짐작했다.
“네…….”
“여긴 나 말고도 많아. 그 사람을 찾는 사람이.”
“…….”
점점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손이 너무 시려왔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나는 노인의 말을 더 듣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람을 맞고 앉아 있는 노인의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나는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노인에게 마지막으로 괜히 한마디를 더 건넸다.
“왜 그 사람을 찾으세요?”
“그 사람을 만나면 다시…….”
“다시……?”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하더군.”
나는 눈을 들어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노인의 실지렁이 같은 가느다란 눈이 빛나고 있었다. 노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사람 주변엔 꽃들이 피고…….”
“……고양이들이 들끓죠.”
씨익 노인이 웃었다. 누런 앞니에 케찹이 잔뜩 묻어 있다.
“당신도…… 알지?”
“……그런 것 같네요.”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갸르릉거린다. 오랫동안 거리를 쏘다녔던지 털이 더럽게 얼룩져 있었다. 그러나 눈빛은 야생미가 넘쳐 흐르고, 홀쭉하고 긴 몸은 표범처럼 우아하고 날쌔보였다. ……돼냥이는 이제 러시안블루가 되어 있었다. 온몸의 털에서 새어 나오는 푸르스름한 빛. 나는 빛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착한 곳은 휴게소 화장실. 화장실 입구에서부터 지릿내가 진동한다. 바닥에는 가래침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고 담배꽁초와 쓰레기들이 나뒹군다. 천천히 화장실 안으로 들어선다. 들어서자마자 진한 녹음 냄새가 훅 밀려온다. 날씬하게 솟아 있는 고무나무와 관음죽. 발 디딜 틈도 없을 만큼 바닥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는 분홍빛의 야생화들, 세면대 거울 가장자리를 기어 올라가고 있는 플라타너스…… 플라스틱 컵에 물을 받아 작은 연못을 만들고는 그 위에 종이 돛단배를 띄어 놓았다. 돛단배 위에 햇살이 내려앉아 있는 것을 보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화장실 벽마다 담쟁이들이 기어오르고 담쟁이 눈치를 살피느라 볼일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마지막 칸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궜다.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았다. 누군가 이쪽으로 걸어온다. ……펌프질하듯 심장이 뛰어오른다. 똑똑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