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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Aug 28. 2024

옥탑방 : 나는 새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았다

퇴직금을 받고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전세로 집을 얻기 위해 부동산을 들락거렸다. 그러나 전세 대신 서울 변두리에 있는 옥탑방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옥탑방은 전혀 생각도 해본 적 없는 리스트였다. 그러나 부동산 직원의 전화 통화를 엿듣는 중에 직원의 말에 나 스스로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아 글쎄. 제가 지붕이 뚫려 있다고 설명했죠. 궁금해하는 분은 있긴 했는데 직접 가서 구경하겠다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러게…… 별 수 없죠. 기다리는 수밖에.” 


나는 지붕이 없다는 말에 혹해서 통화를 끝낸 직원에게 지붕이 없는 그 집을 구경해볼 수 있겠냐고 물었다. 부동산 직원은 냉큼 내 말을 물고는 집이 비었으니 바로 모시겠다며 밖으로 나를 데리고 나갔다. 


나는 직원을 따라 삭막한 동네를 걸었다. 젊은 사람들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고 상가 건물은 비어 있는 곳이 많았다. 헬스장, 영화관 같은 문화시설은 눈을 부릅뜨고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오래된 빌라, 주택, 작은 가게들이 많았고 사람이나 차들로 북적대는 곳도 없었다. 이십 여분을 걸어 사 층짜리 낡은 건물 앞에 도착했다. 일 층과 이 층에는 고깃집이 장사를 하고 삼 층과 사 층에는 가정집이 들어와 있는데 사 층에 주인아주머니가 살고 있다고 했다. 


주인아주머니는 내가 조용하고 별문제 없이 꼬박꼬박 월세를 낼 것 같았는지 나를 보자마자 맘에 들어 했다. 주인아주머니는 여자 혼자인 나를 배려해 안전이 걱정되면 사 층 옥상 문 안쪽에 철제문을 이중으로 달아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주인아주머니를 따라 옥상으로 걸어 올라갔다. 옥상에는 빨간 벽돌로 지어진 옥탑방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옥탑방 안으로 들어가니 정말 지붕이 없었다. 위쪽 천장은 철골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고 철골 사이사이 통유리를 덧대어 붙인 것이 다였다. 주인아주머니는, 이 옥탑방은 미국항공우주국 나사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이 고등학생 시절 밤하늘을 보기 위해 직접 설계해서 만든 것이라고 했다. 


“나사라니…….”

“이래 좋은 명당이라우.”

“좋으시겠어요.” 

“무얼.”

“아드님이 별을 많이 봐서 나사 직원이 됐나봐요.”

“아니지…….”

“그럼?”

“별보다 더 좋은 게 있을지도…….”

“더 좋은 거?”

“한번 살아봐요.” 


집이 아닌 집.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동선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천장조차 없는 이곳에 그래도 달빛 하나는 가득 들어찰 것 같았다. 하늘과 달, 별들이 주인처럼 머물다 갈 것 같은 이곳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보증금 삼 백에 한 달에 삼십 오만 원 월세를 내기로 하고 바로 주인아주머니와 계약을 했다. 계약을 하고 다음 날 짐을 옮겼다. 나는 거실 겸 식당 겸 서재로 쓰는 공간 안에 침대를 놓는 대신 나무로 된 큰 욕조 하나를 들였다.  


이삿짐을 옮긴 그날 나의 옥탑방에 첫 손님이 찾아왔다. 첫눈…… 내 누추한 집에 하얗게 떨어져 내리는 설탕 가루가 그렇게 달콤할 수 없었다. 나는 기분이 좀 좋아졌다. 털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갖고 있는 옷 중에 가장 두꺼운 점퍼를 꺼내 입고 나와서는 일 층 고깃집에 들어가 삼겹살 삼 인분을 샀다. 다시 옥상으로 올라와 버너에 프라이팬을 올려놓고 삼겹살을 구웠다. 눈이 내려서 더 조용해진 동네를 감상하며 먹는 고기 맛은 정말 환상 그 자체였다.  


저녁이 될수록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아 나는 이불을 들고나와 몸에 둘렀다. 그렇게 늦은 밤까지 옥상에서 애벌레처럼 몸을 말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십여 년이 넘도록 별을 본 적이 없었다. 혹여나 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밤하늘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지만, 서울 하늘에서 맨눈으로 별이 보일 리가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멀리서 희미한 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나 여기 있어요, 하는 듯한 모습에 나도 폰 후레쉬를 켜서 흔들었다. 불현듯 어디 숨어 있었는지 수십 개의 불빛들이 공중에 나타나 흔들거렸다.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옥탑방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인 것 같았다. 옥탑방 말고도 고시원 건물의 어느 좁은 창문 틈 사이에서, 저 멀리 빌라 발코니에서, 교회 탑 근처에서도 희미한 불빛들이 새어 나왔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폰의 후레쉬거나 담뱃불이거나 연탄불이거나 무선 스피커의 전등빛이거나 라이터거나…… 어떤 것인지 확인할 길은 없었다. 나약하고 힘없는, 하늘에 닿지도 않는 그저 희미하고 부옇게 어른거리는 불빛들…… 낮 동안 숨어 있던 빛들은 늦은 밤이 돼서야 자신의 정체를 알리며 비밀스레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었다. 어두움이 짙어질수록 그것은 더 분명해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죽지 않았음을 알리는 빛.

나는 이불을 쥐어 잡고 빛들의 움직임을 감상했다. 주인아주머니의 말대로 이곳은 명당이 맞았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들은 그들의 손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새벽녘……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내렸다. 마지막 남은 빛 하나까지 꺼지고 난 후 나는 옥탑방으로 돌아와 새 욕조에 뜨거운 물을 가득 받았다. 옥탑방 밖과 안의 온도차가 그리 나지 않은 듯했다. 숨을 쉴 때마다 입 밖으로 하얀 김이 새어 나왔다. 다행스럽게도 욕조 속 물은 몸의 비늘이 다 벗겨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뜨거웠다. 빗소리가 들렸다. 내가 좋아하는 빗소리가…… 회사에 다니지 않아도 집이 없어도 연인이 없어도 나는 괜찮았다. 달빛이 톡톡 문을 두드렸다. 그분과 욕조 속에서 수줍게 첫 대면식을 치르고는 나는 드디어 볼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영화. 십사 층 사무실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달빛이 들려주는 삼십사 년간의 꿈…… 너무 늦지는 않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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