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밤 11시.
그녀는 쓰레기장에 놓여 있던 검은 비닐봉지를 양쪽 어깨에 메고 천천히 자신의 기숙방으로 걸어 올라가고 있다. 나는 면학관 야간 자습실에서 잠시 나와 복도 창문에 서서 그녀의 걸음을 눈으로 좇아간다. 힘겹게 걸음을 옮기고 있는 그녀는 바로 수남샘. 검은 비늘 봉지에 담긴 것은 바로 몇 시간 전에 학생들의 가방 속에서 압수된 것들이다.
일요일 저녁. 7시. 스무 명 남짓의 학생들이 정문 앞에 죄인처럼 서 있는 이유는 모두 가방 속에 기숙사 금지 물품들을 들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선도부의 기습공격에 그들은 집에서 고이 모셔왔던 소중한 물건들을 모두 반납할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선도부의 물품 검사가 바로 오늘일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유가, 사마귀, 동성이 역시 그들 중에 섞여 있었다. 물론 나도.
3학년 선도부 부장 유환장. 환장 선배의 가느다랗고 날 선 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치악고에 존재하지 않는다. 환장 선배가 유가 앞에 서서 긴 숨을 토해낸다.
“너…….”
“네…….”
“뭐냐 이거…….”
“죄송합니다.”
유가의 가방 속에 나온 것은 컵라면이었다. 컵라면은 기숙사 변기를 막히게 할 뿐만 아니라 라면 냄새가 기숙사 안에 너무 나서 학생들에게는 식욕 자극으로 인한 집중력 저하로 금지 음식이 되었다. 유가의 책가방 속에서 컵라면을 꺼내는 환장 선배의 손이 멈추지 않는다. 짜장범벅, 새우탕, 열라면, 참깨라면, 신라면, 튀김우동, 육개장, 컵누들, 비빔면, 왕뚜껑, 너구리……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모두 털어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끝도 없이 나오는 컵라면. 유가의 한 달 용돈의 반이 그렇게 먼지처럼 날아가버렸다.
환장 선배가 사마귀의 가방 속을 뒤적거린다. 사마귀 가방 안에서 나온 것은 다름 아닌 에그 마스터. 일 년에 한 명 정도 잡힌다는…… 소형 조리 기구를 기숙사에 몰래 가져와 실제로 조리를 해서 먹는 인간이 있다는 말은 소문으로 들었는데 그 한 명이 사마귀가 될 줄은 몰랐다. 정말 실망이 아닐 수 없었다.
동성이 앞에서 멈춰 선 환장 선배. 선배가 동성이 가방 안에서 튀김만두를 꺼내 올린다. 냉동식품을 혀로 녹여 먹는 동성이의 특이 식성을 환장 선배는 알리 없었다.
“정수기 물로 튀겨서 먹으려고?”
“아니, 꼭…… 그건 아니고요.”
“그럼?”
“그냥 얘가 저를…… 그러니까 제 가방 안에 그냥 따라 들어 온 거예요.”
“너네 집에서는 튀김만두가 애완견이지?”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지…… 동성이를 보며 나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드디어 환장 선배가 내 앞으로 걸어왔다.
“양마리.”
“네.”
내 책가방을 뒤지던 선배가 깊은 인내의 경지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텀블러처럼 보일 수 있도록 구긴 종이를 넣어 부풀리고 겉에 수건으로 감싼 기가막힌 술수를 부렸는데도 선배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너 대체…….”
“…….”
나는 얼른 눈을 내리깐다.
“참기름은 뭐냐?”
“…….”
“말 안해?”
“그냥. 향이 좋잖아요. 향이.”
“너 외출할 때 몸에 참기름 바르냐?”
그렇게 선도부에게 모두 압수당한 것들은 검은 비닐봉지 안에 담겨져 학교 쓰레기장으로 옮겨진다.
수남샘이 왜 압수된 그것들을 자신의 기숙방으로 가져가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너희가 홍보를 좀 해줬으면 해서.”
사마귀, 나, 동성, 유가 모두 상담실로 불려간다. 수남샘에게 우리가 상담실 홍보요원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모두 약간 당황한다. 전에 집단상담을 하고 나서 우리가 쓴 후기가 수남샘은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았다. 전 교실을 돌아다니며 뒤쪽 게시판에 상담실 홍보지를 붙이는 게 다였지만 쉬는 시간을 모두 반납해야 할 상황이었기에 딱히 내키지는 않았다.
“내일 2시에 오면 돼요. 홍보지는 내가 프린트해 놓겠어요.”
상담실을 나오며 유가가 한마디 한다.
“수남샘 말은 듣는 게 좋을 거야.”
“왜?”
“수남샘은 사람이 아니거든.”
나는 유가의 말을 듣고 웃고만 있었다.
“진짜야. 너 수남샘 주머니에 사는 가나슈 괴물 얘기 못들었어?”
“가나슈 괴물……?”
“너 가나슈는 먹어봤지?”
“그거 안 먹어본 사람이 학교에 있겠니?”
상담실 마스코트 가나슈. 상담실엔 늘 가나슈가 쌓여 있고 수남샘 주머니에도 항상 가나슈가 넘쳐난다. 아이들을 복도에서 만날 때마다 가나슈를 나눠주는 가나슈 천사 수남샘. 가나슈에는 항상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다. According to your faith let it be to you.
“너희 시중에 파는 가나슈 중에 그런 모양과 맛을 내는 거 봤어?”
“아니.”
“수남샘이 직접 만든 거야.”
“근데 그게 왜?”
“왜 수고스럽게 직접 만든 걸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걸까? 그냥 마트에서 사서 줘도 되는데 구지…… 구지 말이야…… 뭔가 찜찜하지 않아? 난 한 번도 먹은 적은 없지만.”
동성이 듣고 있다가 심각해진다.
“설마 죽지는 않겠지.”
“저기 수남샘이다!”
멀리서 체육관 앞을 지나가고 있는 수남샘이 보였다. 때마침 단체 체육 시간을 마친 오십 명 남짓 되는 학생들이 체육관을 빠져나온다. 유가가 내게 말한다.
“양마리.”
“응?”
“잘 봐. 수남샘 주머니.”
“주머니?”
학생들이 수남샘에게 달려든다. 수남샘은 웃으며 기다렸다는 듯이 주머니 속에서 가나슈를 꺼내 학생들에게 건넨다. 어떤 학생은 대여섯 개씩 받아간다. 겨우 가나슈 스무 개 정도가 들어갈 만한 작은 주머니 속에서 모든 학생들이 충분히 가져가고도 남을 만큼 가나슈가 쏟아져나온다. 가나슈는 수남샘의 주머니 속에서 아니면 수남샘의 손바닥 안에서 끊임없이 솟아나오는 것 같았다.
“내 말이 맞지? 수남샘 사람 아니야.”
“뭐, 그냥…… 주머니에 뭐 달린 거 아닐까? 바지 밑단까지 막 붙어가지고 줄줄이 길게 있잖아 그런 거.”
“정말 그렇게 생각해?”
유가는 아이패드를 꺼내 내게 건넨다. 아이패드에는 치악고 설립년도인 1920년도부터 전해 내려온 졸업앨범이 저장되어 있었다.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앨범 속의 한 여인이 눈에 띄었다. 수남샘이었다. 긴 세월 동안 이름과 머리 스타일만 달라졌을 뿐 얼굴은 수남샘이 분명했다.
“수남샘이 왜 학교에서 혼자 다닐까? 선생님들은 수남샘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거라고.”
그러고 보니 이제껏 수남샘이 다른 선생님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아, 딱 한번. 언젠가 말룡샘이 수남샘에게 수리꽃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을 때 수남샘은 한사코 그것을 거절했었다. 유가가 말을 잇는다.
“수남샘이 사람이 아니라는 건 놀라운 일도 아니야. 그것보다 더 놀랄 만한 게 있지. 스템프. 내가 이 학교에 입학한 이유. 스템프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새기고 그것을 품고 있기만 하면 그대로 이뤄져. 다 되는 거라고. 그냥 다 이뤄지는 거라고!”
사마귀는 그런 유가를 걱정스러운 듯 바라본다.
“유가. 너 적당히 해. 나도 한때 스템프에 파고들었다가 정신이 너무 피폐해지는 것 같아서 포기했어. 그런 게 있다면 사람들은 아마 괴물이 될 거야. 그거 가지려고 전쟁이 나겠지.”
“왜. 그냥 한번 보고 싶다는 것 뿐이야.”
유가는 우리에게 자신을 좀 도와달라며 이번 기회에 제대로 수남샘을 알아보고 싶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수남샘을 뒷조사해오고 있었다고 자신은 반드시 단 한 번이라도 스템프를 볼 작정이라고 했다. 발동이 제대로 걸린 듯한 유가, 유가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동성이도 수남샘이 만든 가나슈의 성분이 무엇인지 알기 전까지는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다고 하고 나 역시 그녀가 야밤에 쓰레기장에 버려진 그 많은 간식을 챙겨가는 이유가 궁금했다.
“유가 그래서 너 어떻게 할 건데? 수남샘 인터뷰라도 할 거야?”
“정면승부. 2시에 가자.”
“어디?”
“수남샘 기숙방. 수남샘이 2시에 만나자고 했으니 우리는 아무 잘못이 없는 거라고.”
새벽 2시.
우리는 수남샘 기숙방에 모였다. 어쨌든 2시긴 2시였으니까……. 수남샘 기숙방 301호에 불이 켜져 있었다. 그러나 유가는 새벽 2시에 감히 수남샘의 방문을 진짜 두드릴 용기는 없어 보였다. 우리 중 그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서로 눈치만 보다가 문 앞에서 십 분을 서성인다. 결국 포기하고 돌아서는 찰나, 빼꼼히 문이 열린다.
“벌써 가게?”
문을 열고 나온 수남샘은 손에 국자를 들고 서 있었다. 열기 때문인지 수남샘의 볼이 발그레했다. 유가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 2시라서요 선생님.”
“십 분 늦었거든.”
우리는 수남샘 기숙방 안으로 들어섰다. 거실이라고 할 것도 없는 공간에는 겨우 테이블 하나와 책장, 냉장고가 전부였다. 수남샘의 기숙방은 가정집처럼 포근하고 아늑했다. 집 안 가득 베여 있는 달달한 향에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같았다.
달콤한 향은 거실 구석에서 솟아나고 있었는데 세숫대야만한 큰 냄비에 무언가가 끓고 있었다. 가나슈였다. 냄비 옆에 유가의 컵라면, 동성이의 튀김 만두…… 그리고 내 참기름이 보였다. 정문 앞에서 압수된 쓰레기장에 버려지는 모든 먹을 수 있는 재료들은 수남샘만의 비법으로 가나슈로 만들어지고 있던 거였다. 향에 취한 나는 황홀한 듯 끓고 있는 가나슈를 바라본다.
“수남샘이 만든 세상에는 없는 맛 가나슈…… 수남샘, 근데 하필 왜 가나슈에요?”
“약은 달아야 먹으니까.”
“약? 누가 먹는 거에요?”
“꿈이 없는 사람들.”
수남샘이 뜨거운 가나슈를 스텐트레이 위로 흘려보낸다. 가나슈가 식기 전에 수남샘은 스템프로 글씨를 새겨넣는다. According to your faith……. 스템프는 자세히 보니 안쪽 롤에 알파벳이 박혀 있었는데 롤을 돌리면 어떤 글씨든지 새길 수 있었다.
……유가가 말한 스템프가 저것인 것 같았다. 그것은 이 땅의 물건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빤히 스템프를 보고 있던 유가가 스템프를 한 번 만져봐도 되겠냐고 물었다. 수남샘은 선뜻 유가에게 그것을 건네주었다.
“이런 건 처음봐요.”
유가는 스템프를 보며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우리도 역시 스템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스템프의 겉면은 금빛이었지만 그 안에 붉은색의 불꽃이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가장 안쪽에는 붉은색의 불꽃보다 더 뜨거운 파란빛이 빛나고 있었다. 이 땅의 어떤 단어로도 이름 붙일 수 없는 색이었다.
“아름다울수록 위험하죠…….”
“수남샘, 모든 게 가능하다는 건 어떤 기분이죠? 대체 그게 무슨 느낌인가요? 네? 수남샘?”
수남샘은 유가의 손에 있던 스템프를 도로 가져가 글씨 새기기를 계속한다.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문장. 수도 없이 먹어서 우리 몸속에 저장되어 있는 글씨. According to your faith let it be to you.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고 귀에 들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중요한 거?”
“그건 너의 마음 안에 있어.”
“……마음.”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이룬다고 좋은 건 아니야. 대가 없이 주어지는 선물은 그것 자체로 재앙일 수 있으니까. 작은 믿음으로 행했던 너의 행동…… 그 초라하고 눈물겨운 행동이 현실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모든 것을 가진다 해도 우린 영원히 가난한 삶을 살게 될거야.”
사마귀가 손으로 냉장고 쪽을 가리킨다.
냉장고 문에 뭔가가 수도 없이 붙어 있다.
“수남샘…… 이런 취향인지 몰랐네요.”
“그랬구나. 나 그런 취양이었어.”
냉장고 문에 잔뜩 붙어 있는 BTS 정국…….
“너무 연하…….”
우리는 원형 테이블에 앉았다. 수남샘이 갓 만들어진 따끈한 가나슈와 홍자 다섯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달달한 향이 피어오르는 좁은 공간 속에서 우리 다섯 명의 무릎은 서로 닿을 것 같았다. ……집안 어딘가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테이블 앞 천장까지 높이 솟아 있는 책장에는 책 대신 수백 개의 작은 유리병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는데 그곳에서 새어나오는 빛이었다. 빛이 나는 유리병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이름,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심영숙 자연식품 연구원, 최소라 베이커리 사장, 김유진 프로그래머, 박성중 소방관, 오혜정 유치원 선생님, 박혜준 기업가, 양재리 교수, 서영덕 식당 사장, 박에스더 외교관, 하영민 펀드매니져, 유승원 댄서, 김범준 가수, 이인정 치과 의사, 이주민 요리사, 김서진 시나리오 작가…….
치악고 전교생의 이름. 아래층은 1학년, 중간층은 2학년, 위층은 3학년 학생들의 이름이 모두 유리병 속에 들어 있었다. 동성이 유리병을 보며 물었다.
“이름 밑에 붙어 있는 건 뭔가요?”
“그들이 품고 있는 꿈.”
“……보석 같아요.”
“예쁘니? 내 취미생활이야.”
수남샘은 꿈 수집가였다. 어떤 유리병은 장밋빛으로 어떤 유리병은 밝은 산호빛으로 어떤 유리병은 토마토빛으로 어떤 유리병은 연분홍빛으로 어떤 유리병은 암초록빛으로 어떤 유리병은 샛노오란빛으로…… 그렇게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유리병 중에는 아무런 빛을 내지 않는 유리병도 있었는데 3학년은 없고 1학년에 두 개. 이학년에 4개였다. 2학년 유리병은 유가, 나, 사마귀, 동성이의 유리병이었다.
수남샘이 만든 약을 먹어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였다. 아무런 색도 없이 비어 있는 우리들의 유리병을 보며 동성이와 유가는 입을 다물었다. 사마귀와 나도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중학생 때는 종이접기 박사님이 되는 것. 초등학생 때는 쌀가게 아줌마. 유치원 때는 분홍색 크레파스만 쓰는 남자애와 결혼하는 것. 지금은…… 잘 모르겠다. 꿈이 뭔지. 나는 머뭇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꿈이 없다고 이상한 건 아니잖아요.”
“원래 시간이 걸리는 거니까.”
“언제가 저도…….”
“꿈은 태어나니까. 생명처럼 오래 품고 있으면 언젠가 스스로 태어나니까.”
꿈……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이 순간 내가 원하는 것은 네스티와의 내기에서 이기는 것이다. 지금으로써는 그것을 가장 원하는 것 같다.
“수남샘. 전 꼭 이기고 싶은 내기가 있어요.”
수남샘이 가나슈 하나를 건네주었다. 가나슈를 입에 넣는다. 아릿하고 시그럽고 담백하고 달달한 맛에…… 나는 지그시 눈을 감는다.
……이틀 뒤 수남샘 기숙방에 도난사건이 발생했고 스템프가 없어졌다는 소문이 학교에 돌아다녔다. 누군가 우리가 훔쳤다는 말을 흘리고 다녔고 며칠 동안 상담실은 굳게 잠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