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축제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학교 축제 때 신입생들의 동아리 가입이 절정에 달한다. 가장 인기가 많고 많은 부원을 가진 동아리 회장들은 학교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 행사, 대회…… 모든 것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우선권을 가지게 된다. 선생님으로부터의 관심, 동급생과 선후배들의 칭송, 넘쳐나는 카톡친구와 카톡방 초대, 생일날 선물 공세…… 를 받을 수 있는 핵인싸가 되는 첫 번째 관문이 바로 인기 동아리에 가입하고 그곳에서 중요 인물이 되는 것이다. 학교 축제 때만큼 자신을 붙태우는 시간은 없다. 동아리 회장들과 부원들은 한 사람이라도 더 흡수하기 위해 눈에 핏발을 세운다.
영화, 켈리그라피, 축구, 베이킹, 디자인, 농구, 정치, 케이팝…… 복도마다 공간을 나눠 그곳에 자신들의 동아리를 소개하며 전시장처럼 꾸며놓았다.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에 갈 수 없을 정도로 복도는 학생들로 넘쳐난다. 나도 복도로 나와 넋을 놓고 구경한다. 2학년 5반 복도 앞에서 유가와 동성이가 나를 보고 다가온다.
심각한 표정의 유가.
“동아리 구경이나 할 때가 아니라고. ……털렸어.”
“뭐가?”
“불닭삶은면. 그게…… 유에스비가 없어졌어. 거기 말룡샘 유튜브 채널 주소랑 영상, 캡쳐된 사진들도 다 들어가 있어. 어떡해?”
말룡샘의 영상이 노출되는 날에는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카톡방,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모든 곳에 그것이 떠돌아다닐 것이 분명했다. 유가가 조심스레 입을 연다.
“의심가는 사람이 있기는 한데”
“누구?”
“도조. 어제 도조 선배가 내 책상에 앉아 있었다는 말을 들었어.”
3학년 도조 선배. 도조 선배는 사마귀의 친형이다.
“사마귀도 알아?”
“모르겠어. 사마귀는 요즘 생각이 많은 것 같던데.”
“왜?”
“학교 축제잖아.”
“1년 전에 벌연남 사망하고 아마 충격이 컸을 거야.”
벌연남은 벌레를 연구해서 남주자, 라는 목적으로 사마귀가 1년 전에 만든 동아리다. 부원 영입에 실패해 결국 벌연남은 사라지고 말았다. 동성이 역시 사마귀와 같은 경험을 갖고 있다. 학교 축제기간 동안 동아리 무소속자들은 새로운 동아리를 만들거나 아니면 인기가 많은 동아리에 흡수되거나 둘 중 하나의 운명을 선택해야 한다. 사마귀, 동성, 유가, 나…… 우리 모두 소속된 동아리가 없다.
“이제 어쩌지?”
“뭘 어쩌기는 최대한 막아봐야지.”
동영상의 유출을 막는 것이 급선무였다. 턱수염과 관련된 말룡샘의 과거를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는 여자는 드물 것이므로 만약 영상이 율리아샘에게 노출되는 날에는 이 내기의 끝이 어떻게 될 건지는 대충 가늠이 되었기에 그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 종일 사마귀를 만난 적이 없다. 복도에서도 식당에서도 편의점에서도 등나무에서도 사마귀를 본 적이 없다.
“근데 사마귀 어딨어?”
동성이 고개를 젓는다.
“몰라. 쉬는 시간마다 교실에 찾아갔는데 자리에 없어.”
유가가 입을 연다.
“난 알 것 같은데 사마귀가 매일 가는 곳. 사마귀 아지트.”
“거기가 어딘데?”
“납골당.”
우리는 숙소동 지하로 내려간다. 지하 1층, 지하 2층, 지하 3층…… 주위는 점점 어두워졌고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갈 때마다 차고 음산한 기운에 몸이 떨려왔다. 지하 5층까지 내려가 우리는 어느 문 앞에 이르렀는데 삼 미터는 넘어 보이는 높고 거대한 문 위에 문간판이 걸려 있었다. 죽은 동아리들의 납골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있는 소생실과 왼쪽에 있는 영안실 두 개의 방이 보였다. 동아리 주인이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소생에 대한 뜻이 없음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면 동아리를 화장한 후 납골당 안에 안치된다. 우리는 영안실 안으로 들어섰다. 수십 개의 영정 사진들이 영안실 가득 채워져 있었다. 사마귀와 비슷한 사진이 있는지 두리번거리며 안쪽으로 걸어갔다.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기이한 온갖 종류의 벌레와 새들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보라색 칫솔 모양의 다리를 가진 메뚜기, 하트표 눈동자를 가진 올빼미, 핑크색 파리, 파란 눈물을 흘리는 갈매기, 신발 모양의 발톱을 가진 까마귀, 노오란 귀가 달린 참새…… 선뜻 다가가기 어렵고 낯선…… 그러나 그들의 주인에게는 절대적인 애정과 관심을 받는 생명체들. 그들이 다시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어느 영정 사진 앞에 멈춰 섰다. 사마귀가 가느다란 두 앞 다리를 치켜들고 있는 사진이었다. 벌연남이었다. 그가 이곳에 안치되어 있었다. 왜 하필 사마귀에 대한 애정이냐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사마귀에 대한 거부감을 당신은 왜 그렇게 슬퍼하냐고…… 아무에게도 질문받아 본적 없는 벌연남. 그는 그렇게 차갑고 외롭게 누워 있었다.
어디선가 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문 앞에 마련된 빈소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동아리의 장례식이 치뤄지고 있었다. 상주는 모두 1학년이었고 사망한 동아리는 하철암기왕, 딥씬, 뽀피, 치악여지도, 평치안 5개였다.
하철암기왕. 지하철 역들을 모조리 외우는 것을 목표. 역마다 있는 맛집, 역사 유적지, 포토존 등을 조사하며 한 달에 한 번 탐방을 가는 등 부원들의 친목을 돈독히 한다는 장점이 있으나 매주 암기에 대한 무리한 요구와 그것에 미치지 못했을 경우 가차 없는 벌점 제도에 부담감을 느낀 부원들의 탈퇴가 늘어나 결국 사망.
딥씬. 셀카만 찍는 사진 동아리. 한 학기에 한 번 공모전, 전시회를 열며 학생들로 하여금 동아리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하였으나 잘생기고 이쁜 학생들만 동아리 임원으로 추천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미지 실추. 발전하는 카메라 앱, 필터 등으로 실제와 이미지의 심각한 차이를 보이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딥씬에서 뽑아내는 사진에 대한 신뢰성을 잃어버렸다는 평가. 결국 동아리 쇄신의 실패와 부원들의 사기저하로 사망.
뽀피. 뽀레버피터팬 줄여서 뽀피. 어린아이에 대한 특성을 조사하고 그 특성을 자신의 몸과 마음에 훈련해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의 모임. 그러나 아이에 대한 특성을 정의내리는 것 자체가 모호하고 실증적 검증의 어려움으로 형이상학적인 집단 토의로 변질. 행동력 없고 모임 때마다 의견 대립, 다툼이 빈번. 결국 부원들 내의 분열로 사망.
치악여지도. 면접 시 유동성 지능 테스트 실시, 동아리 가입 과정 자체가 까다롭다는 부정적 평가. 치악고 모든 곳을 지도화하기 위한 모임으로 배워야 하는 이론이 너무 많고 셀 수 없는 과제와 직접 뛰어다니면서 거리를 재고 계산하는 것이 심한 노동과 같다고 느끼며 회원들의 불평이 쏟아짐. 결국 부원들의 에너지 고갈로 사망.
평치안. 평생 치과 안가기 모임. 건강하게 치실질, 칫솔질하는 방법을 익히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전파, 전교생들의 건강한 치아를 위해 헌신하겠다며 만들어진 동아리. 뜻은 좋았지만 학생들이 쉽고 재밌게 접근하기 어렵고 주위의 평판에 힘들어하는 동아리 주인의 유리멘탈로 인해 주변 학생들은 평치안이 언제 태어났는지도 알지 못하고 사망.
빈소에 조문객은 단 한 명 사마귀 뿐이었다.
평치안이 입을 열었다.
“그들은 그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구조로 애초부터 그렇게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듣고 있던 뽀피가 고개를 젖는다.
“미안하지만 그들 탓이 아니에요. 실패한다 할지라도 위협을 기꺼이 감수하며 앞으로 발을 내딛는 사람이 없다는 게 우리가 이곳에 있는 이유입니다.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게, 그런 한 사람이 없다는 것에 우리는 슬퍼해야 하는 겁니다.”
뽀피가 사마귀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선배님. 말씀 좀 해보세요.”
“…….”
“선배님! 거대 동아리에 우리 모두 흡수되는 것 밖에는 우리에게 미래가 없는 건가요?”
“아마도.”
“정말 다른 길은 없나요? 우리 모두 저기 저 납골당이 우리의 운명인 건가요?”
“없을걸.”
“선배…….”
울고 있던 딥씬이 사마귀를 붙잡는다.
“그 한 사람이 선배가 될 수는 없는 건가요?”
“미안하지만 중간고사 기간에 다른 생각을 하기는 힘들어.”
잠시 정적이 감돈다. 딥씬이 결정을 내린 듯 무겁게 입을 연다.
“더는 이곳에서 희망을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먼저 떠나는 게 덜 힘들 것 같네요.”
평치안이 딥씬을 막아서지만 딥씬은 평치안을 내버리고 단호하게 접수대 쪽으로 가버린다. 사망신고서를 제출하는 딥씬. 기다렸다는 듯이 접수대 가름막 뒤에서 도조가 나타난다. 도조는 일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딥씬의 사진, 파일, 시간, 추억…… 모두 화장장에 쏟아붓는다. 화장장 안에 불길이 솟구친다. 누군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딥씬이 눈의 초점을 잃은 채 바닥에 주저앉는다.
사마귀는 담담한 얼굴로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벌연남의 사망신고서를 꺼낸다.
“미안해 얘들아. 동아리 존립 조건으로 최소 인원 3명을 채우지도 못하는 나의 현실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나는 내가 최소한의 것도 채울 수 없다는 것이 좀 슬프네. ……너희가 원하는 그 한 사람이 빨리 나타나길 바래.”
접수대로 걸어가는 사마귀 앞으로 동성이가 끼어든다.
“미안한데 내가 먼저 좀 실례할게. 저기 불량식품연구소 소생신청서를 제출합니다.”
불량식품연구소는 동성이가 1년 전에 만든 동아리다. 동성이는 학교축제 기간 동안 자신의 동아리를 소생시켜 볼 작정인 것 같았다. 소생신청서를 받아들고 도조가 미간을 일그러뜨린다. 동성이가 사마귀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사마귀. 내게 먹방을 권한 것은 너였다는 것을 기억해라.”
“…….”
“밖은 무서워서 나가지도 못하는 방구석 요괴가 내 영상을 보고는 뭔가를 시작해볼 마음을 먹게 되었어. 난 그 영상이 아니었다면 평생 그런 말은 들어볼 수도 없었을 거라고. 네가 그랬잖아. 새로운 시도를 해보라고, 다른 사람은 너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한번 들어보라고 말한 사람은 너였다는 걸…… 잊은 건 아니지?”
“…….”
“사마귀…….”
“…….”
“네가 언제 사람의 인정을 구해서 사마귀들의 친구가 되었냐?”
사마귀가 고개를 떨군다.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마귀. 도조가 그런 사마귀를 보며 한심한 듯 입을 열었다.
“사마귀, 네가 이런 애들이랑 쓸데없는 내기에 연루되었다는 것에 실망했다.”
“……형.”
“최소한의 인원을 갖추는 것이 왜 잘못되었다는 거지? 그 기준도 맞출 수 없는 너희의 무능력을 슬퍼하는 것이 왜 잘못된 건데?”
“…….”
“어서 사망신고서를 제출해!”
주춤거리는 사마귀에게 동성이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한다.
“네 말대로 네가 그 한 사람이 되지는 않을 테니까 걱정마. 근데 네가 버린 그 벌연남이 불쌍해서 어쩌냐. 나는 네가 더 걱정이 돼서 말이야…… 네 삶은 영원히 그렇게 반복될거야. 우리는 말야 언젠가는 반드시 우리의 못난 사랑을 세상 밖으로 꺼내게 될 테지만 너는 이곳에서 영원히 너의 죽은 벌연남의 추억과 함께 슬퍼하게 될거라고.”
천천히 사마귀가 들고 있던 사망신고서를 찢어버린다.
“미안해. 형.”
도조는 실망한 듯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는 교복 안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낸다. 유에스비! 유가의 유에스비! 도조 선배가 한 짓이 맞았다.
“후우…… 도저히 말 길을 못 알아먹는구나. 근데 어쩌냐. 너희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내가 그리 인내심이 많은 편이 아니라서…… 율리아샘도 알 건 알아야지. 너무 한쪽 정보만 편향되게 알고 있으면 그것만큼 억울한 게 어딨겠어.”
도조 선배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사람이니까. 사마귀, 동성, 유가, 나 모두 도조 선배의 손을 망연자실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다.
푸드득 푸드득.
순간이었다. 천장 위로 새와 벌레들이 수없이 쏟아져나왔다. 누군가 영안실에 갇혀 있던 그들을 풀어준 것이 틀림없었다. 그들의 힘찬 날갯짓 소리에 귀가 멀 것 같았다. 기이하고 낯선 생명체들……. 천장 가득 폭죽이 터진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빛깔을 뽐내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에 우리는 정신을 잃고 구경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모습에 겁먹은 도조는 손에 들고 있던 유에스비까지 내버리고 줄행랑을 쳤다.
“동성아…… 나 다시 살릴 수 있겠지?”
사마귀를 보며 동성이가 고개를 끄덕였고 사마귀는 자신이 찢은 사망신고서를 화장장 안에 던져버렸다. 장례식은 그렇게 불꽃 축제로 끝이 났다.
벌레와 새들 때문에 학교에는 비상이 걸렸는데 동물을 사랑하는 말룡샘은 그 누구보다도 앞장 서서 학교에 돌아다니는 벌레와 새들을 포획하기 위해 노력했다. 벌레들이 도서관에 들어와 책을 갉아먹지 않도록 말룡샘은 새벽녘까지 도서관 안팎에서 벌레약을 들고 돌아다녔고 율리아샘이 그것에 고마워하며 말룡샘에게 박카스 한 병을 건네주었다. 율리아샘의 달달한 눈빛을…… 드디어 우리는 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