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영 Sep 12. 2024

사물함 우체통

편의점을 다섯 바퀴째 돌고 있다. 캐셔 아주머니의 시선이 따갑다고 느끼는 건 그냥 내 생각일 뿐 내가 열 바퀴를 돌든 스무 바퀴를 돌든 폰 드라마 시청 중인 캐셔 아주머니는 나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일곱 바퀴를 돌고 나서야 겨우 캔디가 진열되어 있는 매대 쪽에 가서 멈춘다. 치악고 학생이면 안 먹어본 사람 없다는 바자캔디. 


피자, 치킨, 스파게티, 떡볶이, 순대, 라면…… 같은 외부 음식을 기숙사에 가져올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음식을 먹고 싶으면 일주일을 기다렸다가 주말에만 먹을 수 있다. 일주일은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인내력의 한계를 넘어 극한의 고통을 느낀다는 학생들을 위해 학교 영양사님께서 직접 고안해 낸 것으로 사탕에 온갖 종류의 음식 항료를 첨가해 만든 것이 바자캔디다. 

 

치악고 특산품이 되어 주변 학교에까지 팔려가는 상품으로 왕눈깔 사탕 크기로 인해 하루 종일 입안에 넣고 있어도 입속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아 사계절 내내 인기가 사그라들 날이 없다. 곱창맛, 돼지비계맛, 치즈닭갈비맛, 땡초김밥맛, 생선내장탕맛, 짬짜면맛…… 없는 게 없는 바자캔디. 나는 짬짜면맛 사탕 하나를 집어든다.      


다시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옮긴다. 캔디 진열대 옆 코너에 놓인 마지막 남은 방기옵을 집어든다. 방기옵. 치악한의원과 치악고 동아리 텐션핏의 콜라보 제품으로 먹기만 하면 배의 부글거림, 뱃속의 모든 소음들로 인한 육의 고통을 잠재울 수 있는 기적의 물건. 


정적이 가득한 교실 안에서 갑자기 멀쩡했던 아이가 의자를 드르륵 드르륵 책상 가까이 잡아끌거나 연습장을 벽에 던져버리거나 미친 듯이 박수를 치거나 교과서를 바닥으로 내리치는……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위 속의 위협적인 소리를 절대 옆에 있는 이에게 들리지 않게 하겠다는 한없이 이타적이고도 슬픈…… 강한 의지 때문이라는 것을 나 같은 사람은 잘 알고 있다. 방기옵은 위가 약한 자들에게는 구원의 손길이나 다름이 없다.      

……마지막으로 맞은 편 퍼퓸 코너로 다가간다. 침대랑베게 퍼퓸, 할머니 잠옷 퍼퓸, 책사랑 퍼퓸, 화분 가득 베란다 퍼퓸…… 집에서만 맡을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미니 향수로 주문 후 제작되는 방식인데 주문이 들어오면 직접 주문자의 집에 찾아가 향을 채취해 제품을 만들어낸다. 향을 맡는 순간 극도의 평정과 안락함을 느낄 수 있기에 시험 기간 불안을 감소시키는 최고의 약이다.


나는 방기옵과 화분 가득 베란다 퍼퓸, 짬짜면 사탕 하나를 들고 계산대로 걸어간다.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 주변을 돌아보니 계산대 바로 옆 테이블에 안선배와 네스티, 문예부 부원 서 너명이 앉아 있다. ……안선배의 손에도 짬짜면 맛 사탕이 들려 있었다. 어쩌다 안선배와 내가 눈이 마주쳤고 나는 얼른 시선을 피해버린다. 짬짜면 맛 사탕을 산다는 뜻은 둘 중의 하나다. 욕심쟁이. 아니면 선택 장애.      


“네스티. 이거 먹을래?”


안선배는 자기 손에 들려 있던 짬짜면 맛 바자캔디를 네스티에게 건넨다. 내가 계산대 앞에 서 있지만 실은 테이블 쪽에 온갖 신경을 쏟고 있다는 것을 안선배는 알고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이다. 안선배는 어떻게 하면 나의 마음을 힘들 게 만들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나는 무방비 상태로 심장에 가격을 당한 것 같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며 테이블을 지나쳐 걸어간다.    

  

선배를 알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전국 문예 공모전에 입상하게 된 선배의 글을 신문에서 우연히 읽었고 선배가 이곳 치악고 1학년 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차상을 입상한 선배의 글을 나는 장원을 받은 사람의 글보다 더 좋아했다. 나는 그것을 수백 번도 넘게 읽어서 지금은 그것을 시처럼 외우고 있다.  

    

‘……내가 나로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참기가 힘든 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거울을 보면 저편에 욕을 하며 저주하고 싶은 어느 괴물이 들어 있던 때였다. 낡고 더러운 책 한 권. 그 책이 나에게로 왔고 어느 문장에게 나는 읽혀졌다. 그 문장에게 내가 발견된 순간 나는 알았다. 나의 아픔은 사라졌음을. 어느 문장에게 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눈 속에서 나는 발견된다. 나의 아픔이 정확한 언어로 발견되면 치유는 일어난다. 너의 눈 속에 내가 온전히 담겨 있을 때 회복은 시작된다. 오늘도 나는 그런 문장에게 발견되기 위해 읽고 있는지 모른다. 혼돈, 절망, 수치, 모욕, 분노, 미움 그리고 사랑…… 모든 것들이 뒤섞여 있는 너를 나의 문장으로 읽어낼 수만 있다면. 너의 마음속 암 덩어리를 도려내며 부드러운 새살로 채우고 싶다. 문장 그것은 세상을 치유하는…….’     


내가 이전부터 어렴풋이 느껴왔고 알았던 것들을 선배가 대신 쓴 것 같았다. 아무도 나를 발견해준 적 없었던 중학교 3년 동안 내 옆에 있던 친구는 작고 낡은 책 뿐이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선배의 글 속에서 나는 발견되었음을 알았다.        


치악고에 입학한 후 문예부 면접에서 선배는 내게 한 가지를 물었다. 

“왜 문예부에 왔어?”

“선배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요. 저도 평소에 느꼈던 것들인데 그것을 글로 적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꼭 뵙고 싶었습니다. 선배가 치악고에 다닌다고 해서 찾아봤는데 기숙사 학교라 조금 망설였어요…… 그래도 오고 싶었어요. 꼭…… 가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니 왜 문예부에 왔냐고.” 

“선배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요. 저도 평소에…….”

“아니 그러니까 문예부에 왜 왔냐고.”

“선배 글을 읽은 적이 있다고요. 그래서 왔다고요!” 

왜 같은 질문을 세 번씩이나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똑같은 대답을 해버리고 인사도 없이 나와버렸다. 그런 나를 보며 안선배는 꽤 당황한 것 같았다. 면접을 끝내고 생각해보니 나는 글을 왜 쓰고 싶은지에 대한 대답을 한 게 아니었다. 내가 지금 이곳에 있는 이유는 다 안선배 너 때문이다, 너를 찾아 나는 이곳까지 왔다……는 소리를 한 거였다. 그러니까 고백을 한 거나 다름이 없던 거였다. 필터기도 없는 인간, 무의식을 그대로 방출하고 다니는 바보 양마리…… 한동안 내가 용서가 안 됐다. ……그리고 나는 문예부에 합격했다. 신입생 문예부 부원들의 축하 파티가 있던 날 네스티를 그곳에서 처음 보았다.      

그리고 그해 교내 백일장에 지원했고 내 작품은 본선까지 나가게 되었다. 내가 쓴 글은 집이 없는 네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다. 한 명은 놀이터에서 한 명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게 단칸방에서 한 명은 맥도날드 화장실 한 명은 시 속에서 살아가는 주인공들이었는데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알고도 그것을 보듬어주지 못해 결국 그들의 인연은 갈갈이 찢겨지고 만다. 그들 모두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은 영원히 살 수 있는 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결국 세상을 떠돌며 유랑하는 자들이 되고 만다. 일 년 전 나는 기숙사에 살면서 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 것 같다. 집은 물론 지금 살고 있는 기숙사도 내 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껍데기만 가둬두는 공간은 진짜 집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런 나의 상태를 소설로 각색해 쓴 우울하고 지루한 이야기가 본선까지 진출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나와 함께 본선에 오른 사람은 네스티였다. 네스티의 소설은 어느 여배우의 삶에 관한 이야기로 무대 위와 관객석, 그 중간의 대기실 세 공간에서 벌어지는 주인공 여배우의 의식 분열에 관한 이야기였다. 세 개의 공간에서 다른 삶을 살아내야 하는 여주인공의 삶이 너무 처참하고도 아름답게 그려졌다. 

본선의 승자는 결국 네스티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학생 심사위원들이 거의 모두다 네스티의 측근들이라는 소문이 나돌았고 당시 회장이었던 안선배가 대회의 공정성을 제기하며 재결승을 요청했다. 결국 다시 재결승을 하기로 결정되었는데 나는 자신이 없었다. 내가 심사위원이었어도 나는 네스티의 글에 손을 들었을 것이다. 두 번 세 번 겨룬다고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기권했고 네스티의 글이 치악고 백일장에서 장원이 되었다.        


……그 이후부터였다.      

그 이후부터 나를 보는 안선배의 표정이 갑자기 서늘해졌고 네스티와 친한 척을 하며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문예부에서 나를 봐도 못 본 척했고 내가 선배를 불러도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 안선배의 태도를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안선배로 인해 나의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큰 반역을 저지른 것처럼 나는 고개를 들고 문예부를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문예실에 들어서면 마음이 얼어붙는 것 같았고 아무것도 써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스스로 문예부를 탈퇴했다. 모든 것이 내 탓이라는 생각에 압도당해 공부 식사 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하나의 질문이 떠나지를 않았다. 선배가 변한 이유가 궁금하다는 것. 대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왜 그렇게 서늘해진 거냐고. 눈빛이 그게 뭐냐고. 나의 무엇이 선배를 그렇게 불편하게 만든 것이냐고. 나는 묻고 싶었지만 묻지 못했다. 그럴 용기는 내게 없었기 때문에. 어차피 어떤 대답을 듣는다고 해도 그 모든 대답은 나를 괴롭힐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도망쳤고 지금도 선배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다.      

네스티가 계산대 앞에 서 있는 내게 와서 말을 건넨다. 

“부탁이 있는데 말야. 이번 동아리 백일장에서 심사위원을 좀 해줄 수 있겠니?”

네스티의 손에 들린 짬짜면 사탕이 계속 신경이 쓰였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럴 수 없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네스티는 당연히 그럴 것 같다는 표정으로 돌아서서 안선배가 있는 테이블 쪽으로 가버렸다.      

나는 계산을 한 후 편의점을 나와 운동장 쪽으로 걸어갔다. 등나무 벤치에 앉아 있는 사마귀, 유가, 동성이 보였다. 그들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기숙방에 들어가 침대에 쓰러져서 하루종일 잠만 자고 싶은 심정이었다. 동성이 내 손에 들린 방기옵을 가리키며 묻는다. 

“이거 샀네. 좋아?” 

“그게 좀…… 부작용이 있더라고.”

“뭔데?”

“위로 나와.”

“위로? 위로 어떻게 나와?”

사마귀가 내 얼굴을 요리저리 살피며 묻는다. 

“너 얼굴이 왜 그래?”

“…….”

“그나저나 문예부는 사시사철 벚꽃축제라고 하던데 어쩌냐…… 이번에도 동아리 신입생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백일장으로 가른다고 하잖아. 마리 너 나가고 문예부는 대성황을 이루는 거 알지? 그게 다 문예부 부원들이 글을 잘 써서가 아니야. 안선배의 후광 덕분이라고. 모범생에 성격도 그 정도면 딱히 나쁘지 않은…….”

“너 안선배랑 말해봤어?”

“아니, 소문에 자기 동아리 후배들에게 끔찍하다고 하던데.”

“그거 다 거짓말이야!” 

나는 좀 버럭했다. 

“양마리…….”

“…….”

“넌 다른 사람 사랑만 도와주면 뭐하냐?”

운동장 울타리를 두르며 심겨진 벚꽃나무에 벚꽃 봉우리가 조금씩 연분홍빛으로 깨어나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제발…… 이번 벚꽃은 피지 말라고. 같이 그것을 보고 싶은 사람이 이 지구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제발 이번 벚꽃은 피지 말라고…….          


유튜브 오작교 작전 이후로 뚜렷한 대책도 없이 계속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말하기를 망설이는 것 같던 사마귀가 결국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있잖아. 다른 방법을 좀 생각해봤는데 3학년 1반 서원 선배 사물함…… 너희도 알지?”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한 번은 사물함 얘기가 나올 것 같았다. 하리보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동성이 묻는다. 

“서원 선배 사물함? 그게 뭐?”

“사물함 아니고 정확히 말하면 우체통이야.” 

“우체통?”

“현재는 물론이고 과거로도 배달 돼 ” 

“과거?” 

“과거 어느 시간이든 장소든 상관없이 배달되는 우체통.”      

현 교장 선생님 이기세의 딸 이기자가 그 사물함을 이용해 결혼에 성공했다는 전설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1996년 그때 당시 보건교사였던 이기자가 신입 영어교사 나무리를 좋아했고 나무리에게는 약혼 상대가 있었는데 교장의 개입으로 사물함을 이용해 과거 나무리에게 편지를 전달, 나무리가 약혼 상대와 헤어지고 이기자를 운명의 상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편지를 교장이 직접 썼다고 전해지는데 누구는 교장이 나무리에게 협박을 했다고 하지만 진짜 그렇게 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어쨌든 이기자와 나무리의 결혼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사물함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사물함에 편지를 넣으려는 학생들이 폭발했고 수업 시간은 물론 다른 학교 학생들도 소문을 듣고 치악고로 몰래 잠입해 들어와 사물함에 편지를 넣고 가는 사람이 생겨날 정도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물함 사용은 공식적으로 중단된 상태며 사물함에 편지를 넣는 것이 발각되는 날엔 생활기록부에 치명적이다. 그러나 사랑에 올인한 아이들은 생활기록부를 포기하고서라도 사물함에 편지를 붙이고야 만다. 슬프게도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져 주간 이말년에 실리는 경우는 손에 꼽히는 정도지만.     

“누가 배달하는데?”

“서원 선배.” 

“생활기록부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원 선배…… 그 선배 무서워서 편지 붙이는 걸 포기한다는 말도 있어.”  

치악고에 입학해 일 년이 넘도록 서원 선배의 얼굴이 본 적이 없다. 키가 이미터가 넘는다는 서원 선배의 얼굴을 제대로 정면에서 본 사람은 전교생 중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 중에 사물함에 편지를 넣어본 사람이 있는지 나는 좀 궁금했다.    

“너희말야 편지 붙여본 적 있어?”

사마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한다. 

“나…….” 

“누구한테?”

“있어. 아는 사람.” 

썩은 미소를 짓는 유가. 

“뻔하지 누구긴 누구겠어.” 

“누군데 누구?”

동성이 진짜 모르겠다는 듯이 유가에게 묻는다. 유가가 동성이를 째려본다.  

“야. 너 진짜 모르겠냐?”

그제야 동성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 미안. 아이유 누나가 뭐라고 하시든?”

볼이 발갛게 물드는 사마귀.      

아직 확실한 것은 없었다. 그것이 정말 사실인지 눈으로 확인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시험 삼아 편지를 붙이기로 했다. 


금요일, 2교시 쉬는 시간. 사마귀가 교실에 찾아와 내게 바나나 우유를 건넨다.  

“너 주는 거 아니고.”

“그럼?”

“서원 선배가 좀 무섭냐…… 뭔 일 있으면 그냥 들이밀어.” 

“바나나 우유로?”

“그 선배…… 밤새 배달하고 수업시간엔 거의 혼수상태라고 하더라. 잠 깨우는 제일 싫어하신다니까 제발 수면 시간은 방해가 되지 말게 해라.” 

“그럴게. 근데 왜 바나나 우윤데?”

“넌 편지 붙일 때 우표 안 붙이냐?”

“우표?”     

3교시 영어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나는 3학년 교실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3학년 1반 교실은 날파리 날아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정적 속에 잠겨 있었다. 수능을 일 년도 남겨두지 않은 3학년 선배들에게는 함부로 접근하는 것은 목숨을 내걸었다는 말과 같다. 나는 숨도 크게 쉬지 않는다. 교실 뒷문에 서서 1반 교실을 스캔한다. 서원 선배의 이름표가 붙은 사물함은 3학년 1반 창가 쪽 제일 밑바닥에 있었다. 교실 안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도 나를 신경쓰는 것 같지 않았지만 나는 슬리퍼도 바닥에 끌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고개를 푹 숙인 채 교실 안으로 걸어간다.  

“뭐야.” 

3학년 1반 반장 이중석. 중석 선배가 내 앞을 턱 가로막는다. 나는 하마터면 뒤로 나자빠질 뻔한다.  

“이게 누구야. 2학년 후배님이네.”

“저기…….”

“겁도 없이 말야. 누가 허락도 없이 3학년 교실에 들어오래…….”

“죄송합니…….”

“혹시 너도 서원이 사물함이냐?”

“그게 아니라…….” 

“서원. 일어나 네 사물함에 몰래 편지 넣는 자식이 있다고!” 

3학년 1반 선배들이 나를 불쌍하게 쳐다보았다. 누구도 이곳에서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음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왔다.      

느릿느릿…… 그것도 맨 앞줄에서 엎어져 자고 있던 서원 선배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다. 저분인가 보았다. 서원 선배. 칼단발에 이미터가 넘는 거대한 기럭지. 서원 선배가 내가 있는 교실 뒤편으로 걸어온다. 

“누가 나를 깨운 거야 대체…….”

다리가 달달 떨려왔다. ……서원 선배가 내 앞에 서 있다. 서원 선배의 왼쪽 뺨에 종이 조각이 붙어 있었다. 그 종이는 말할 때마다 서원 선배의 왼쪽 뺨에서 달랑달랑 흔들거렸다. 

“너냐?”

“…….”

“아무도 내 허락 없이는 이곳에 편지를 넣을 수 없다는 걸 몰라? 네 편지를 사람들 앞에서 낱낱이 다 읽어 줄거니까 잘 듣고 있어라…….” 

서원 선배가 내 손에 들린 편지를 낚아채려는 순간 나는 주머니 있던 바나나 우유를 얼른 건네드렸다.

“바나나 우유에요. 좋아하신다고 해서. ……공부하시는데 죄송했습니다.” 

서원 선배가 바나나 우유를 건네받고 잠시 주춤거리고 있는 틈을 타, 나는 잽싸게 교실 뒷문으로 뛰어간다. 

“야. 양마리. 거기 서.”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나도 모르게 내 이름을 듣는 순간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서원 선배는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을까. 꽤 먼 거리 임에도 서원 선배는 단 한 걸음 만에 내 앞으로 다가온다. 나를 유심히 뚫어져라 내려다보는 서원 선배. 

“그 누구의 지시도 아닌 내가 자원해서 하는 거긴 하지만…… 이제껏 어떤 대가도 지불하지 않으면서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부려먹는 것이 다였어.” 

“…….”

서원 선배는 바나나 우유를 깐다. 그리고 한 번에 마셔버린다. 박력 터지는 서원 선배…….  

“편지는 내 사물함에 넣고 가. 우푯값을 낸 건 네가 처음이라 네 편지는 꼭 전해줘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서원 선배가 허리를 굽혀 얼굴을 내 귀 가까이에 대고 속삭인다. 이토록 가까이서 보는 서원 선배의 얼굴은 리트버리처럼 순하고 큐티하시다.   

“나도 말룡샘의 결혼을 너무나 원하는 사람이거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원 선배의 뺨에 붙어 있는 종이가 너무 신경이 쓰였다. 손을 올려 종이를 뜯어낸다. 드드득. 허연 침가루와 함께 종이가 떨어졌다.

“고마워. 내가 잠잘 땐 수도꼭지라.”

“에이. 수도꼭지…… 저는 댐이에요.”

“아 그래? 반갑네. 후배.”    

나는 서원 선배에게 몸을 반으로 접어 인사를 하고나서 서원 선배의 사물함 앞에 가 섰다. 사물함 중앙에 네모난 구멍이 나 있었는데 딱 편지 한 통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편지를 구멍 안에 힘껏 밀어 넣었다.      


편지를 붙인 다음 날. 혼이 2학년 2반 교실 앞문을 부서질 듯 열어젖히고 들어와 내가 앉은 책상 앞에 멈춰 선다. 

“야. 양마리.” 

교실에 무거운 정적이 감돈다. 

“부탁인데…… 너…….” 

부들부들 떨며 주먹을 쥐고 있는 혼은 정말 나를 한 대 치려는 것 같았다. 혼과 나는 일 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그의 노여움이 내 코앞까지 밀려 들어왔다. 나는 숨을 멈춘 채로 의자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기어이 혼이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서 내 얼굴에 날려버린다. 

“나한테 관심 좀 끄라고 제발!” 

혼이 교실을 나가고 나서야 멎었던 숨이 천천히 돌아온다. 복도를 지나가던 사마귀가 그런 나를 보고 다가온다. 

“너 설마…… 벌써 답장이라도 받은 거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답장이 올 줄은 몰랐다. 어제 점심시간 때 서원 선배 사물함에 편지를 넣었고 하루 만에 답장이 온 것이다. 서원 선배는 누구보다도 성실한 우편 배달부가 맞았다. 

“혼한테 뭐라고 썼는데?”  

나는 머리 위에 어지럽게 붙은 종이를 떼어내며 말한다. 

“너 진짜 채식하냐고.”      


우리는 서원 선배의 사물함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어쨌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질 수 있도록만 잘 이용하면 되는 것이었다. 사마귀, 유가, 동성, 나 모두 국어에는 재능이 없었으므로 편지엔 수식어는 가급적 생략하고 본론만 간단히 쓰는 것으로 했다. 

“그래서 어떻게 쓸까?”

“중요한 건 결국 행동을 움직여야 하는 거라고. 강력한 메시지. 행동을 바꿀 수 있는 그런 강력한 메시지가 필요해.” 

“강력한 메시지…… 이런 건 어때? 율리아 선생님…… 배우자는 꼭 운동하시는 분과 만나셔야 인생이 풀리실 겁니다. 안 그러면 인생이 아주 어려워지실 거예요. 사주팔자가 그냥 있는 게 아니라 필요해서 있는 겁니다. 원래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법입니다. 그러니까 말룡샘 같은 분을…….” 

“야. 너무 직접적이잖아.” 

“말룡샘이라고 한 적 없다. 말룡샘 같은, 같은 분을…….”

“계속해봐.” 

“그런 운동하시는 분이 주변에 있다면 꼭 한 번쯤은 고려해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답장은 이틀 후에 도착했다.

“뭐라고 쓰여 있어?”

정적…… 속에서 동성이 담담히 입을 연다. 

“교회 다니신데…….”

깊은 숨을 내쉬는 사마귀.  

“먹히지를 않는군. 어쩔 수 없지.” 

“응?”

“그냥 직접 보여주는 방법 밖에는 없어. 눈으로 보여주자.” 

사마귀는 단 한번에 편지를 써내려갔다. 

‘11일 12시 17분 당신은, 당신의 운명의 상대를 분수대 수리꽃나무 앞에서 만나게 됩니다.’     

답장은 이틀 만에 도착했다. 사마귀가 편지를 뜯어 편지지를 꺼내 읽는다.  

“유 푸르……  앗!” 

미간을 찡그리며 편지지를 던져버리는 사마귀. 율리아샘이 영어로 답장을 쓸 줄이야! 사마귀는 영어에 심각하게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동성이 바닥에 떨어진 편지를 주워 읽는다.  

“네 스스로 그것을 증명해보라는데?”      


11일까지 이 틀이 남은 상황이다. 사마귀는 아무 생각 없이 편지를 쓴 게 아니었다. 말룡샘은 점심을 먹은 후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카라멜 마끼아또 스틱을 종이컵에 타서 분수대 앞 수리꽃나무까지 산책을 나오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점심은 항상 10분 만에 드셨고 급식실에서 나와 분수대까지 걸어오는데 딱 7분이 걸렸다. 말룡샘은 인간 시계가 아닐까 생각될 만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 장소와 그 시간에 정확히 나타났다. 

우리는 최대한 율리아샘의 행동을 통제해 11일 12시 17분에 분수대 앞에서 말룡샘을 보게 하면 되는 것이다. 혹시나 생길 수 있는 비상상황에 대비해 말룡샘 옆에는 사마귀가 대기하고 있는 것으로 했고 나와 동성, 유가는 율리아샘 곁에서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방어하고 있기로 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11일 12시 점심시간이 시작되었다.       


도서관 접수 데스크에 앉아 있던 율리아샘이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쪽 복도 끝에서 1학년 애들 두 명이 도서관으로 접근 중이었다. 동성, 유가, 나는 그들을 막아선다. 

“후배님. 누구 만나러 왔어?” 

“율리아샘이요.”

“지금 좀 바쁘셔. 나중에 찾아올래?”

“아 왜요.” 

“나중에 설명해줄게. 확실한 건 지금 누군가의 운명이 걸려 있다는 거야 얘들아. 제발…….”

다행히 선배들의 간절함이 먹혀들어갔고 1학년 후배들은 궁시렁거리며 왼쪽 통로로 방향을 돌렸다. 

율리아샘이 의자에서 일어나자마자 순간 전화가 울린다. 제발, 제발, 제발, 받지마, 받지마, 받지마! 속으로 소리를 내질러보았지만 잠시 망설이던 율리아샘이 결국 전화를 받고 만다. 방어할 여유도 없이 당하는 전화 테러. 우리 셋 모두 적의 공격에 마음이 혼비백산이 된 채로 아무런 대책도 없이 도서관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어야만 했다. 고문 같은 시간이 흘러간다. 율리아샘이 전화를 끊고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난다. 5분여의 통화였지만 5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도서관을 나와 중앙 통로로 걸어가는 율리아샘. 율리아샘이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속에서 애간장이 끓는다. 좀 더 빨리, 빨리 걸으시면 안 될는지. 율리아샘의 발에 로켓이라도 달아주고 싶다. 중앙현관을 빠져나와 구름다리쪽으로 걸어 올라가는 율리아샘. 매초마다 애가 타는 우리의 마음도 모른 체 율리아샘이 구름다리 중간을 유유히 지나간다.      

구름다리 끝에서 보이는 분수대 수리꽃나무. 율리아샘의 눈에 누군가 들어온다. 그는 다름 아닌…… 중복이! 사마귀, 유가, 동성이 나 모두 할 말을 잃은 채 서 있다. 또 어디를 싸돌아다니고 온 건지 혀를 내밀고 헥헥거리는 중복이를 율리아샘은 멀거니 바라보고 있다. 주인도 없이 평생 학교 주변을 맴돌며 사람들이 가져다주는 것을 먹고 사는 중복이. ……율리아샘은 내가 무슨 좋은 걸 보겠다고 이곳까지 왔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급히 뒤돌아섰다.      


운명의 타이밍을 놓친 것을 알리없는 말룡샘은 카라멜 마끼아또를 탄 종이컵을 들고 체육관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분수대 뒤에 숨어 있던 사마귀 역시 우리를 보며 실망스런 얼굴을 감추지 못한다. ……과거로 편지를 보낸다고 해도 지금 현재를 바꾸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우리는 서원 선배의 사물함에 그만 집착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러나……  나는 꼭 편지를 보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사마귀, 유가, 동성이 몰래 다시 편지를 쓰기로 했다. 그날 나는 선배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내가 재결승을 기권한 그날부터 선배는 나를 피하며 어떤 따뜻한 말도 배려도 끊어버렸다고. 나는 그것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알고 싶다고. 나는 아직도 선배를 이해할 수 없다…… 는 내용이었다.      


편지는 삼 일 후 노 리플라이, 라는 문구와 함께 뜯기지도 않은 채 되돌아 왔다.      


……한 번 더 편지를 보내기로 결심하고 다시 서원 선배를 찾아갔다. 서원 선배는 편지지에 적힌 수신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안선배?”

“…….”

“이번에도 너무 기대는 하지 마라…….”

“혹시 제가 직접 전달해도 괜찮을까요?”

“…….”

“꼭 듣고 싶은 말이 있어요.” 

“그렇게 해. 수신인을 만나면 편지를 전해줘. 편지를 받지 않으면 그냥 돌아와야 해. 너무 오래 그곳에 있지는 마. 안 그러면 과거 속에서 영영 떠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선배는 사물함 속으로 들어가면 길이 보일 거라고 했다. 나는 몸을 숙여 사물함 속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책장 냄새. 바람 냄새, 풀잎 냄새가 나는 길고 긴 통로였다. 무릎과 손바닥이 아파올 때쯤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그리고 드디어 1년 전. 문예실에 도착했다. 

선배는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1년 전의 선배는 머리가 짧고 살이 좀 더 올라 있었다. 내가 선배의 얼굴에 편지를 들이밀자 선배는 나를 힐끗 올려다보았다. 한참 동안 나는 그렇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내 손이 무색해져도 내 표정이 당황스러워져도 선배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선배는 내 편지를 끝까지 읽어볼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천천히 나는 돌아섰다. 과거에서 영영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사물함 쪽으로 몇 걸음 걸어가자 등 뒤에서 조용히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그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이유는 너무나 많았다는 것을 알아.” 

“……이유?”

나는 다시 뒤돌아섰다. 선배는 내 쪽은 보지도 않고 말을 잇는다.

“나는 잘난 게 없기 때문에 나는 친구도 없기 때문에 나는 공부도 못하기 때문에 나는 별볼일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나는 이쁘지 않기 때문에 나는 가난하기 때문에 나는 수없이 많은 모래 알갱이 중에 하나일 뿐이므로…….”

나는 선배의 얘기를 들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맞다. 선배의 말은 모두 사실이다. 

“네가 네 삶을 포기하고 싶은 이유는 너무도 많겠지. 그래서 넌 그것을 선택한 것뿐이야. 그렇지?”

아무런 말도 나는 할 수 없었다.  

“네가 네 자신을 돕지 않는데 나라고 왜 너를 도와야 하는 거지?”

선배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떠났다. 과거에 너무 오래 있지 말라는, 잘못했다가는 영영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서원 선배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나는 두 번 다시 1년 전의 문예실로 오고 싶지 않았다. 이곳은 차갑고 무거운 공기로 가득할 뿐이었다. 


나는 사물함으로 다시 들어갔다. 편지를 쓴 것을 나는 후회했다. 과거로 돌아가 누군가의 마음을 알았다고 해서 더 행복한 것도 더 슬픈 것도 아니라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그렇게 나를 달래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이전 03화 요정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