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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Jun 26. 2024

아들의 게임중독과 부모의 영적 빈곤함.

: 부모님 잊었겠지만 당신은 아티스트다. 

초딩인 아이는 딱 봐도 게임중독으로 보였다.      


아이는 검사 내내 짜증스런 표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의자에서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틈만 나면 주머니에 있는 폰을 만지작거렸다.      

교사의 권유로 아이는 검사를 받게 되었는데

교사가 적은 검사 의뢰서에는 아이가 수업 시간에도 화를 폭발하고 친구들과 자주 다툰다고 적혀 있었다     


센터에는 아이의 어머니가 함께 왔다. 

아이의 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일 때문에 지방에 내려가 있다고 했다. 

검사 전, 어머니와 짧게 면담을 했는데 

어머니는 바쁜 일 때문에 완전히 소진되어 보였다. 

아이가 그린 가족 그림 속엔

아버지가 부재했고 

어머니는 방에 누워 있고 아이 자신은 무표정한 얼굴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부재와 육체적으로 힘든 어머니...

집안에서 아이는 외로움과 상실감을 키웠을 것이다. 

살기남기 위해 아이는 행동해야 했다.  

똑똑한 아이는 가장 완벽한 먹잇감을 찾아냈고 

흥미롭고 신기한 이미지들, 목표를 이루면 성취감을 주는 게임은 아이에게 

세상 최고의 달콤함이 되었을 것이다.      


게임은 전두엽을 손상시킨다. 

전두엽은 기억, 사고, 감정, 행동 등 고등정신작용을 관장한다. 

게임에 많이 노출된 아이들은 이성적인 행동을 하기가 어렵게 된다. 


화가 나면 으르렁거리며 이빨을 드러내는 아이. 

그 아이를 검사하는 내내 나는  

허허벌판에서 게임이라는 먹잇감을 홀로 씹어먹고 있는

외롭고 작은 짐승 새끼를 떠올렸다.      


가정은 무엇으로 채워지는가.     


옷과 음식, 가구, 그릇....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채워지는가? 이것이 전부인가?

아니다. 또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도 채워진다.

그럼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영적인 것이다. 

쉽게 표현하면 문화다. 

가족의 문화.

부모가 영적으로 빈곤할 때 

가족 안에서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문화라고 해서 어려운가?


그것은 거추장스러운 것이 아니다. 

서로의 별명을 부르고 놀리며 사진을 찍고 

요리를 하고 같이 노래하는...

그것은 돈이 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조잘거림이다. 

그것은 속닥거림이다. 

가족 간에 조잘조잘, 속닥속닥할 수 있게 만드는 체험이고 경험이다.

가족 만이 알고 기억하는 비밀스런 이야기다. 

그런 문화를 아이들과 공유하고 조잘거리고 속닥거리고 있는가.      

우리가 아이와 하는 대화 속에는 무엇이 있나.

성적, 시험, 학원. 돈. 드라마.....

그런 것들로 채워진 대화는

얼마나 초라한가.... 

그 대화에 무슨 감정이 생기고 기쁨이 솟아나고 웃음이 피어날 수 있을까. 

돈이 없는 것보다

아이와 하는 대화의 빈곤함이 

더 슬프지 않은가.      


존경하는 부모님. 

잊고 있었겠지만

당신은 아티스트다. 

당신이 창조해낸 아름답고 신비로운 아이를 보라. 

영적이고 창조적인 능력이 당신 안에 이미 탑재되어 있다. 

아이 앞에 놓인 텅빈 시간을 

당신의 붓을 들고 

아이와 함께 색을 입혀보라.           

아이와 속닥거림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아이와 연결되었다는 말이다. 

부모와 아이가 잘 연결되어 있다면 

아이는 덫에 걸려들지 않는다.

무리 안에 들어가 사는 동물은 다른 야생 동물에게 쉽게 잡아먹힐 수 없듯이

부모에게 아이가 심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면

아이는 세상의 위험에 쉽게 노출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부모와 연결되어 있지 않는 아이는

살기 위해서 다른 곳을 탐색하게 되어 있는데

자신에게 영양분을 줄 것 같은 것을 발견하면

그것이 불량식품이라도 해도 아이는 그것을 물고 빨아 먹으며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다. 

집을 나와 밤늦도록 길거리를 쏘다니는 아이들은 

부모와 심리적 연결이 끊어진 배고프고 외로운 짐승 새끼들이 아닐는지...     


부모님. 이제는 당신의 창조력을 발휘할 때이다. 

당신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  

당신이 아니면 그려지지 않는 그림.

당신의 존재로만 칠할 수 있는 그림.

예술에 답이 있는가.

아이에게 답은 언제나 부모다. 

자유롭게 붓을 움직여보기를.      


시간 속에 흘러가는 아이들을 우리가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끝까지 남겨줄 수 있는 게 있을까.

눈에 보이는 것을 아이들에게 남겨주기엔 우리에게 한계가 있지 않나.  

그러나 끝까지 아이들에게 남아 있는 것이 있다. 

결국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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