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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Jun 26. 2024

날 그런 년으로 바라본 그 순간부터 막살기로 했어요.

: 당신은 누구에게 발견되었습니까?


검사를 받으러 온 일곱 살 여자 아이는 나와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다. 

목소리는 기어들어갔고

언어적 자극을 받지 못한 듯

기본적인 자기표현도 어려워보였다. 

우울감에 덮여 있는 아이는 반쯤 죽어 있는 듯 보였다.      


어쩌다 아이는 이 지경이 되었을까....      


나는 아이의 엄마가 궁금해졌다. 

심각한 수준의 우울과 언어발달의 저하라는 검사 결과가 나왔고

해석상담을 하는 날 나는 아이의 엄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엄마에게는 알코올 문제가 있었다. 

이곳에 올 때에도 술을 먹고 온 듯했다. 

맞은 편에 앉은 여자의 입에서 술냄새가 번져왔다.      

여자는 심각한 검사 결과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두서 없이 해나갔다.      


“남자친구가 있어요. 

혼자 살고 있는데 아이는 셋 있어요. 

아빠가 다 달라요. 

두 번 이혼 했는데

남자친구와 결혼하고 싶어요. 

근데 남자친구도 저도 돈이 없어요...결혼할 수 있을까요?”     


여자는 지나치게 철이 없어보였다.      

참을성 있게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순간 툭, 하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말 안듣고 사고도 많이 쳤어요. 

막 살기로 했거든요. 

언제더라...

기억나는 게 있는데

초등학생 때 아파트 놀이터에서 사촌오빠와 놀고 있었어요. 

오빠가 절 구석으로 부르더니

제 바지 안으로 손을 집어 넣었어요. 

그걸 엄마가 봤는데

저를 그렇고 그런 년으로 보는 것 같더라고요. 

그 때부터였어요. 

막 살기로 했던 게...”     


사촌오빠를 몽둥이로 패대기를 쳤어야 했었던 그때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은 여자의 엄마. 

여자의 엄마는 

눈빛으로 

조카 대신 

자신의 딸을 더 수치스럽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엄마의 눈에 그 어린 여자 아이가 그렇고 그런 년으로 비춰졌던 그 순간

그 여자 아이 역시 자신을 그렇고 그런 년으로 정의내렸다. 

그 어린 아이는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제 정신으로 살 수 있었을까. 

술을 먹지 않고 견딜 수 있었을까.     


인간은 자신을 어떻게 정의내리는가.      


인간은 혼자 자신을 정의내릴 수 없다. 

자신에게 중요한 대상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바로 그 시선으로 자신을 정의내린다.      


여자는 그날 놀이터에서 그렇고 그런 년으로 자신을 정의내렸고

여자는 정말 그렇게 살아가게 되었다.      


나는 술에 취한 여자를 붙들고

“아니에요. 

당신은 귀하고 소중해요.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라고 말했다. 

여자는 알아들은 듯 못 알아들은 듯 

비실비실 웃기만 했다. 

...마음이 저며왔다.      


자신을 사랑하기 힘든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부디.

속지 말기를.

당신 안에 있는

당신을 못나게 바라보는 모든 시선을

삭제하기를.

당신을 사랑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 

자신을 놓아두기를 

그리고 발견되길!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를 확인하길!

당신이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  

장담하건대

당신을 아름답게 발견해주는 사람은 지구에 반드시 있다. 

당신이 타인을 그렇게 발견해줄 때

그럴 확률은 더 높아지게 된다. 

당신 안에 그런 시선이 확고해지면

그때부터 외부의 환경에 갇히지 않게된다. 

그때부터 당신의 잠재력이 기지개를 피며 깨어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없을 거라고 믿었던 것들을 해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아름다운 당신. 

부디 발견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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