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의 겨울

내리지 않는 값

by 서로봄

연일 뉴스는 ‘금값 사상 최고치’라는 소식을 쏟아낸다. 가파르게 치솟는 숫자를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자꾸만 가라앉는다.


서랍 깊숙이 묻어둔 작은 반지 하나를 꺼낸다. 이십 대 초반, 어머니가 내 손에 쥐어주신 한 돈 짜리 금반지다. 그리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손바닥 위에 올려두면 묵직한 존재감이 전해진다. 그것은 금속의 질량이라기보다, 그 안에 고인 오래된 시간의 무게에 가깝다.

닳고 조금 일그러진 그 원형의 궤적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나는 그해 겨울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간다. 엷은 금빛이 동심원처럼 번지고, 그 중심에 어머니가 고요히 서 있다.


아버지의 사업이 무너진 뒤, 아홉 식구의 생계는 오롯이 어머니의 가녀린 어깨 위로 옮겨졌다. 유난히 모질었던 그해 겨울, 어머니는 찬바람이 칼날처럼 스치는 시장 난전 한쪽에서 장사를 하셨다. 하루의 고단함을 이고 종종걸음으로 돌아오면, 쉴 틈도 없이 시어른과 가족을 위한 저녁상을 차려내야 했다.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던 어머니의 손과 발은 당신이 팔던 사과처럼 붉게 부어 있었고, 발끝은 사람의 체온이라기엔 너무도 투명한 냉기만 감돌았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그 얼음장 같은 발을 내 발 위에 슬며시 올려놓곤 하셨다. 나는 그 소름 끼치는 냉기에 질겁하며 발을 뺐지만, 어머니는 미안한 듯 무안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다시 내 온기를 찾아 가만히 발을 포갰다. 그리고 나직하게 혼잣말을 하셨는데 그 말은 이불속에서 오래도록 식지 않았다. “아, 이제야 살 것 같네.”


어느 날,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시장 옆 작은 금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말없이 반지 하나를 내 손에 쥐어주셨다. 버거운 시간을 한 뼘씩 건너며 모은 눈물 같은 돈이었을 것이다. 금붙이 하나 끼어보지 못한 채 거칠고 마디 굵어진 당신의 손가락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반지는 어머니걸로 하세요.” 나는 사양했지만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짧게 덧붙이셨다. “ 필요할 때 팔아서 써.”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강산이 세 번도 더 변했다. 한 번은 이삿짐 틈에서 사라질 뻔했다. 나는 어머니를 또 한 번 잃는 듯 해 가슴이 내려앉았다. 다시 찾아냈을 때는 한동안 손에서 놓지 못한 채,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내 체온으로 누그러질 때까지 꼭 쥐고 있곤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반지를 마음 놓고 끼지 못한다. 손가락에 끼우는 순간, 그해 겨울이 너무도 또렷하게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서랍을 열어 그 무게를 가늠해 본 뒤, 다시 소중히 제자리에 넣어둘 뿐이다.


사람들은 오른 금값에 맞춰 금붙이를 판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 반지는 이미 세상의 어떤 숫자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금값은 매일 파도처럼 출렁이지만, 이 작은 원 안에 박제된 그 겨울의 기억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오늘도 반지를 꺼내 잠시 들여다본다. 어머니의 시간이 전해준 온기가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번진다. 그 온기로 서늘해진 마음을 조금 데운 뒤, 나는 다시 반지를 서랍 속에 넣는다. 그 안에서 금빛은 여전히 빛나겠지만 끝내 녹지 않는 그 겨울은 어디에 넣어두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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