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사과는 빛을 잃었다
겨울이 되면 나는 항상 그 길을 떠올린다.
초등학교 담벼락 아래, 노점상이 줄지어 서 있던 길.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곳의 냉기와 소란, 그리고 엄마의 숨결은 아직도 그곳에 남아 있다.
어릴 적 겨울은 유난히 길었다. 해가 짧아서라기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붉은 고무대야 위에 나무판자를 얹고 사과를 펼쳐놓았던 저녁. 사과들은 더 이상 반짝이지 않았다. 빛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빛이 되어버렸다.
엄마는 홍옥의 매끄러운 껍질을 조용히 닦았다. 해가 기울 무렵이면 사과들은 제 몸을 더 웅크리는 것처럼 보였다.
학교 이야기를 늘어놓던 내 목소리도 어느새 잦아들었다. 어두워질수록 아스팔트는 냉기를 더 뿜어냈고, 그 위에 쪼그려 앉은 나는 발끝부터 식어갔다. 책가방을 멘 채 엄마 옆으로 더욱 붙어 앉았다.
엄마의 얼굴도 점점 사과를 닮아갔다. 잘 익은 붉은빛이 아니라, 하루를 다 써버린 뒤 남은 흐린 색이었다.
엄마는 크게 소리를 내지 못했다.
“사과 사세요.”
몇 번이나 입술이 움직였지만, 끝내 말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대신 외치고 싶었다.
“사과 사세요. 백설공주가 먹고 잠든 사과예요.” 그러면 누군가는 사 갈 것 같았다.
하지만 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신 엄마는 사과를 한 번 더 닦아 가지런히 놓았다.
사람들은 바쁘게 지나갔다. 누군가는 우리를 스쳐 지나갔고, 누군가는 값을 묻고는 그냥 떠났다. 그렇게 하나둘 사라지자, 거리에는 어둠만 남았다. 가로등 아래에서 사과들은 더 차갑게 식어갔다.
그날도 한 솥의 밥을 채우기에는 모자랐다. 집에는 식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옆 노점들이 하나둘 자리를 정리했다. “먼저 가요.” 인사를 남기고 떠나자, 남은 자리는 휑했다. 그럴수록 추위는 더 단단해졌다.
나는 참다못해 물었다.
“엄마, 우리 언제 집에 가?”
엄마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나를 꼭 끌어안았다. 손은 차가웠지만, 품 안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조금만 더 있다 가자꾸나.”
그 ‘조금’이 얼마나 길었는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나는 가끔 그 길을 끄집어 낸다. 어둠이 내려앉을 즈음,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엄마의 모습. 손을 뻗어보지만, 아무것도 닿지 않는다.
자리는 사라졌는데, 그곳에 앉아있던 시간만 남아있다.